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과 라이선스 뮤지컬의 안무는 개념이 다릅니다. 라이선스는 그대로 들여와서 하면 되는 경우가 많죠. 저는 대부분 창작 뮤지컬을 했어요. 뮤지컬에서 안무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지만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힘드네요. 지금 느끼는 안무자는 연출파트와 음악파트 중간에서 창작을 하는 사람인 것 같네요. 연출이 하는 작품의 전체 구성보다 안무자는 좀 더 섬세하게 파고들 수 있습니다. 음악을 늘일 수도, 줄일 수도, 없앨 수도 있죠. 그런데 거기서 안무자가 실수를 많이 하는 거 같아요. 전체적인 균형을 잘 잡아합니다.



저는 댄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상고 출신인데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간업소에서 춤을 추다 보니 안무가가 왕같이 보였어요. 그때부터 저희 팀 안무를 거의 제가 만들어서 선보였죠. 댄서를 10년 넘게 하다 송승환 대표님, 이윤택 연출님의 만드신 뮤지컬 <고래사냥>에 배우로 들어가게 됐죠. 지금 악어컴퍼니 조행덕 대표님이 연결해 준 거에요. 그걸 계기로 공연계와 인연을 맺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뮤지컬을 만나고 캄캄한 밤에 등댓불을 본 것처럼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춤을 추면서도 꿈이 없었나 봐요(웃음). <고래사냥>을 하면서 난 뮤지컬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죠. 물론 두려웠어요. 전 이미 그 일로 돈을 많이 벌 때였거든요. 하지만 모두 그만두고 뮤지컬로 왔죠. 정리하고 안착하기까지 1년이 걸린 것 같아요.

안무가 데뷔는 콘서트로 먼저 했어요. 이문세 형과 인순이 누나 콘서트에 뮤지컬 형식의 안무를 도입해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뮤지컬 <하드락카페> 안무 겸 배우를 맡게 된 게 뮤지컬 안무가 데뷔였습니다. 그 때 배우로 신인상을 탔어요(웃음). 정말 기뻤죠. 동사무소에 가서 직업란을 적을 때 ‘댄서’에서 ‘배우’로 쓰는데 기분이 묘하더군요. 안무 쪽 일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연기를 하지 않게 됐지만, 배우로서 서는 것도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예전엔 대본을 보지 않고 안무를 짰어요. 춤을 잘 추는 사람이 안무를 만들면 배우에게 춤을 강요해요. 제가 그랫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하느님이 그렇게 두지 않으시려고 했는지 고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2년 동안 지팡이를 짚고 다녔어요. 내 춤을 강요하지 못했죠. 그러니까 대본을 읽게 되더라고요. 그 뒤부턴 거의 한 학기 지난 교과서만큼 대본을 보고 또 보기 시작했어요. 이 춤의 앞과 뒤를 생각하고 넘버에 필요한 이미지를 생각하고 형상화하죠. 그 뒤부터 오히려 제 안무가 좋은 평가를 받고 (뮤지컬 시상식에서) 13번 후보에 올랐죠.




춤 추는 사람을 데리고 춤이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건 당연해요. 저는 춤을 안 되는 배우들을 데리고 드라마틱한 공연을 선보이고 싶어요. <형제는 용감했다> 배우들은 춤을 잘 추는 배우들이 아니에요.그런데 춤을 못 추는 것처럼 보이지 않잖아요.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춤 때문에 돋보이지 못하게 한다면, 그건 제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드라마가 중요하거든요. 어떤 작품들은, 잘 나가다 음악이 나오면 드라마가 멈춰요. 춤추고 노래 하느라. 그리고 다시 드라마가 가죠. 이 점이 안무가들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요. 드라마가 서면 안 되거든요. 외국 잘 만든 작품을 보세요. 음악이 나오면 드라마가 확 가죠. 드라마와 음악, 안무가 함께 진행되면 관객들이 좋아하고 행복해 하죠.

계속 공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전 발레가 안무에 필요하다는 걸 군대 갔다 와서야 알고 27살에 초급 발레를 배웠어요. 대부분 학원에서 받아주지 않았는데 한 곳에서만 받아줬죠(웃음). 그때 어린이들과 함께 발레를 배웠어요. 그 당시 저 혼자 큰 바를 잡을 수 없어서 작은 바를 잡고 배웠죠. 후배 안무가들에게 항상 공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저도 무식이 용감하다고 춤만 추다가 계속 깨지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이번에 안무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단 생각에 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계속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 뮤지컬과 인연이 있었던 날이 기억나요. 이윤택 선생님의 <고래사냥> 연습실에 양복을 입고 갔는데 그날 연습실 분위기가 안 좋았어요. 그래서 그냥 앉아 있었어요. 하루 종일. 분위기 보다 집에 갔죠. 둘째 날에도 갔는데 그날도 분위기가 안 좋았어요. 장터씬이 잘 안 풀려서 그랬거든요. 그래서 옆에서 꾸벅꾸벅 졸았어요 그날도 그냥 집에 갔죠. 셋째 날 또 연습실에 가서 졸고 있는데 이윤택 선생님이 “당신은 누군데 여기 와서 만날 자고 있는 건가” 하시더군요(웃음). 그제서야 오디션을 볼 수 있었어요. 배우 40명이 빙 둘러 앉은 곳에서 오디션을 봐야 했어요. 선생님이 “내가 박수를 치거나 웃으면 합격”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굉장히 명확한 오디션이었죠(웃음). 전 야간업소에서 춤을 췄습니다. 술을 먹다가 잠시 무대를 봤는데, 흥미가 안 생기면 바로 눈을 돌려버리는 곳이죠. 그래서 흡인력은 있었던 것 같아요. 크게 웃으면서 절 받아주셨죠.



아직은 없어요. 앞으로 나오겠죠? 그래서 항상 목이 마릅니다. 이번에 준비하는 <아르센 루팡>이 최고의 작품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안무만 잘 되기를 원치 않아요. 안무만 좋다고 관객들이 좋아할까요? 전체적으로 좋아해 해요. 요즘 흥행하는 한국 영화처럼 창작 뮤지컬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전 댄서를 하다 배우를 했고, 안무가를 하고 연출을 했죠. 15년 전에 처음 뮤지컬을 시작했을 때 15년 후를 생각했어요. 지금부터 15년 후를 또 생각할 때라고 봅니다. 주위에선 말리는데, 극단도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언어로 어떤 무대를 올리고 싶거든요. 요즘 글을 쓰기도 합니다.글을 썼더니 올리고 싶은 거죠(웃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진 않았지만 언젠가 남들이 하지 않은 장르로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요.



일단 제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작품에 임할 때 많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더불어 함께 일하는 분들도 많이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공연은 10년 전보다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지금도 좋아지고 있고요. 그래서 이 바닥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이 늘고 있죠. 하지만 알고 나면 떠나요. 힘들고 남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덜 힘들고 남는 게 많은 동네로 인재들이 가버리죠. 남는 게 많은 동네가 될 때 성공하지 않을까요? 저부터 잘 해야죠(웃음).



뮤지컬 안무가를 양성하는 곳은 없어요. 연기나 무용을 전공한 친구 중에서 춤을 잘 추는 친구, 그 중에서도 성격 괜찮고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죠. 조언하고 싶은 점은, 힘내야 해요. 꿈이 실현됐다고 해서 갑자기 크게 변하지는 않습니다. 갑자기 큰 집과 차가 생기는 게 아니에요. 저처럼 무식이 용감했던 시절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정말 흔한 이야기지만 행복하고 싶다면 진정 일을 사랑해야 해요.



정리: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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