노래방 주인님의 “공연평에 써주세요. 시작 전에 청소 왜 시키는지 모르겠다고.”라는 말이 생각나 작성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왜 시키는지 모르겠다.”를 적어달라는 말은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청소 후 “태아 시절 양수의 기억으로 인해 물을 보면 편안해진다.”란 말에는 어느 정도 수긍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래방 화장실을 놀이터로 표현한 점은 많이 의아했습니다. ‘그래, 노래방 주인님 말씀처럼 화장실이 머리를 만지러 가거나 세면을 하는 등 다른 용도로 쓰일 때도 있지. 근데 왜 놀이터로 대체했을까?’ 이 궁금증은 마치 놀이터를 지을 때 시소를 만든 후 구름사다리를 세우고, 마지막을 그네로 완성시키 듯이 연극을 볼수록 차츰 풀려나갔습니다.

아버지와의 마찰을 피하고자 놀이터로 간 희준이는 화해보다는 여자친구의 연락이 더 중요했습니다. 연락이 닿기 위해서라면 다치면서라도 놀이터를 계속 돌았습니다. ‘만약 부자 지간이 좀 더 가까웠더라면 희준이는 민정의 연락만 염원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애초에 대화가 잘 이루어져 놀이터에 올 일도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때의 놀이터는 ‘당장의 욕구를 표현하는 공간’이라 느꼈습니다.

정연과 은혜는 화해한 후, 즐기면서 기구를 탔습니다. 이때의 놀이터는 ‘화해의 공간’이자 우리가 아는 놀이터의 용도에 가장 알맞게 쓰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보경은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며 구름사다리에서 손을 뻗는 모습이 애절했습니다. 연이어 보경에게 프러포즈를 유보 받고 체념한 민재는 팔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구름사다리를 건넜습니다. 이때의 놀이터는 ‘복잡하고 착잡한 감정을 표출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민정은 끈질기게 매달리는 희준에게 지쳐 환기를 위해 놀이터에 방문하였죠. 민정은 놀이터에서 다치지도, 즐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분노가 담긴 발걸음으로 시소를 이동하고 커플링을 깨치고 싶어 하는 심정으로 구름사다리를 쳤으며 시소에서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때의 놀이터는 민정의 응어리진 ‘답답함을 표출하는 공간’이자 묵묵히 놀이터를 이동하는 모습을 통해 ‘감정을 정리하는 공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놀이터의 마지막은 시소에 앉은 희준과 그네에 앉은 민정을 비춰줬습니다. “너무나 보고 싶어서”란 가사가 나올 때 비춰주는 연출과 놀이터 위치상 서로 간 거리를 가장 멀게 배치한 점이 이제는 둘의 사이가 예전의 관계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음을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순과 유정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란 가사가 나올 때 조명이 켜짐과 동시에 보경의 무대를 돌려주는 연출은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누나이자 친구인 사랑하는 이의 행복한 사랑을 응원해주는 모습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보경과 민재가 함께 환하게 웃으며 놀이터를 나갑니다. 이때 느낀 놀이터는 ‘인물들 간의 관계가 정립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여러 번 되뇌어서 ‘왜 놀이터로 했을까?’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노래방 주인의 말과 같이 “사랑을 나누려는 사람, 슬픔을 표출하고 싶은 사람 등 노래만 부르려고 노래방에 오지 않더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노래방에 온 인물들의 주목적은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화장실을 볼 일 목적으로만 가지 않는다.’라는 말과도 부합됩니다. 화장실에 간 인물들도 주목적이 볼 일을 위해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적이 볼 일이 아닌 화장실은 명칭만 ‘화장실’일 뿐, 다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이를 놀이터로 빗댄 거였습니다. 놀이터는 이름 그대로 놀러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노래방이 노래만 하러 가지 않는 것처럼 놀이터도 놀러만 가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당장 자신의 욕구를 표현(희준)하거나 화해(정연과 은혜)하거나 그리움(보경) 또는 좌절과 슬픔(민재)을 표출하고, 마지막에는 인물 들 간 관계를 정리(희준과 민정)하고 재회(보경과 민재)합니다. 본래 목적과는 달리 쓰이는 ‘놀이터’라는 공간을 노래방과 대비시키면서 인물들의 심경 변화와 공간의 의미에 대한 시너지를 일으키기 위해 함께 엮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즉, 제가 느낀 놀이터는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고 어려움을 해소하는 공간으로, 놀이터가 아닌 다른 배경이었더라도 배우분들의 열연을 통해 전달이 잘 되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놀이터가 접근성이 쉽고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봤을 법한 대중적인 장소여서 선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극중 인물이 불러주는 노래와 함께 놀이터를 나아가는 다른 인물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이제는 다른 배경에서 펼쳐지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안되네요 ㅎㅎ. 연극 시작 때 청소 때문에 연출에게 응석(?) 부리던 노래방 주인님도 이를 인정하게 되었고, 말이 아닌 노래로 대신하겠다는 대사가 멋졌습니다.

이처럼 화장실을 놀이터에 빗댄 것이 이유가 있던 것과 같이 시작 전에 청소를 시킨 것도 모두 노래방 주인님을 인정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근데 대사 끊고 ‘밤이 깊었네’ 트는 건 너무한 것 같아요 ㅋㅋ. 외상값이 연극 초기에는 49만원이었는데 요즘은 247만원까지 늘었더라구요, 안 갚는 게 괘씸해서 연출님이 그러시는 건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이만큼 생각해 본 건 처음이에요. 학생일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좀 더 잘 했을 것 같기도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해석한 게 맞나 의구심이 들기도 하네요 하하,, 그만큼 이번 연극이 제게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네요.

제 첫 관람 연극인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배우분들의 연기력에 감탄했습니다. 실존 인물들을 무대에 그대로 모셔놓은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리고 확실하게 느낀 연극의 묘미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눈으로만 담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듯이,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주어진 기회 같아 더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실제 배우분들과 무대 장치, 효과 등 모든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 이를 눈에 충분히 담아두었습니다. 연극의 매력에 빠져버려 환상적인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합니다. 이와 같은 기쁨을 알게 해주고 열심히 기획해 주신 극단 소년을 비롯한 배우분들과 연출, 디자이너분들 그리고 모든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노래방 주인님의 “추억을 만들어 드리는 소년 노래방”이란 대사가 생각나네요. 저도 이번 연극을 통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마치 저도 옆에서 들어주는 사람으로서 함께 온 손님 같았어요. 마지막 공연까지 즐겁게 임하겠습니다. 남은 일정 동안 모든 분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파이팅!


(번외)
우노얘를 통해 평생 기억에 남을 대사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정연의 “한 사람과 깊이 만나도 나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는 거 아니야?” 그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쉽진 않지만, 만나게 된다면 백 번 옳다고 생각하는 대사입니다.

보경의 “용서는 힘들어도 이해하면은 상처가 덜 아프대요.”란 대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제 자신이 때때로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게는 엄격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거든요. 그러고는 혼자 상처받고... 이 대사가 ‘타인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부족했던 저를 되돌아보게 해주려는 말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마음속에 새기며 살 것 같아요.

노래방 주인님의 “남자는 커다란 원 같은 사랑을 원하고, 여자는 별 같은 사랑을 원해요. 근데 서로 만나면? 찔려서 아프겠죠.” 사랑은 맞추어 나가는 과정이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사였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 집에 들어갈 때 아파트 층수를 세는 습관이 생겼어요. 집에 불이 켜져 있으면 좋았거든요.”라는 대사가 공감되었습니다. 저도 어릴 때 늘 저희 집 층수를 세서 불이 켜져 있나 확인했었거든요. 제 이야기 같아서 크게 와닿았습니다.

유정의 “사랑해도 돼, 너 자격 있어. 아니, 자격이란 거 없어. 사람은 누구나 살다가 실수할 수도 있는 거야. 아니, 너 실수한 것도 없어. 내가 널 20년 넘게 봐왔지만 실수한 적 없어.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야.” 지순의 말처럼 날라리 같은 면모를 보여주던 유정이 진심을 담아 보경을 격려해주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겉모습은 유쾌한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내면은 누구보다 부드럽고 따스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대사였고, 이런 진정한 친구를 곁에 둔 보경이 진심으로 부러웠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명대사들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대사를 꼽자면 민정의 “보경씨, 나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와 “나 이모 돈 지원 없고 엄마가 싫다고 해도 계속 음악 할 거야.”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사별하고 홀로 가정을 책임진 보경이 견뎌온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는 민정이 해준 말이라 정말 대견했습니다. 그리고 꿈을 향해 뜨거운 열정을 가진 민정이를 끝까지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내게 있어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해주고, 큰 웃음도 함께 선사해 준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훗날 또 보기를 기약하고 싶습니다.

도시에서는 소리 지르고, 울 공간이 없다는 말에 정말 큰 공감을 했습니다. 예전에 똑같은 경험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땐 그냥 시간 맞는 영화를 골라 맨 뒷자리에서 상영하는 내내 소리죽여 울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 공연을 그때부터 알았다면 나도 노래방에 갈 걸. 조금은 더 소리내어 울어도 됐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마음 따뜻한 공연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래방에선 정말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군요?ㅎㅎㅎ

만원 개꿀,, 이정도 가격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한 극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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