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은 편곡된 베토벤의 <월광>에 맞춰 마리오네트를 연상시키는 춤을 추며 무대 위로 등장한다. 서곡에서 배우들의 이 그로테스크한 춤은 ‘앞을 볼 수 없는 맹인들이 아주 능숙하게 걷고 활동할 수 있다’는 일종의 환상이자 가상공간에 관객들을 데려다 놓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장님들의 눈에 보이는 실제 현실은 어둠뿐일 것이다. 그런데 관객들이 보고 있는 무대는 눈에 띄는 의상과 춤과 장님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재빠른 동작과 온갖 영상들로 화려하다. 관객들은 이 화려한 무대 위의 장면들을 마치 장님들의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보게 되는데, 이 점이 독특한 극적 경험을 선사한다.
마치 일반인인양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장님들 틈으로, 맹인지팡이를 끝까지 놓지 않는 이그나시오가 등장하면서 이대로 행복하다는 환상과 맹인이라는 현실이 대립한다. 이제는 아무도 들지 않는 맹인지팡이를 들고 자신이 장님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면서 불안과 적대감으로 무장한 채 신입생인 그는 재학생들을 불편하게 한다. 소크라테스 같은 달변으로 재학생들의 행복을 위선이라 지적한다.
그의 말은 사실이다. 이그나시오가 등장하면서 맹인학교는 성추행이 농담처럼 일어나고, 교장과 유일하게 장님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교장 부인이 교육을 빙자한 세뇌를 하는 권력남용의 장소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그나시오는 자신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일종의 초인을 지향하는 인물이다. 순교자처럼 고통스러워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은 마치 권력처럼 여겨져 카를로스에게 기울어 있었던 동료들을 이그나시오 편에 끌어들인다. 이그나시오가 가지고 있는 극단적 도덕성과 순결성은 고독과 독단적인 이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이성이 내가 원하는 바를 이해해주고 있다는 편집증적 착각과 동료애적인 사랑을 원하는 세속적 욕망으로 인해 사실상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권력관계에 있어서만큼은 극이 상당한 통찰력으로 인물들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맹인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렸는데도 배우들의 몰입도와 집중력이 전해져서 감동적이었다. 후반부가 다소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빛의 과잉 사이에 한 순간 있었던 암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완전한 어둠으로부터 들려오던 이그나시오의 비명만이 무대 위 화려한 가상공간에서 맹인들의 진짜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에도 육체가 있다면 어둠을 비집고 들리던 그때의 목소리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배우들은 편곡된 베토벤의 <월광>에 맞춰 마리오네트를 연상시키는 춤을 추며 무대 위로 등장한다. 서곡에서 배우들의 이 그로테스크한 춤은 ‘앞을 볼 수 없는 맹인들이 아주 능숙하게 걷고 활동할 수 있다’는 일종의 환상이자 가상공간에 관객들을 데려다 놓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장님들의 눈에 보이는 실제 현실은 어둠뿐일 것이다. 그런데 관객들이 보고 있는 무대는 눈에 띄는 의상과 춤과 장님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재빠른 동작과 온갖 영상들로 화려하다. 관객들은 이 화려한 무대 위의 장면들을 마치 장님들의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보게 되는데, 이 점이 독특한 극적 경험을 선사한다.
마치 일반인인양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장님들 틈으로, 맹인지팡이를 끝까지 놓지 않는 이그나시오가 등장하면서 이대로 행복하다는 환상과 맹인이라는 현실이 대립한다. 이제는 아무도 들지 않는 맹인지팡이를 들고 자신이 장님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면서 불안과 적대감으로 무장한 채 신입생인 그는 재학생들을 불편하게 한다. 소크라테스 같은 달변으로 재학생들의 행복을 위선이라 지적한다.
그의 말은 사실이다. 이그나시오가 등장하면서 맹인학교는 성추행이 농담처럼 일어나고, 교장과 유일하게 장님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교장 부인이 교육을 빙자한 세뇌를 하는 권력남용의 장소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그나시오는 자신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일종의 초인을 지향하는 인물이다. 순교자처럼 고통스러워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은 마치 권력처럼 여겨져 카를로스에게 기울어 있었던 동료들을 이그나시오 편에 끌어들인다. 이그나시오가 가지고 있는 극단적 도덕성과 순결성은 고독과 독단적인 이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이성이 내가 원하는 바를 이해해주고 있다는 편집증적 착각과 동료애적인 사랑을 원하는 세속적 욕망으로 인해 사실상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권력관계에 있어서만큼은 극이 상당한 통찰력으로 인물들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맹인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렸는데도 배우들의 몰입도와 집중력이 전해져서 감동적이었다. 후반부가 다소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빛의 과잉 사이에 한 순간 있었던 암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완전한 어둠으로부터 들려오던 이그나시오의 비명만이 무대 위 화려한 가상공간에서 맹인들의 진짜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에도 육체가 있다면 어둠을 비집고 들리던 그때의 목소리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