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지휘자 프로듀서는 스포츠에서의 감독이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각 파트에 알맞은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할 책임이 있고, 뽑은 사람들에게 믿고 일을 맡겨야 할 의무가 있어요. 거기에 수반되는 작품의 퀄리티, 자금에 대한 조달 책임도 프로듀서가 지죠. 또한 파도가 높이 칠 때, 과감하게 어느 방향을 제시해줘야 합니다. 결국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클래식에서 뮤지컬로 원래부터 공연을 보러 다닌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클래식을 하고자 마음을 먹은 이후 의도적으로 클래식 위주로 음악을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다 서울대 성악과에 입학했고 음악 비즈니스와 관련된 MBA에 합격해 유학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클래식을 하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서 쑥 빠져 나와 버리더군요. 계기는 정말 우연찮게 왔습니다. 삼성영상사업단이 공연사업에 진출한다는 기사 하나였어요. 그걸 보고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공연이 이렇게 매력이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유학을 포기하고 삼성영상사업단에 들어갔습니다.

96년에 입사해, 공연팀에 지망했습니다. 입사한 이후 후회는 하지 않았어요. 내가 원해서 들어갔고 일도 많이 배웠기 때문에. 가장 어려웠던 건 비즈니스 마인드를 배우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난 컴맹이기까지 했습니다(웃음). 그곳에서 전략적인 사고, 틀, 거시적인 기획을 배웠습니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조직이었죠. 이건 나중에 내 일을 하면서 나의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하는 힘이 됐습니다. 클래식을 하던 마인드와 함께 큰 자산이 된거에요.



<42번가> <눈물의 여왕> 국내 작품으로는 <42번가>와 <눈물의 여왕>이 생각나네요. <42번가>는 음악과 스탭들을 관리한 첫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나중에 우리나라에서 <오페라의 유령>이나 <미녀와 야수>을 만들 때에도 좋은 경험을 제공한 뮤지컬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의 여왕>은 처음으로 만든 창작 작품이었어요. 뮤지컬이라 칭하지 않고 창작 가극이라고 했었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외국에서 보고 정말 감동 받은 작품은 <빌리 엘리어트>입니다. 모를 때는 감동=스펙터클이었지만, 스펙터클 없이 드라마로 감동을 주는 이 작품에 매료됐어요. <미스사이공>이나 <레미제라블>도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문화의 차이 라이선스 공연일 경우 문화 차이 때문에 오해가 생길 때가 많습니다. <스위니 토드>를 준비할 때도 연출과 옥신각신을 많이 했어요. 밥 먹다가 소리를 치기도 했고. 그네들의 문화에선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나중에 서로 사과를 했지만, 이해하기까진 시간이 걸렸죠.
정성을 들이면 들일수록 더 고될 때가 많아요. 차라리 몰랐으면 편했을 일을, 정성을 들여 헤집다 보니까 문제가 생기고 오해가 생길 때가 많습니다. 작품을 하나하나 할 때마다 배워가는 것들도 많고요.




작품 본질이 주는 감동 작품 선별은 마케팅적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작품의 본질이 나에게 주는 감동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의 감과 언론 등의 평가를 따지고, 그 다음에 조명 의상 등이 무대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 지 봅니다.
<쓰릴미>는 카피를 보고 반한 경우에요. ‘관계가 살인을 부른다’라는 말이 참 멋졌습니다. 뉴욕 공연은 정말 소박합니다. 박스만 놓고, 작곡가가 연기를 직접 했죠. 그런 작품은 미국에 많습니다. <쓰릴미>는 그곳의 다양한 작품들 중에 하나에요. 전 이 작품을 보고 그저 “좋은데?” 라는 생각으로 도전을 했습니다. 상을 받았다고 작품을 보지 않기 때문에 이 작품을 고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듀서들 마다 보는 시선, 감이 다릅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배경, 읽은 책, 여러 가지 잔상들이 작품을 보는 눈에 영향을 주니까요. 소위 ‘유명한 작품’은 모든 프로듀서들이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작품을 보는 시각은 프로듀서들 마다 차이가 있는 거죠.




일 잘하는 스탭보다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사람과의 작업 프로듀서는 지휘자입니다. 지휘자는 스탭들을 볼 줄 알아야겠죠. 저는 ‘열심히 하는 스탭’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일 잘하는 사람 이전에 서로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사람과 일하고 싶어요. 실력은 극복할 수 있지만, 팀워크 해체는 극복이 안 되지요. 대본은 연출과 배우만 보는 게 아닙니다. 무대, 의상 등 모든 스탭들이 꿰고 있어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와요. 귀가 열려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고, 지금 그런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배우는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을 뽑습니다. 뮤지컬이니까요. 이런 스탭과 배우들이 모이면 놀라울 정도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납니다.



전 독불장군 스타일이에요. 작품을 고르고 결정할 때 제가 고르느라고 애를 쓰지만, 주위에 물어보진 않죠. 이게 제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오너십이 강한데, 이건 회사를 꾸리기 전 직원이었을 때도 똑같았습니다. 제 상사들은 버거워했죠(웃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점이 필요할 때가 많아요. 항상 부족한 상황에서 뛰니까. 또 클래식과 기업 문화를 모두 익힌 건 강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여러 각도의 시선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선 요즘 없어요. 볼 때 마다 실망했습니다. 첫째는 배우에 대한 실망, 둘째는 무대, 조명, 의상 등 디테일 등이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진정성의 전달 내가 처음 받은 감동을 관객들에게 전달 하는 것. 진정성의 문제인데, 그 점이 잘 되면 흥행에도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이 간혹 깨지기도 하지만요. 어쨌든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좋은 공연을 선별해 주는 관객 우리나라 공연에는 다양성이 부족합니다. 마니아 층만이라도 안정적으로 좋은 작품을 알아봐준다면 다양하고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 수 있어요. 전 우리나라 공연 마니아 층이 팬클럽의 독을 뺐으면 합니다. 제발, 관객들이 배우 말고 작품을 보러 오셨으면 합니다. 작품 자체 관심 보다 ‘저 오빠 너무 멋있었다’며 배우에게만 감명을 받고 가지 마시고요. 그렇게 되면 제작사나 관객이 둘 다 손해입니다. 기획사는 힘이 빠지고, 관객은 ‘오빠’ 보러 다니다 좋은 작품을 놓치게 될 수 있습니다 오천 명의 제대로 된 마니아가 있으면, 좋은 작품은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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