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중재자. 먼저 개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소재를 개발하고 공연을 위한 재원 마련, 공연 진행 및 재수정 등의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에 중재자의 역할이 더해집니다. 관객과 예술가, 예술가와 또 다른 예술가 사이에서 시너지가 유발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요. 동시에 한 편으로는 창조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들을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즉, 작품에 대한 방향성을 갖고 창작자들을 섭외하여 그들이 계획된 방향으로 잘 나아갈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프로듀서에게 공연에 대한 책임과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프로덕션에 임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하고, 관객들에게는 티켓의 값과 충분히 교환가치가 있는 작품을 보여줘야 하는 책임이죠. 한편 프로듀서가 가진 유일한 권리는 ‘나의 색’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겁니다. 프로듀서가 가진 철학과 방향성을 작품을 통해 지향해 나가는 주관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에서 기획자로. 처음에는 인형극 배우로 무대에 섰고 이후 배우와 연출을 번갈아 하며 연극을 했습니다. 1993년에 연극 <너에게 나를 보낸다> 조연출을 하면서 당시 배우로 섰던 현재 PMC의 송승환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그 작품 후 대표님이 뮤지컬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를 제작하려고 하는데, 기획 일을 도와달라고 하시더군요. 당시 치열교정 중이라 배우도 못할 때여서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둘이 시작하게 된 것이 환 퍼포먼스(현 PMC프로덕션의 전신)였습니다. 그 작품 후 10억의 제작비가 들어간 당시 블록버스터 급이라 할 수 있는 창작 뮤지컬 <고래사냥>을 하면서 본격적인 지금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언챙이 곡마단>과 브로드웨이. 1986,7년 그 즈음에는 세실극장에서 하는 연극이 굉장히 대단했습니다. 극장 공연 티켓이 회수권처럼 나왔었는데 한 장씩 뜯어가며 다 봤죠. 김상렬 선생님의 <언챙이 곡마단>에서 김갑수 선배님이 백제 의자왕을 맡으셨어요. 지금까지도 정말 무대에서 벌처럼 날아 나비처럼 쏘는 선배님의 연기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때 연극 무대에 대한 동경을 더욱 가지기 시작했죠.

그 후 크고 작은, 가난하고 여유있는 극단들에서 배우로, 제작일로 작업하다가 1994년 처음 브로드웨이에 가게 되었는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전까지 뮤지컬은 전혀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그때의 브로드웨이 작품들인 <오페라의 유령>, <선셋 블로바드>, <레미제라블> 등을 봤으니 그 충격이야 말로 못했죠.





비자도 안 나올 뻔. 1994년 <고래사냥> 공연을 마치고 송승환 대표님과 브로드웨이에 갔었습니다. 연극인이 일정한 세금을 내는 사람도 아니고, 미국 비자 받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동안 작업했던 공연 자료들을 준비해 미국 대사관에 가서 인터뷰를 했는데, <고래사냥> 자료를 보여주면서 “이 작품을 송승환씨와 같이 했다”고 강조했어요. 그때 대표님은 유명한 스타셨으니까요. 결국 비자가 나왔는데 거기 쓰여진 조건이 ‘seven days with 송승환’이었어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간 브로드웨이에서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김광석에서 <달고나>로. 뮤지컬 <맘마미아>가 한국에서 공연되기 전 브로드웨이에서 보고 앞으로 쥬크박스 뮤지컬이 하나의 장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쥬크박스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 보기로 했고, 한국을 대표하고 뮤지션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고 김광석씨의 음악으로 공연을 만들고자 했죠. 하지만 과정상 문제가 생겨, 김광석의 음악 뿐 아니라 그 시대의 가요들을 고루 사용하는 작품으로 수정했어요.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만 촌스럽지 않은 이야기와 함께요. 주 소재를 ‘새우깡’으로 잡았죠. 새우깡은 1971년생인데 여전히 사랑 받잖아요. 뮤지컬 새우깡이 한창 잘 기획, 제작되고 있는 참에 약속한 기업 후원이 갑자기 취소가 되었습니다. 특정 이름도 사용하면 안 되었고요. 그래서 다시 수정해서 최종 선보인 작품이 뮤지컬 <달고나> 입니다.




직관. 작품이 가진 요소와 특징에 따라 매번 경우가 달라지지만, 제작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스스로의 ‘직관’입니다. 뮤지컬 <달고나>는 ‘쥬크박스 뮤지컬을 만들어 보자’라는 컨셉에서 시작된 것이고, <뮤직 인 마이 하트>는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경우입니다. 국립극장에서 신인 작가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작품이 굉장히 좋아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얼마 후에 작곡가 원미솔씨가 한번 보라고 건네준 대본이 예전의 그 신인 작가였던 성재준씨의 작품이었죠. 대본도 역시 재미있어서 바로 뮤지컬 <뮤직 인 마이 하트>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연극 <남자충동>의 경우는 텍스트를 읽고 스스로 흥분이 되더라고요. 정말 대본이 좋아서 제작을 하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배우와 스텝으로 일했던 경험들. 예술가 출신이기 때문에 예술적인 요소를 보고 판단하는 직관력 등 저에게 본능적 자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DNA가 제게도 있으니까요.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의 진면목을 알아본다든가, 여러 상황에서 대화를 주고 받는 기술, 실천적 아이디어 등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10년 이상 무대에서 배우로, 스텝으로 일했던 경험이 지금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제게 가장 경쟁력 있는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을 뛰어 넘는 소통. 공연의 핵심은 소통입니다. 프로덕션에 함께 있는 사람들, 또 관객들과 오늘 소통이 되었다고 해서 내일도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는 보장이 없지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소통이 ‘사실’의 것들만 주고 받는다고 해서 100%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나 배고파”라고 말한 사람에게 “그럼 밥 먹어”라고 대답했을 때, 오히려 더 기분 나쁠 때가 있잖아요. 배가 고프다고 말 한 것은 정말 배가 고픈 것 말고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거죠. 많은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선배님들이 했던 것을 보면서 배우고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두려운 것은 ‘온전히 소통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만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소통을 위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빌리 엘리어트. <빌리 엘리어트>는 공연을 좀 아는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타클한 재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제한된 무대에서 상상하는 재미, 상상력과 무대가 가진 기호 등이 가져다 주는 재미가 커요. 여기에 휴머니티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아주 맛있는 정식을 먹고 나온 기분이었어요. 지금도 “빌리!”하고 외쳐부르는 마지막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내실을 기하는 탄탄한 작품. 오늘의 목표가 내일의 목표입니다. 현재는 <내 마음의 풍금>이 지상 과제입니다.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상업적으로 건강한 공연으로 거듭나서 기회의 작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관련된 사람들이 계속 한솥밥 먹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저의 목표에요.
또 언젠가는 타짜 프로듀서가 나올 겁니다. 그런 문화가 생겨야 되고 그러기 위해선 생산 뿐만 아니라 극장과 관련된 유통 문화도 함께 발전해야 됩니다. 이런 일들이 조성되는 데에 제가 할 일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내수 시장을 건강하고 탄탄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에겐 면죄부가 있다. 사실 관객들에게는 공연에 대한 책임을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관객이라 함은 ‘특정’이 아니라 ‘다수’잖아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로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제게는 생산과 유통이 잘 진행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은 적어도 자신의 돈을 내고 즐기는 사람들이에요. 따라서 공연에 대한 어느 정도의 권리는 있다는 것이죠. 최근 일부 관객들의 여론 몰이에 관해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건 어찌 보면 큰 몇몇 단체와 작품들이 치루는 유명세일 수도 있고, 성장통일 수도 있습니다. 억누른다고 억눌러지는 것도 아니죠. 다만 부정보다는 긍정의 불빛을 더 키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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