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뮤지컬, 생소하다. 얼마전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갔다가 붙어있는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포스터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 도대체 야구 뮤지컬은 어떤 식으로 연출을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작품이다. 결론부터 미리 말을 하면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는 누군가에게 추천해도 좋을 작품이다. 스토리도 좋았고, 구성도 좋았고 뮤직넘버도 모두는 아니지만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나 가창력도 수준 이상이었다.

대학로 TOM은 이번이 처음 가보는 공연장, 객석은 무척 넓었고 쾌적한 환경이다. 좌석의 단차도 넉넉해서 어느 자리에 앉건 공연을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흠이라면 화장실 가는 것이 꽤 불편하다. 여자화장실은 1층과 지하에 있는데 남자화장실은 1층에 1인만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이어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여자화장실 역시 넉넉한 공간으로 보이진 않았다.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두 주인공인 김건덕과 이승엽은 현존하는 실제 인물이고 작품 속 이승엽 선수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승엽선수가 맞다. 물론 스토리 전체가 실화는 아니다. 천재소리를 듣던 김건덕 선수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작품이다.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의 무대사진, 이 무대에서 한편의 야구 드라마가 펼쳐진다. 실제로 야구경기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장면들이 연출된다. 절묘한 타이밍의 음향과 더불어 생생함이 객석에까지 전해졌다.

공연은 1994년 캐나다 브랜던시의 웨스트브랜구장의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의 결승전으로 시작된다. 미국에 11-10, 한점차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13년만에 대회 우승트로피를 얻어낸 감격스러운 대한민국 청소년 야구의 쾌거를 이룬 현장, 당시 한국 대표팀의 주역은 경남상고(현 부경고)의 김건덕 투수, 경북고 이승엽 선수(현 삼성라이온스),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의 주인공인 김건덕 선수는 이날 MVP로 선정이 된다. 그리고 미국 메이저리그의 한 구단 스카우팅 리포트에 "언젠가 빛의 속도로 공을 던질 수 있는 동양인 투수가 나왔다"라고 적혀있었다.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줄거리

당시 시속 160Km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었던 초고교급 야구천재 김건덕 선수와 청소년대표팀의 동료 이승엽선수(국민타자)와의 우정, 대학과 프로의 갈림길에서 겪는 갈등 그리고 김건덕 선수의 굴곡진 인생(부상,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불운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희망을 담은 뮤지컬이다.

전반부는 청춘물 고교얄개를 보는 듯, 무척이나 밝고 우정, 짝사랑 등을 코믹하게 그려내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중반부에 이르러 김건덕 선수의 불우한 환경이 조명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탄탄대로일 것 같던 김덕건 선수는 작은 고깃배를 운영하며 지내는 김덕건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하던 뱃사람들 (상황을 보면 거의 섬노예.)의 보복으로 인해 예기치 못했던 어깨 부상을 입은 뒤 매사에 삐딱하게 변하기 시작하고 절친이자 좋은 경쟁상대였던 이승엽 선수와도 반목하게 된다. 왜 자신에게 재능과 불행을 동시에 주었냐고 신에게 따지는 그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고 후반부에 이르러 아버지와의 갈등은 더욱 고조된다. 김덕건 선수의 끝없는 불행, 아버지의 관계,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아버지의 아픔 그리고 죽음등이 그려지면서 객석의 여기저기에서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안스러웠고 안타까웠고 아렸다.

모든 꿈을 잃어버린채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반항할 수조차 없었던 운명에 휘말려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채로 아버지만 원망하며 살던 김덕진 선수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현실을 받아들이고 야구코치로 재기를 결심하면서 희망적인 메세지를 담아낸다.

오늘 캐스팅 멤버는 안재영(김건덕 역), 김영철(이승엽 역), 박세미(윤효정역), 김도신(김건덕 아버지), 박세웅(홍감독), 손석민(멀티1), 최석진(멀티2) 배우들이 열연을 펼쳤는데 정통 뮤지컬 중에 가장 많이 웃었던 작품인 것 같다. 작위적인 웃음이 아닌 자연스러운 관객의 웃음을 유도한다. 김건덕 배우역을 연기한 안재영배우는 세 가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순진무구한 해맑은 미소를 지닌 소년, 불운을 당한 이후 감정이 뒤틀려 반항적인 소년,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마치 도를 닦은 것 같은 모습의 청년, 연기도 좋았고 목소리, 노래 모두 좋았다.

국민타자 이승엽을 연기한 김영철 배우는 터프함이랄까? 그런 끌리는 매력이 있다. 웃통 벗는 장면 있다. 은근 몸짱이다. 여성팬들은 기대해도 좋다.

김덕진 선수의 첫사랑인 윤효정을 연기한 박세미 배우, 미모도 예쁘지만 노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깜짝 놀랬다. 작품 속 윤효정이란 인물은 내 생각이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작품 전체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다. 김덕진 선수와 첫만남에서 둘이 썸타며 부르는 노래는 정말 귀여웠다고 해야할까? 매력 넘친다.

홍감독을 연기한 박세웅 배우, 이 분 은근히 귀엽다. 귀여움으로 웃음 포인트 빵빵 터트려 주신다. 목소리도 선이 무척 굵었고 노래 실력 역시 수준급이다.

김덕진 선수의 아버지 역을 맡은 김도신 배우, 연기에서 관록이 느껴졌다. 중후한 목소리였던 그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 정말 깜짝 놀랐다. 부드러우면서 감미로운 목소리에 힘까지 실렸다. 그리고 감정이 고스란히 노래에 담겨있던 느낌에 개인적으로 정말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무뚝뚝한 성격으로 표현은 서툴지만 오로지 아들 하나만을 위해 살아온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냈다.

멀티역을 맡은 손성민, 최석진 배우님, 개인적으로 두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웃음 제조기로 극전체에 빠짐없이 다양한 역할로 등장하시면서 비지땀을 흘리시는데 수건으로 닦아드리고 싶을 정도...

야구천재로 승승장구 할 것 같던 어린 소년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모든 꿈을 잃어버린 채로 방황했던 세월이 자그마치 십년이다. 자그마치 십년이란 세월 속에서 운명을 탓하고 아버지를 탓하며 꿈을 잃어버린채 방황했을 김덕진 선수를 떠올리면서 참 많이 가슴이 아팠다. 그의 말처럼 왜 신은 그에게 재능과 불행을 동시에 주신 것일까?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누군가 시기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그런 불행이 없었다면 우린 빛의 속도로 던질 수 있는 세계적인 투수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뮤지컬 넘버 중 '시간이 흐른다'가 나올 때 귀기울여 감상해보자.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며 부르던 노래가 어느 순간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로 바뀐다. 배우들은 김덕건 선수의 심경을 춤으로 표현을 해주는데 배우들은 무척이나 격동적이었고 안무가 무척이나 강렬하고 훌륭했다고 느꼈던 부분이었다.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포토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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