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 관객에게 전하기 단순한 ‘테크니션’이 아니라 자기 색이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연출가인 것 같아요. 다 완성된 작품을 똑같이 하는 것을 두고 연출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직업 연출가가 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는데 그것은 이뤘어요. 하지만 대한민국 공연예술계에 직업 연출가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는 물어보고 싶어요. 주된 직업에 의해서 파생된 다른 작업을 하는 것엔 동의할 수 있지만, 연출가로서 생활이 안 되니까 다른 일, 예를 들어 학원 강의나 아르바이트 등을 하는 게 어떻게 직업 연출가인가. 저 역시 고민 중이죠. 사회적인 인식도 아직 부족하고, 시장 등의 여러가지 조건 등이 바뀌어야 하지만, 정말 직업 연출가가 되려면 독한 마음 먹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곳에서 탈출하면 뭐가 있지 않을까 초등학생 때 윤복희, 추송웅 선생님이 나오신 <피터팬>을 봤어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대구에서 살았는데 가끔 서울 가 보면 대구와 너무 다르니까 ‘왜 여기서는 뭘 볼 수가 없지?’가 늘 불만이었어요. 막연한 동경에서 시작되었죠. ‘이 작은 도시를 탈출해 보면 뭔가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렇게 고등학생 때 서울에 와서 계원예고를 가게 되었습니다.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사투리라는 언어적인 약점도 있었고 배우로서 제가 가지지 못한 많은 것들을 요구하니까 한계를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 때 당시 학교 선생님이셨던 정상수 선생님께서 “배우로서의 가능성 보다는 연출가로서의 가능성이 더 있어 보인다”고 굉장히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당시 국립극장에서 하는 ‘청소년예술제’가 처음 시작했는데 선생님 말씀 듣고 다음날 바로 하겠다고 했죠. 학교 참가 작품에 선생님이 연출하시는 것을 보면서 배웠어요. 대학 입학하고도 내가 뭘 해야겠다, 정확한 생각은 없었지만, 군 제대 무렵 ‘내가 나가서 뭘 해야 할까, 뭘 할 수 있을까’를 정말 많이 생각 했죠.

그렇게 결정한 후에는 번복이 없었어요. 대학 복학해서 3년간 학교에서 먹고 자면서 열 한 개 작품을 연출했어요. 다른 선후배들의 기회까지 뺏어 온 것이 미안하긴 했지만, 내가 연영과 다니면서 얻어갈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 한 가지만 생각했죠. 기회가 닿는다면 다 연출해서 깨지면 깨지는 것이고, 잘 되면 잘 되는 것이고. 졸업 하고도 고민의 여지가 없었어요. 당연히 대학로 나와서 연극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 했지요.





저는 정말 대부분의 작품이 다 좋아요. 하다못해 3년 전 브로드웨이에서 소위 ‘망했다’고 했던 <타잔>도 좋았어요. 개인적인 성향에 의해서 어떤 작품이 더 좋았다고 얘기 할 수는 있겠지만, 전 거의 대부분의 작품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에 존경심을 느껴요. 물론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하는 작품도 있지만, 그걸 통해 공부하는 거죠.

개인적으로 라이선스 작품 중에는 <맨 오브 라만차>를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흥행과는 상관 없이 작품의 텍스트 만을 놓고 보자면, 대본을 받았을 때 느껴지는 무게감이 참 좋아요. 뮤지컬 장르가 절대로 가볍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준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런 정서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배우들이 관객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2시간의 열띤 토론 <쓰릴 미>가 제일 많이 회자 된 작품이죠, 관객들도 굉장히 적극적이었고. 아마존에서 대본까지 공수해서 그들끼리 번역하고는 “왜 이 부분은 틀리게 번역했냐”는 메일도 받았어요. 그들과 만나서 두 시간 애기 한 적도 있지요. 저는 그렇게 대화 하는 거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작품 많이 공부해서 오신 분들이 제가 10개 만든 것 중에 9개 가지고 가시면 좋은 것이니까요.



이 시대에 이 작품의 가치를 관객에게 이야기 했을 때, 값어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판단이 중요합니다. 또 정서적으로 스스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 그런 작품은 연출하기가 곤란해요. 그것이 창작이든 라이선스 작품이든 상관 없어요. 하지만 라이선스 작품은 상대적으로 연출가가 손 댈 수 없는 부분이나 정서적으로 부딪히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연출 작품 선택 시 많이 거르게 되는 건 있어요. 2009년에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창작 작품에는 발 디딜 곳이 굉장히 많거든요.

마이너리티가 강한 작품을 많이 하긴 했어요. 그렇게 말씀들을 하시니까 표현을 ‘마이너리티’라고 하지만, 저는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스스로 약간의 패배주의를 갖고 있고, 또 변방에 대한 편안함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실패한 사람 내지는 변방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다른 이야기는 저 말고 할 사람이 많고, 공연이 아니라 다른 매체에서도 많이들 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제가 또 그걸 이야기 할 이유가 없잖아요. 제 정서와도 안 맞고요. 반대로 그 외 숨겨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또한 공연은 인생의 단면이어야지, 일상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조금은 남다르게 느껴지는 작품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 작품을 소화하려면 굉장히 많은 시간 동안 연출가와 배우들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해 주고 파악해야 해요. <쓰릴 미>나 <헤드윅> 같은 진한 작품에서 만날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 서로의 밑바닥을 다 드러낸 후에는 그 작품도, 또 다른 작품도 함께 하기가 더욱 좋아집니다. 또한 연출가가 배우에게 무대 위에서 확신을 갖게 해 주어야 연출가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공연이 좋다, 안 좋다가 아니라 내 양심의 기준으로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사람을 설득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직업인 연출가로서 제일 먼저 극복해야 하는 게 그 부분이더라고요. 내가 가진 생각과 작품의 컨셉을 배우와 스텝에게 이해 될 때까지 설득해야 하니까요. 오랜 시간 그렇게 하다 보니 ‘내 성격이 이랬나?’ 싶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어요. 어렸을 때는 굉장히 독선적이었고, 고집도 셌거든요, 물론 지금도 고집은 세지만.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겪으면서 생긴, 그리고 앞으로도 극복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편영화를 해 보고 싶어요. 주변에서 접해보니 흥미롭더라고요. 몇몇 작품이 있긴 하지만, 왜 한국에서는 뮤지컬 영화를 안 만들까, 물어보고 다녔어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장르에 대해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이지요.

하지만 제 직업은 공연 연출가입니다. 소박하지만 대단한 꿈은 하나에요. ‘내가 언제까지 계속 신작을 생산해 낼 수 있을까’. 물론 했던 작품도 해야 하지만, 선생님이 되어서 뒷짐 지고 같은 작품만 계속 하는 건 원하지 않아요. 제가 신작을 못 낼 때 연출을 그만 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 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런 작품이 필요하겠다고 해서 신작을 낼 수 있을 때까지가 제 한계인 것 같아요. 그것을 오래 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세요. 문화의 위, 아래를 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공연이 갖고 있는 가치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푸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분석을 하면서 보든, 한번 재미로 보든, 공연을 통해 지적 향유를 느낄 수도, 감정의 사치를 누리거나 판타지를 가질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의 답은 관객들에게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관객들에게 아주 조금 섭섭한 건, 배우에 대해 자꾸 평을 하는 부분이에요. 어떤 배우를 두고 싫다, 좋다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면 그 배우는 스스로 변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되거든요. 그럼 작업하기도 어려워지죠. 배우는 정말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팬들 때문에 이 연기는 안되겠는데요’라고 말하는 건 저에게 굉장히 곤란하거든요.



정리: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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