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는 저마다의 색을 가지고 있는 많은 아티스트들 사이에 있습니다. 그들이 함께 갈 수 있도록 화살표의 방향을 정해주는 사람이 연출가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 각자에 맞춰 화살표의 각도와 방향을 잘 조절해 줘서 시간 안에 목표한 꼭지점에 도달하게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죠.



군생활 당시 책을 권하는 분위기여서 미학, 예술사 등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배우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접근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창조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대 후 오페라 조연출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무대 뒤에서 <라 트라비아타> 공연 준비를 하던 중 어느 순간 흘러나오는 노래에 딱 멈춘 적이 있어요. 200년 전 베르디가 작곡을 하며 떠올렸을 수 많은 생각들이 한 순간 제게 들어오는 느낌? 세기를 뛰어넘은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그 때부터 오페라를 연출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죠.

서울예대 연극과 복학 후 오페라 연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타대 음대 진학도 준비했었는데 되진 않았어요. 하지만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그 깊이와 아름다움에 매료 되었습니다. 이후 대학 졸업 때 아서 밀러의 ‘시련’을 뮤지컬로 바꿔 공연 했었고, 호응이 좋아서 1999년에 유씨어터에 <마녀사냥>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공연했습니다. 그 당시 지금 레히의 전신인 팀원들도 모이고 ‘성지’라는 극단도 생겼지요.




<레미제라블> 태산 같은 인물의 깊이를 어쩜 그리도 음악에 잘 녹여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뮤지컬이 예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의 폭을 넓혀야겠다는 자극을 준 작품입니다. 음악적인 편견을 잔인하게 깨 주었죠. 엔드류 로이드 웨버는 정말로 미친 사람이다, 싶을 정도로 록 장르가 지저스를 표현하기에 너무 알맞았는데 전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고요. 음악으로 표현되는 예수의 인간적인 부분이 어떤 교회 목사님의 설교보다 더 와 닿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었어요.

<맨 오브 라만차> 이 작품을 공부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삶의 깊이가 고스란히 잡혀 있는 인물을 작품에서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술은 너무 거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깊이 있는 인물은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깊이를 가진 인물 눈 앞에서 살게 해야 하는 인물이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그것이 나의 가슴을 얼마나 움직이게 하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음악이 떠오르니까요. 음악은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 수단이에요. 그래서 인물의 삶의 깊이가 있을수록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접근해야 하는 출발선과 목표점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고집도 세고요. 그렇지만 접근하는 방법은 배우들에게 많이 맞춰줍니다. 결국 표현하는 사람들이 배우들이기 때문에 그걸 잘 할 수 있도록 방향만 잘 잡아주면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디렉션 스타일이 배우에 따라 달라지지만 울타리를 굉장히 튼튼하게 쳐 놓고 자유를 주는 것이죠.



글과 음악 음악을 알고 있다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인물과 인물이 처한 상황을 표현할 때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제가 글도 쓰지만, 작가와 작곡가들에게 잘 설명하고 목표하는 곳까지 나올 수 있도록 끌어내는 데 음악을 알고 있다는 게 도움이 되죠. 인물의 심장 박동 수까지 만들게 하거든요. 그래서 그들과 더욱 밀접하게 작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청각적인 부분이 강한 반면, 시각적인 것이 약해요. 지난해 뉴욕 미술관에 가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서 ‘아, 사람들이 이래서 그림을 보는구나’ 하고 굉장히 크고 강한 깨달음을 느꼈어요. 미술관 안에 앉아서 펑펑 울 정도로요.(웃음) 단순한 점이 아니라, 여러 번의 붓 터치가 느껴지는 그 그림에서 갖고 있는 정서들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부분은 제가 시각적으로 끌어내는 건 다른 분들보다 약하지 않은가, 해서 고민하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인더하이츠> 2010년에 브로드웨이에서 보았는데, 배우와 스텝 간의 균형이 굉장히 좋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드라마는 좀 엉성했었고 원세트 무대에 자신들의 기량만 가지고 나온 배우들이 음악의 힘으로 진행하더라고요. 음악과 춤, 무대 운영 등 전반적인 균형이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세기를 뛰어 넘어 100년, 200년 후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뭔가를 들려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의 색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출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내가 만든 세상이 펼쳐지고 그걸 통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그 에너지로 한 사람의 삶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공연을 보기 전과 후는 다르니까요. 한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너무나 가치 있지만 무척 힘이 든 게 사실입니다. 기능적인 것들로는 준비하고 알아야 하는 것이 그 어떤 아티스트들보다 굉장히 많다는 거에요. 준비하면서 계속 채워야 하는 것이죠.

또, 연출은 화살표를 정해주는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그 방향이 강요에 의해서는 온전하게 전달되지 않아요.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교감해야 합니다. 연출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 과정을 성심성의껏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주인공 공연의 3요소에는 연출이 없습니다. 좋은 작품, 좋은 배우, 좋은 관객이 있어야 좋은 공연이 되는 것이죠. 때론 포용력을 갖고, 또 창작 뮤지컬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애정 어린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현재 대한민국 대다수의 관객은 배우가 창조한 인물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배우만 봐요. 그건 배우에게도 좋은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작품을 사랑해 주는 관객이 좋은 관객인 것 같아요. 작품을 보는 눈, 시야가 점점 넓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리: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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