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아의 건축사. 디자인은 영혼으로, 짓는 건축은 물질이라는 거죠. 어떤 영혼을 가지고 물질을 만드는 사람, 그 과정에 현실이라는 질료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현실, 우리가 꿈꾸는 삶, 즉 이데아죠. 이데아의 건설, 이데아의 건축사라는 생각이죠. 저는 이상주의자에요. 이상주의 연극론의 입장에서 현실이라는 바탕 위에서 우리들이 꿈꾸는 세계, 이상이라는 것이죠, 그것을 물질로 구체화시키는 건축사를 연출가라고 생각합니다.




난민촌에 사는 중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다. 제가 3대 외동아들로, 아버님이 바람 같은 분이셨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정말 잘 살았는데 중학교 들어가면서 집이 완전히 망해서 철거민들 사는 집단 이주촌에서 살았죠. 당시 부산의 일류 중학교인 부산중학교에 다녔는데 그 마을에 그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어요. 놓여 있는 현실과 내가 맞지 않다고 느끼는 그런 당혹감을 벌써 느꼈죠.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우리 집 방 문을 열어놓고 무료로 초등학생들을 가르쳤어요. 그 때 비로소 세상과 소통을 했지요. 지금도 그 애들하고 만나고 있고, 제자 하나가 우리 극단에도 있어요. 그 때 연극을 했어요. 추석에 학예회를 하자, 우리집에 미닫이 문이 사이에 있는 방 두 개가 있었는데 학부모들 모셔놓고 그 미닫이 문을 막처럼 열고 닫으면서요. 그 때 이미 내가 지금 세계가 아닌 어떤 세계를 꿈꾸지 않았느냐, 생각하죠.

경남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토요회’라는 문예반에 들어갔는데 그때 학생들이 “이달에는 쇼펜하우어다” 그러면 전부 그 책 읽고 토론하고, 1학년 때 체홉의 ‘벚꽃동산’ 입센의 ‘인형의 집’ 읽으며 희곡을 접했어요. 또 제가 합창부이기도 했고, 노래도 했고, 지휘도 했고, 흥사단에도 들어가고, 원불교도 나가고. 세상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죠. 대학을 서울대 교육학과에 지원했는데 떨어졌고 그 때 서울 연극학교라는 곳을 알게 되었죠. 학비도 보통 대학보다 절반 밖에 안 되었고, 내가 빨리 세상에 가고 싶고, 연극을 하고 싶어서, 시험을 치고 들어가 보니, 유덕형, 오순택, 윤대선, 허규 등 지금 보면 엄청난 사람들이 다 있더라고요. 우리 담임 선생님이 오태석 선생이었어요. 또 유치진 선생님이 지방 학생들은 여름방학 때 지방에서 연극을 해라, 그러면서 브나로드 운동을 얘기 하셨는데, 거기에 대단히 감동을 받아서 애들을 모아서 부산에서 연극도 했죠.




<오구> 지금까지 한 100편 정도 연출한 것 같은데, 당연 <오구>가 기억에 남아요. 1990년도 문예회관에서 할 때는 소극장에 관객이 300명이 들어왔어요. 줄이 당시 바탕골 소극장까지 섰으니까. 그 당시 제일 예쁘다고 하던 신은경 아나운서가 어머니도 모시고 와서 보고, KBS 퀴즈대회에도 출제가 됐고요. 그런데 희한한 게 관객들이 그렇게 욕을 하더라고. 보시다가 나가고요, 이거 이윤택 연극 아니라면서. 그 전에 제가 <시민K> 같은 쎈 연극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자꾸 이 작품을 외국에 보내는 거야, 동경국제연극제, 독일에센연극제에도 가고.

그러다가 93년, 94년에 열기가 좀 식더라고요. 우리의 오구는 마당극이고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걸 접든지 아니면 조금 더 대중화를 시켜야 한다고 해서 가장 한국적인, 심술궂고 장난스런 오구의 할머니가 누구일까, 하다 강부자다! 하고 강부자씨를 찾아갔지요. 그때 강부자씨가 대본도 안 보고 계약했어요. 그 전에 <문제적 인간 연산>을 보셨는데 그걸 보고 뻑 가셨대요. 강부자씨가 하는 오구는 좀 느슨한 대중극이 되었고, 남미정씨하면 마당극이 돼요. 그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 작품이 지금 연희단거리패를 먹여 살렸죠.





김갑수씨가 <길 떠나는 가족>으로 상을 탔잖아요. 그 작품이 대상, 희곡상, 연기상 다 탔는데 나는 그 때 연출상을 못탔어요. 누가 봐도 연출 작품인데. 그러니까, 나는 상을 받을 데가 많다는 거야. 그 당시에 오태석 선생이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했거든요. 그래서 나 상 안 받는 거는 괜찮은데 왜 오태석 선생은 안 주냐, 했더니 배우 두 명 나오는 다른 작품에 주더라고요. 그래서 항의했죠, 대한민국 썼었다(웃음). 그리고 부산 내려가 버리자, 서울 상대 안 한다(웃음). 그리고 김갑수씨가 인터뷰 하는데 이윤택씨가 참 가혹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 그래서 섭섭했는데, 어느 잡지에선가 “내가 연극을 시작하게 해 준 사람이 김상렬 선생이고, 나를 배우로 변화시켜 준 사람이 이윤택이었다”고 말하더라고요. 오달수도 그렇게 얘기하고, 성대에서 가르쳤던, ‘꽃 보다 남자’에 나오던 이민정이라는 애나 조수아라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애도 밀양 내려와서 휴학하고 작업했는데, 가르친 애들이 다 잘 돼서 흐뭇하죠.




역사는 승자들의 세계, 예술은 패자들의 세계. 객관적인 현실과 개인적인 현실이 있습니다. 나 개인의 현실적인 문제는 결핍이에요. 항상 연극은 패자부활전이라고 얘기 하는데, 승자들은 연극 할 필요가 없으니 연극 안 합니다. 결핍되고, 상처받고 상실감을 느끼고 억압된, 즉 현실에서 만족할 수 없는 패자들이 연극을 하죠. 제가 결핍되었고, 스스로 연극을 만드는 동기 자체가 결핍되어 있으니, 결핍된 삶을 용납하지 못하는 거죠.

현실이 지루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고, 그걸 견디지 못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확보할 수 없으니, 그 패자들이 꿈꿨던 것이 무엇인가, 그 사람들의 삶을 끄집어 내어서 펼쳐 놓은 것이 연극입니다. 그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들이 이렇다’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비록 패배했지만, 그리고 내가 결핍 됐지만, 내가 꿈꾸었던 것이 이런 것이다, 그들이 꿈꾸었던 것이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것이 제가 만드는 연극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역사극이 그렇겠죠.




적극적으로 이끄는 이상주의 연극. 스타일은 연출가의 역할과 세계관에 따라서 달라요. 박근형이 하는 연극, 자연주의, 현실주의적인 것들은 연출이 해석자, 조정자, 카운셀러 역할로 해야죠. 하지만 제가 하는 연극들은 주로 현실을 뒤집는, 현실을 뚫고 솟구친다거나, 현실을 점복시켜버리려고 하는 연극들이거든요. 배우들은 이미 현실의 습관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제가 하고자 하는 연극을 하기 위해선 반 현실주의, 현실에 대한 안티 체제, 이상, 그런 이상을 꿈꾸기 위해 나름의 메소드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게 메소드 연극입니다. 생태적으로 극우와 저항의 기운을 끄집어 내야 하는. 그런 연극들은 연출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되거든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 어느 쪽에 있다고 확실히 방향 제시를 해 줘야 하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스타일로, 즉 영혼과 물질, 어떤 방법론을 제시해 줘야 하는 거죠. 그게 소위 창조적 연출가의 역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창조는 다 하는 거니까, 반 현실주의, 이상주의 연극이라고 하죠. 연극 장르에 따라서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배우의 이기심을 자극, 결국 변화시킨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보람 있는 것이 배우와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저는 늘 “당신들이 늘 생각하고 꿈꾸는, 그 이상의 세계가 있다. 당신들이 알면 얼마나 알고, 배우면 얼마나 배웠냐”라고 솔직하게 말해요. “나도 마찬가지지만 당신들이 믿고 있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무대에 서는 건 당신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당신이 쓰이는 무대 공간 그 자체에 더 많은 세계가 있는데 당신 고집만 피우고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고 하면 안된다”, 그렇게 배우들을 갈구죠(웃음). 국립극단 장민호 선생님부터 저 밑의 전도연까지 다 저랑 했거든요.

자존심 상한 배우들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고 잘난 척 하고 싶어하는 배우의 이기심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가 좀 악명이 높은데, 결국 그 배우는 반드시 개선 되요. 배우의 이기심을 자극하고 끌어내는 과정에서 결과가 좋아진 거예요. 내가 저 배우를 변화시켰다는 것이 제일 어렵기도 하지만 제일 성취감이 있어요. 배우들이 하고 싶어하는 게 다양하지 못하거든요. 상투적이고 똑같아요. 그러니까 배우들을 변화시킨다는 게 다양성을 가지는 것이죠.




<세일즈맨의 죽음> 독일 샤우뷔네 극단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보고, 와, 저게 리얼이다! 라고 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움직이는 게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하는데 진짜 리얼은 이유가 있을 때 움직이는 거에요. 리얼한 인식은 반드시 형식을 가진다라는 것이 리얼리즘이죠. 그래서 우연히 독일에서 보고 김철리 감독에게 추천했어요. 재작년에 국제예술제 때 와서 남산드라마센터에서 공연 했었죠.

<카바레> 2년 전 동베를린에 갔을 때 유럽연극제(EUROPE THEATRE PREIZE)가 열려서 800석 정도 되는 베스트 극장에서 로버트 윌슨이 연출한 <콰르텟>, 로베르 르빠주의 <안데르센 프로젝트> 등 8편의 작품을 봤어요. ‘아, 이게 현대 연극이구나’ 했지 별 감흥은 없었어요. 보고 나오는데 온 시가지에 <캬바레>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거예요. 40유로 정도 주고 예약을 하고 택시를 타고 <카바레> 하는 극장으로 가자고 했더니 막 공연을 봤던 베스트 극장 앞에 내려 주는 거예요. 베스트 극장 주차장에 천막을 쳐 놓고, 다 앉아 봤자 300석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무대가 있더라고요. 도대체 이 조그만 무대에서 어떻게 <카바레>를 하느냐, 했는데 제가 본 뮤지컬 중에서 세계 최고였어요.

5명의 악단이 온갖 악기를 라이브로 연주하고, 극장이 조그마니 지나가는 열차하며 전부 미니어처로 만들었어요. 거기에 껌뻑 갔죠. 또 여자가 3명 나와서 춤을 추는데 누가 주인공인지 예측을 못할 만큼 실력이 똑같은 거예요. 더 놀란 거는 거기 나오는 할머니 노래가 천상의 소리처럼 너무 아름다워서 주인공은 완전히 안 보였어요. 그래서 누군가, 했더니, 브레히트와 작업했던, 미국 뮤지컬의 드라마를 있게 해 준 쿠르트 바일(독일 출신 미국 작곡가)의 미망인이었어요. 천막을 친 작은 극장에서 돈도 40유로 정도만 받고 하는데 거의 퍼펙트 했어요. 배우들의 자세, 관객에 대한 열정, 인텔리전스 한 것, 연기적인 것이나 노래 실력이 엄청났어요.




미래를 위한 농사. 미래를 위한 한국 사회는 이제 다 해체됐다고 봅니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거죠. 현재 서울 중심의 한국 사회는 정치부터, 그렇잖아요. 누구도 이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잖아요. 지금의 국민은 옛날과는 달라요. 예전에는 ‘대표작이다’ 그러면 우르르 몰리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소통부재죠. 예술도 홍보전쟁, 마케팅으로써 결정되잖아요. 저는 솔직히 한국 사회는 이제 완전히 무너졌다, 정신적인 가치는 무너지고 물질만 남은.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에 서울에서 내가 맞서 싸울 적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깨끗하게 절망하는 것이죠. 세상에 대해서 무언가 말 할 사람인데 말할 게 없어진 세상이고. 최근 ‘숲으로 간다’라는 시를 썼는데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울 때는 본래적인 숨을 쉬기 위해서 다시 숲으로 가야 한다’, 은둔이죠. 그럼 은둔의 길로 들어서서 뭘 하느냐, 하면 농사를 지어야죠. 미래를 위해서. 역사는 순환하니까 상승도 있고 하강도 있고, 지금 가치 중심이 다 무너진 세상에서 잘난 척 할게 아니라 해체 속에서도 다시 미래를 건설해야 하니까 재 건설을 위한 후진 양성을 할 계획입니다.

연희단거리패에 2, 30대가 많이 모였거든요. 계속 젊은 애들을 무대에 올리고. 서울에서는 안해요, 공기가 안 좋으니까. 나하고 연극 하고 싶은 사람들은 밀양으로 내려와라, 그런데 밀양도 이제 너무 커졌어요. 거기는 공연장으로 유지하지만 김해 도요마을에 숙고와 훈련장을 만들었어요. 거기서 배우들을 훈련 시키려고요. 그 다음에 출판이죠. 올 가을에 ‘영혼과 물질-배우를 위한 형이상학, 이윤택 연극론’이 나와요. 배우들이 너무 형이상학이 없으니까. 책 출간하고 후진 양성하고. 그러면서 나도 다시 뭘 할지는 모르겠는데, 내년 루마니아 세계 햄릿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았으니 내가 한 <햄릿>을 다시 해보자, 다시 본질부터 시작하겠다, 이런 좀 더 본질적인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일반 관객들에게.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불만이 없어요. 세계 최고의 관객들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연극을 좋아하고 호의적으로 보려고 해요. 독일 관객들은 작품이 안 좋으면 욕하면서 의자를 탁탁 치고 공연장 밖으로 나가버리거든요. 왜냐하면 자기들이 돈을 냈으니까. 소리가 안 들리면 “더 크게” 그래요. 굉장히 무서워요(웃음). 우리 관객들은 너무 너그럽고 참아주는데 안 그래도 된다는 거죠. 조금 자기 주장도 했으면 좋겠어요. 밀양 할머니들이 그래요, 제일 무서워요. 보다가 “야야야, 재미 없다, 가자, 가자, 가자” 그러곤 바로 무대 앞으로 지나서 나가요. 젊은 연출가들에겐 밀양은 겁나는 곳이에요. 그게 관객의 권리라는 거지.

대신에 공짜는 아니다라는 겁니다. 지금 제일 큰 문제가 공짜 관객이에요. 공짜가 우리 연극을 완전히 자멸시키는 거예요. 지원금은 2차 수입이고 1차 수입원인 매표 수입에 독립성이 없으면 연극은 무너집니다. 그래서 연극을 살리려면 돈을 내고 들어가라, 정 돈이 없으면 할인 혜택 이용하고. 밀양연극촌은 초대권이 없는 대신 밀양 시민들은 50% 할인을 해 줍니다. 또 돈을 내고 들어가야 더 꼼꼼히 연극을 보게 되요.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간단해요. 누구나 연극을 할 수 있다, 단 절대 아무렇게는 못한다. 선택과 결행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것은 뭐냐, 자기 집, 가족, 직장, 일상의 선을 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일상의 선을 넘으면 연극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러면 굶어 죽는 것이냐, 그렇지는 않다. 일상적인 행복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면 된다, 최소한 남에게 빌어먹지 않고, 옷 입고 다니고, 그 정도만 생각을 하면서 최소화 할수록 남는 부분이 연극이다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연극이 이런 것이라는 거죠. 대부분 연극을 하다가 중간에 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에요. 연희단거리패에 들어오려면 개인주의는 안되죠. ‘나’라는 것도 역사 속의 ‘나’, 무대 속의 ‘나’가 있는 것이죠. ‘우리는 공동체다, 그리고 같이 만든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역사 속의 기행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정리 :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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