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대장
연출가와 산악대장은 닮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대원들을 꾸리고, 대원들의 능력을 조율해서 그들의 역량을 최대로 뽑아내고, 목적지에 도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줘야 하거든요. 스탭, 배우들과 함께 최고의 무대라는 목적지를 향해간다는 점에서 비슷하고요. 또, 산악대장은 새로운 산을 찾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도 하잖아요, 연출가가 관객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소개한다는 점에서도 닮았죠. 지휘자 역할, 안내자로의 역할을 하는 산악대장을 보면 연출가로서 제가 해야 될 임무와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요.



소설가 지망생, 대학로 죽순이 대학교 입학 할 때만 해도 소설을 쓰고 싶어서 국문과에 들어갔어요. 입학과 동시에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정말 많구나’ 라는 현실에 부딪혀서 좌절의 시간고 있었죠. 그 때 극회 선배의 자장면을 사준다는 유혹에 넘어가서 바로 극회에 나가게 됐어요. 처음에는 연기부터 시작을 했는데 연기에는 영 싹수가 없었어요. 무대를 올리는 일은 재미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게 없을까를 고민했고, 조연출 일을 맡게 됐어요. 대학교 2학년 때 극회에서 첫 연출을 하면서 처음으로 무대의 재미를 알았던 것 같아요. 영국에서 봤던 <캣츠><미스 사이공><라보엠>등의 무대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넘어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어요. 그 무대를 보면서 연출의 재미를 느끼고, 무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면서 본격적으로 연출가로의 꿈을 꿨던 것 같아요. 199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을 앞두고는 대학로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열심히 보고 배웠어요.





<오! 당신이 잠든 사이>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에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해서 지금의 결과를 낸 작품이거든요. 대본을 썼을 때도 제 스스로 혼란스러울 때였어요. 나이는 먹어가고, 졸업은 해야겠는데 제 스스로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 때 마음의 평정을 얻고 싶어서 꽃동네에 봉사를 하러 갔어요. 처음에는 3,4일 생각하고 갔던 일이 그곳에 있는 아줌마, 아저씨들과 친해지다 보니 한 달 반이 넘게 그곳에서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죠. 그러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생겼고, 꼼짝없이 집에 갇혀있어야 했어요. 그 때 꽃동네를 생각하면서 쓴 작품이 <오! 당신이…>였어요. 제가 쓴 작품을 보고 다들 ‘이게 뮤지컬 소재야?’. ‘이게 되겠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대부분 거절하셨어요.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주목 받지 못했던 작품이 묻혀지지 않고 빛을 봤다는 점에서 참 감사하죠. 저를 연출자 장유정으로 거듭나게 해준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절대 잊지 못할 제 인생에 있어서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 <김종욱 찾기>를 통해서 여행을 갔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2004년도에 <김종욱 찾기>로 ‘이스트로 폴리타나’라는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서 슬로바키아에 갔었거든요. 당시에 외국인 관객들이 한국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고 공연을 한다는 점을 굉장히 놀랍게 생각하는 거에요. 그전에는 <명성황후> 같은 작품만 봤기 때문에 한국공연은 당연히 한복을 입고 나온다고 생각 했던 거죠. 한국인들이 청바지를 입고 공연한다는 점이 신문에도 나올 정도로 꽤 큰 이슈로 다뤘어요. 당시에 관객들의 반응이 괜찮아서 생각지도 못하게 바로 세르비아로 가서 공연을 했죠. 그 때는 숙소를 잡을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세르비아에서는 배우들하고 같이 노숙을 했어요. 세르비아 국립학교도 구경하고, 집시 음악도 듣고. 그 때 본 하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기 기억나요, 여행하는 내용을 다룬 작품 덕분에 했 던 여행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내가 꼭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요. 이 작품을 더 잘할 수 있는 연출가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저는 적극적으로 그 연출가를 소개해주는 편이에요. 연출은, 제 욕심만으로 할 수 잇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연출가가 작품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도 잘해야 하고, 스탭도 좋아야 하고, 심지어는 예매사이트까지도 잘 도와줘야 하죠. 그런데 작품을 망하게 할 수 있는 한 명이 있다면 그게 바로 연출가거든요. 전 일 년에 한 작품 정도 만을 하기 때문에 작품 선택에 까다로울 수 밖에 없어요, 작품을 선택하면 매일 작품에 관한 꿈을 꿀 정도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스타일이거든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작품인지, 제가 일 년 동안 지치지 않게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작인지, 그 회사나 프로덕션에서 저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판단해요.



자연스러움을 강조합니다. 대본리딩도 의자에 앉아서 하지 않고, 일어서서 진행해요. 그리고 처음엔 바로 뒤에 있던 의자를 점점 뒤로 뺍니다. 점점 뒤로 갔던 의자가 연습실 끝까지 갔을 때 대본을 덮게 해요. 그리고 각 장면의 목적을 설명해줘요. “약혼식을 앞둔 친구가 백화점에서 친구들이 골라주는 옷을 입어보는 장면입니다”라고만 설명 해주고 즉흥극을 해봐요. 그럼 정말 여러 가지가 나와요. 어떤 친구는 “옷 괜찮다”, “뚱뚱해 보인다”, 또 어떤 애는 “난 네가 약혼하는 그 남자 아니라고 본다” 이런 식으로요. 주연 배우 뿐만 아니라 앙상블도 함께 참여하면서 자신이 생각했던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이렇게 하면 같은 대사를 하고, 같은 춤을 춰도 각기 다른 표정을 지어요. 이 과정을 통해서 모든 배우가 살아있게 되는 거죠. 캐릭터와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은 공유, 공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최대한 열어두고 진행하는 편입니다.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6개월 이상 잡습니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는 공연연습을 들어가지 않아요. 공연연습이 들어가기 전에 의상, 무대 기본선, 디자인을 구상하고 블로킹 선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정도로 연출라인을 정리해둔 상태에서 연습에 들어갑니다. 물론, 배우들에게는 절대 들통나지 않도록 열린 상태로 진행합니다. 연출가로서 최대한 노력하고, 집중하려고 합니다. 작품 할 때는 100% 시간을 투자하고, 게으르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연습은 즐거운 분위기가 되도록 노력하죠. 연출가로서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 될 때까지 추진해요, 그러니까 연출팀들이 힘들어해요. 결과적으로는 좋은데, 과정이 워낙 힘들다 보니 툴툴대는 경우도 많아요. ‘장유정 조연출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웃음). 항상 미안해요.





뮤지컬 <바람을 불어라>
소극장 작품이었는데, 호흡이 정말 좋았어요 아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어도 간식을 잔뜩 사주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이야기가 굉장히 튼튼했고, 음악도 쉬우면서 마음에 와 닿았고, 무엇보다 열정이 빛났어요. 풋풋한 매력이 있는 잘 만든 소극장 창작뮤지컬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좋았습니다.



환타지, 스릴러 같은 장르 뮤지컬에 도전하고 싶어요. 제가 고여있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채워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인 것 같습니다. 연극, 무용극, 혹은 영화까지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게 공부하고 도전하고 싶습니다.




관객들에게 바라는 게 뭐가 있겠어요? 봐주세요, 이런 거죠(웃음). 뮤지컬에는 엔터테인먼트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예술 장르로서의 가치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뮤지컬에 관객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뮤지컬 시장이 훨씬 더 알차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봐요. 다양한 시선과, 열린 마음, 긍정적인 눈으로 작품을 봐주신다면 더 좋은 작품들이 나올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공연 자체의 질도 더욱 높아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리 :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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