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National Theatre(국립극장)에서 진행된 연극 공연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NT LIVE.
아무리 믿고 관람할 수 있는 내셔널 시어터의 작품이라도,
무대가 아닌 스크린에서 현장감이 잘 전달될지 의문이 들었는데...
국립극장에서 NT Live로 관람한 <리어왕>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탄탄한 연출과 빼어난 연기가 바탕이 된 좋은 작품이기에 그러하겠지만,
균형잡힌 카메라의 앵글 그리고 상황에 맞는 클로즈업은
때로는 현장보다 더욱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준다.
셰익스페어 4대 비극 중 하나이지만 정확한 내용을 알지는 못했고,
정장에 넥타이를 멘 인물들이 등장하는 현대극으로 각색하여 궁금증이 드는 부분이 있는데...
인터미션에 5분 정도의 제작과정 다큐멘터리를 상영, 극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개인적으로는 연출인 샘 멘데스가 리어왕의 광기를 치매와 연결하고,
치매환자의 증상으로 리어왕의 행동을 표현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아무래 무소불위의 권위를 휘둘렸고, 나이가 들어 판단력이 흐려졌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막내딸을 내치고,
최고의 충신 켄트를 추방하는 리어왕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치매라는 해석을 집어넣으니, 지금 시대의 사라들도
옳고그름을 떠나 리어왕의 행동과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자신의 권력을 나누어준 두 딸에게 모두 버림받은 비참한 상황이 되어,
폭풍우를 맞이하고 실성한 그의 모습에 고소함보다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리어왕 가족과 글로스터 가족의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교차하는 가운데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리어왕이 딸들에게 배신을 당힌 것처럼 리어와의 충신 글로스터 백작도 아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두 눈을 잃는다.
사람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과거와는 달라진 그 둘이 서로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만나는 모습은 더욱 가슴 아프다.
5막으로 된 긴 희극을 연극으로 만들며 생략했기에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몇몇 행동들도 있고, 17세기에 쓰여진 셰익스페어의 대사들은 때로는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세련된 연출과 열정적인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중요장면을 잘 보여주는 카메라워크로 인해 관객들은 지속적으로 긴장감을 느끼며 극의 흐름과 함께 할 수 있다.
물론 스크린 상영이기 때문에 현장에서만 가능한 그 공간감은 좀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작품 NT Live 예고편도 단순 무대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고퀄리티로 따로 제작한 것처럼, 스크린 상영의 장점을 살린다면 오히려 공연장 뒷좌석에서 못 느끼는 경험도 가능할 것이다.
NT Live 와 같은 시도를 통해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