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이 훌쩍 지난 관록의 그룹은 옛 추억에 잠기지 않고 현재와 교류하거나 현재를 뛰어넘는 시도로 자신의 정체성을 알렸다. 지난 11∼13일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중극장 `블루스퀘어' 무대에 오른 그룹 부활은 세련되고 화려한 무대의 결을 좇아 21세기 록 그룹의 이미지에 맞는 공연을 수놓았다. 짱짱한 기타소리에 귀가 울려도, 우당탕 몰아치는 세찬 드럼소리가 심장을 옥죄여도 그들의 소리는 멋있고 아름다웠다.

부활의 리더 겸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그간 펼쳐온 음악적 핵심이 '감성'에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무대의 막이 시작될 때 스크린에 적힌 '소리'의 의미를 쉽게 캐치했을 듯. 스크린 자막에 적힌 '소리'에 대한 정의, 그리고 '소리'를 통해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방식의 모든 것이 연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감동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소리'는 애초에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소리는 만들어지고, 또 그 소리를 통해 서로는 사랑하는 방식을 배우게 되었다'는 요약식 설명은 부활이 내뿜는 소리가 주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그리고 김태원은 실루엣 뒤로 알싸한 기타 연주를 선보이며 무대의 시작을 알렸다.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객석을 가득 메운 1400여명의 관객은 시작부터 연호했다. 그것은 그간의 부활이 겪었던 모든 부침을 한꺼번에 씻는 환희의 순간이기도 했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세대간의 가교를 보여주는 어우러짐의 현장이기도 했다.

◆ 소리를 말하다
오랫동안 연주의 공력을 쌓아온 그룹답게, 팀워크가 확실히 단단해 보였다. 베이스 서재혁과 드럼 채제민의 안정된 리듬감위에 김태원과 세컨 기타의 협주가 빛났고, 보컬 정동하의 안정감있고 두터운 가창이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적지 않은 나이의 드럼은 20대처럼 연주했다. 그 소리를 빗대자면, BMK가 노래할 때 스피커를 터지게할 정도의 폭발력이랄까. 드럼 소리의 위용에 김태원의 기타가 조금 묻히긴 했지만, 김태원은 그 특유의 감성와 테크닉이 빚어내는 마법같은 소리로 보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김태원은 연주뿐 아니라, 서서 연주하는 태도 자체에서도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는데, `말없는 자의 무시무시한 광채'를 연상시켰다. 멤버 중 가장 어린 정동하는 무대를 조종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첫 3곡이 끝난 뒤 `일어나라'며 관객을 일으켜 세운 뒤, 빠른 템포의 노래를 잇따라 불렀다. 부활의 무대는 헤비메탈처럼 아주 빠르게 전개되며 혼비백산의 상태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팝록과 하드록의 어느 경계에서 사람들을 즐겁게하는 방법을 꿰뚫고 있었다. 관객들은 연주자들의 소리에 맞춰 중간 중간 '부활짱' 같은 구호를 외치며 무대와 객석이 혼연일체의 분위기로 점점 달아올랐다. 다만 정동하가 '네버 엔딩 스토리'를 부를 때 그 전까지 너무 달린 탓에 힘겨웠는지 후렴에서 음정은 맞췄지만, 안정된 흐름을 이어가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 버라이어티, 그리고 입담
무대는 정중앙 스크린과 호흡을 맞추며 보는 이를 멀티 플레이의 세계로 안내했다. 노래에 맞는 영상, 혹시 잊어버릴까 세심하게 준비한 스크린속 가사 등 친절한 배려들이 이어졌다. 갑자기 나타난 게스트들도 '소문난 잔치'의 입소문을 입증했다. '위대한 탄생'에서 김태원의 `영원한 제자'들인 백청강과 이태곤이 나와 솔로 가창과 그룹 협연을 보여 무대를 버라이어티하게 꾸몄다. 부활의 곡, 가요 명곡과 팝송 등이 어우러진 무대는 부활이 대중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공연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자리였다. 멤버들의 입담도 거의 수준급. '국민 할매'로 소문난 김태원은 이 무대에선 다른 멤버들의 입담에 밀리기 일쑤였다. 드럼의 채제민은 단순·무식 발언속에서도 나름 정연한 논리를 갖고 있었고, 베이스 서재혁은 '여성들이 쉽게 넘어갈만한' 웃음 코드로 무대를 장악했다. '부활의 현재 대세는 누구인가'를 묻는 멤버들 사이의 투표에서도 서재혁은 꽤 높은 인기를 획득했다.

◆ 아쉬운 2%
전반적으로 무대가 관객을 들뜨게 하고 속도감있게 전개된 점은 좋았으나, 소리의 앙상블이 뒤틀리고 무대를 한 곳에 집중시키는 흡인력이 떨어진 점은 개선될 필요가 있었다. 이를 테면, 드럼 소리가 워낙 커 기타의 세세한 소리를 듣기 어려웠고, 이에 따라 보컬도 묻히는 현상이 발생한 것. 서정적인 발라드곡에서 보컬은 훌륭한 음향의 혜택을 최고로 맛봤지만, 8비트, 16비트의 드럼 소리가 강해지면서 사운드는 약간 엉키는 문제를 발생시켰다. 아주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절제의 미학'이 조금 필요해 보였다. 또 무대의 포커스는 보컬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컬의 리드력이 조금 떨어지는 문제도 발생했다. 김태원이 멤버 중 가장 유명하지만, 사람들이 그 유명세때문에 김태원만을 쳐다본다면 그 무대는 반은 실패한 셈이다. 이 무대가 '실패'를 운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보컬이 무대를 이끄는 집중력을 더 보완하면 그룹의 전체적인 느낌이 완전히 살아날 듯하다. 부활의 무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룹으로서의 안정감을 찾았고,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무한대의 가능성마저 엿보게 했다. 그들은 지금 '부활'의 신호탄을 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