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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연극파 배우" 연극배우 권해효, 문소리

작성일2010.05.03 조회수12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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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효와 문소리는 꾸준히 ‘제값’을 해온 배우들이다. 그 시작은 ‘얼굴값’이었다. 드라마 ‘사랑은 그대 품 안에’(1994년)의 권해효는 딱따구리를 연상케 하는 얼굴과 오지랖으로 명품조연 자리를, 뇌성마비 환자의 모습을 영화 ‘오아시스’(2000년)에서 완벽하게 재연한 문소리의 연기는 연기파 배우의 자리를 꿰차기에 충분했다.‘안방극장 코믹배우’, ‘연기파 영화배우’라는 수식어를 달고 배우의 길을 달려온 권해효, 문소리 두 배우의 이름 앞에는 ‘나설 땐 나서야 한다’는 성격 덕에 ‘소셜테이너(Socialtaiver)’, ‘개념배우’라는 뜨거운 수식어도 덧붙여졌다. 두 배우의 목소리에 실린 이야기는 대중들의 힘을 한데로 모으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뜨거운 ‘이름값’ 덕에 바람 잘날 없는 날을 보내기도 했던 두 배우가, 연극 무대에 올랐다. 지금 두 사람은 이런저런 수식어를 떨쳐내고, TV도, 영화도, 집회현장도 아닌 ‘연극무대’에서 ‘제값’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번 공연에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작가 리홀과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 연출가 이상우의 이름값까지 덤으로 버무려져 있다.

알고 보면 연극파 배우, 문소리

얌전한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더 얌전한 사범대학 시절을 보내던 대학교 3학년 생 문소리. 부어라, 마셔라 놀아대던 동기들도 ‘이제 임용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나 둘 도서관을 찾을 무렵, 공부파 문소리는 대학로 극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건의 발단은 고등학교 때 본 연극 <에쿠우스>였다. 이유도 간단했다. <에쿠우스>를 보며 느꼈던 정직한 기운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애미, 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무서운 늦바람으로 불 같이 시작한 연극이었지만, 문소리에게 연극은 여전히 짝사랑의 대상이다.

“영화로 알려졌지만, 영화를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어요. 정말 우연하게 영화배우가 된 거지, 계속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잘 못 해가지고(웃음). 제가 연극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계속 모자라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커요. 연극과에 진학할 생각이었는데 이창동 감독님이 “연기 공부를 시작하는 건 권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연극에서 영화로 흘러가는 건 순방향이지만, 영화에서 연극으로 돌아오는 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들의 헐떡이는 역류를 떠오르게 한다.

“돈이 안되니까(웃음). 하지만 전 기획사에서 하라는 대로 한 적이 없어서요. 하고 싶다고 하면 동의해줘요. 배우는 선택 받는 직업이지만, 원하는 걸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감정을 가지고 하는 일이잖아요.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이 가장 원하는 일을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거든요.” 

 연극 <광부 화가들>은 “광부들 이야기인데, 너한테 어울릴 것 같다”는 이상우 연출의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대본도 읽지 않고 출연을 약속했다.

“저한테 연극은 치료제 같아요. 영화에만 매달리다 보면, 문득 ‘나를 너무 소진하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배우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 기운이 떨어질 때가 있는 거죠.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온도를 높여야 할 때 무대가 필요해요. 영화도 사람들과 가깝게 하는 작업인 건 맞지만, 연극은 새살을 돋게 하는 그런 면이 있어요.”

4년 만에 돌아온 연극무대

“아기를 가지려고 공백기를 가졌었어요. 그런데 그 쉬는 시간들이 오히려 제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라고요. 연기를 시작한지 십 년이 됐는데, 앞으로 십 년은 또 어떤 배우로 살아야 할까 하는…. 처음 시작할 때 보다, 훨씬 더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배우는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직업이잖아요. 음, 그런데 지금은 이 연극을 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어요.”

뒤이어 “무대에 선 경험이 적다 보니 권해효 선배에게 동선, 각 장면에서 집중할 것들에 대한 조언을 얻고 있다”는 연기파배우 문소리의 생경한 고백이 따라온다.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연극 영화과를 나온 게 아니잖아요. ‘나는 부족하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큰 편이에요. 원래 배우라는 직업에는 완성이라는 게 없다지만. 제가 연기공부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연극무대에요.”

연극 <광부 화가들>에서 문소리는 광부들에게 미술을 그릴 기회를 제공하는 미망인 헬렌 역으로 무대에 선다. 작가 리홀의 최신작인 이번 무대는 세계 네 번째 무대이자, 비유럽권최초 공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영국 귀족의 연기를 코미디 프로에서는 본 것 같은데. 힘들어요, 정말. 이상우 연출님은 정말 진지하게, 진심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표현하라고 하시는데. 모르겠어요. 영국 계급이랑 우리나라 계급이 다른데다가, 제가 노블레스가 아니어서(웃음). 우아하게 표현하려고 하지만, 잘 못 하면 재미없는 캐릭터가 되기 쉬워서 재미있게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평균관객 동원력 100만을 자랑하는 충무로 대표 여배우인 그녀지만, 500석 이상의 중극장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 이렇게 큰 무대에 처음 서봐요. 지금까지 저한테는 200석이 가장 큰 무대였어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배우들도 예전부터 알던 분들이라 팀워크도 좋고,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점 빼고는 어려운 게 없어요(웃음).”

광부화가들이 모인 애싱톤 그룹의 그림을 비롯한 명화, 레오나르도 다빈치, 고흐의 그림 등 유명화가들의 그림을 무대에 설치된 3개의 스크린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작품의 포인트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그림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는 문소리는 누군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면 ‘수채화’로 그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오나쇼우. 그렇게 늙고 싶어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촬영장에서 어떤 분이 저를 그려주셨는데, 그림 속 제 모습이 굉장히 도도해 보였어요. 도도한 척 하는 캐릭터여서 그랬나? 누군가가 저를 그린다면 유화가 아닌 수채화로 그려줬으면 좋겠어요. 아, 저 누군가가 나를 그린다면 이렇게 그려줬으면 좋겠다는 모습이 있긴 해요. 스케줄 때문에 영국에 간 적이 있거든요. 일정을 마치고 열흘 정도 혼자 영국 여행을 다녔어요. 영국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있긴 했는데, 석사 논문 때문에 바빠서 낮에는 저 혼자 다니고 밤에는 만나서 놀고 이런 식이었죠. 국립 초상화 갤러리를 구경갔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중세시대 귀족부터 현대 배우들의 초상화가 쭉 붙어있거든요. 혼자서 ‘이 사람은 이런 삶을 살았겠지’, 이야기를 만들면서 구경을 하는데 어떤 여자가 눈에 확 들어오는 거죠.

그 여자를 보는 순간, ‘아! 배우다’ 싶었어요. 한참을 그 그림 앞에 서 있었어요. 나이는 마흔을 넘은 것 같았고, 짧은 커트머리에 흰 치마에 큰 흰색 브라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 멋있었어요. 그 배우가 해리포터에 나왔던 ‘피오나 쇼우’라는 걸 알았는데, 그냥 이름도 모르고 계속 쳐다봤었어요. 그렇게 혼자 구경을 하다가 그 여자 그림이 담긴 엽서판을 열 장을 사가지고 친구를 만났어요.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이러는 거에요. “지금은 막이 내린 연극인데, 여배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네 생각이 나더라. 너도 한 번 봤으면 좋겠다. 그 배우 이름이 ‘피오나 쇼우’야” 이러는 거에요.

제가 엽서를 보여주면서 “야, 나 오늘 그 사람 엽서 샀거든” 이랬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좀 더 나이가 들면 그런 느낌이 나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많으면 힘들어했을 정도”로 부끄러움 많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문소리는 대학로에 입문하면서 스크린 쿼터사수를 위해 마이크를 잡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해 촛불을 드는 위풍당당한 여자로 성장했다.

“사회참여 연예인이라는 시선 때문에 제가 답답함을 느끼거나, 제 영역이 좁아진다거나,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어요. 그 이미지를 부각시켜서 작품을 한 적도 없고요. 제가 출연한 작품 속 캐릭터들이 쌓여서 대중들이 만들어주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건 받아들여야 하겠죠. 하지만 그것도 연연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요즘 배우 문소리를 자극하는 좋은 예, 나쁜 예는 뭘까?라는 질문에 단박에 “나쁜 예는 많아요. 꼭 말해야 아나?”는 그녀다운 대답을 내놓는다.

“저를 자극하는 좋은 예는, 메릴 스트립이요. 전에는 그녀의 모습이 교과서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잘하는 건 알겠는데 난 좋아하지 않아’ 이런 느낌이었는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맘마미아’를 보면서 점점 좋아졌어요. 아, 그리고 막걸리요. 요즘 정말 많이 먹는데(웃음), 좋은 것 같아요. 막걸리와 함께 하면 안 좋은 나쁜 예는 샴페인. 막걸리 먹다가 샴페인 먹으면 주체할 수 없게 되거든요. 연습 끝나고 1차에서 막걸리 먹고, 2차로 샴페인 먹었다가 죽는 줄 알았어요. 술자리에서 제가 막 호기를 부르면 오라버니들이 “너! 샴페인 사준다, 너” 이래요. 그럼 제가 “선배님, 제발” 하면서 싹싹 빌죠(웃음).”

오랜만에 공연장으로 돌아온 연극배우 문소리. 그녀는 작품에 등장하는 “예술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다”는 대사처럼, 공연을 본 관객들의 가슴에 물음표 하나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연극에서 우려진, 권해효

1994년 ‘사랑은 그대 품 안에’ 한방으로 코믹연기의 달인으로 떠오른 권해효의 강력한 한 방은 우연이 아니었다. 1985년 이근삼 연출의 <유랑극단>을 시작으로, 1990년 연극 <사천의 착한 여자>로 단련된 권해효의 내공이었다.

“운이 좋아서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연극무대에 섰어요. 연극무대에서는 교수, 선생 같은 역할을 주로 했는데, TV에서는 감초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지 부실하게 보시는 분들이 많죠(웃음). 옆집 사람처럼 편안하게 생각해주시니까 좋아요.”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한 권해효는 대학로에서 ‘백과사전’으로 통한다. 연극판에서는 ‘똘똘이’ 이미지로 통하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 광부들에게 그림을 알려주는 강사 라이언으로 출연한다. 

“이 작품의 완고를 보고 출연을 결정한 게 아니었어요. 명동예술극장과 이상우 선배님께 작품의 배경, 대략적인 줄거리만 듣고 알겠다고 했어요. 제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도 몰랐죠(웃음). 사실, 신작 연극에 대한 출연제의가 많았는데 일정 때문에 고사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안 하면 후회하겠다 싶었죠.”

<빌리 엘리어트>의 원작자가 쓴 작품이라는 점에서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는 권해효는 관객들에게 “꿈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 작품의 출연을 결심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꿈을 물어 보지 않는 세상이 됐어요. “너 뭐 될래?” 이런 식이지 꿈을 물어보지 않잖아요. <광부 화가들>은 7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꿈꿨던 세상, 하지만 완성 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꿈에 관한 이야기에요. 찡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많아요. ‘우리가 꿈꿨던 세상은 뭐였지?’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권해효는 요즘 미술을 소재로 한 작품, 번역극이라는 두 가지 난관을 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좋은 작품을 어떻게 온전히 살려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많아요. 영국의 사회적 배경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 우리나라 관객들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한계를 갖고 있거든요. 원작이 갖고 있는 장점을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영국의 산동네 특유의 억양에서 나오는 유머가 상당한데, 그걸 살릴 수 없다는 게 핸디캡이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힘이 워낙 강합니다.”

권해효는 오랜만에 찾아온 쫄깃한 긴장감도 맛보고 있다. “이십 년 정도 연극을 하다 보면, 연습 중간에 ‘이 작품은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는 예측이 가능 하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 만큼은 관객들의 첫 반응이 나오지 전까지는 모르겠어요. 걱정도 되고, 궁금해요.” 

연습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중"

<광부 화가들>의 연습실은 매일 천당과 지옥을 넘나드는 중이다.

“마냥 즐거웠다가, 순식간에 심각해지고. 제가 주로 분위기를 심각하게 몰고 가는 쪽이에요(웃음). 우문과 문제제기가 많은 배우거든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석하기로 유명한 권해효가 맡은 라이언이라는 등장인물은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광부들을 통해 이루려는 꿈을 가진 인물이다. 오셔 코치가 김연아를 통해 올림픽 금메달의 한을 풀었듯이 말이다.

“자신은 못 가본 길이지만, 타인을 통해서 가보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못했지만,우리 딸이 멋지게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배우가 떠돌이 직업이라고 하지만, 전 정작 그렇게 살지 못했어요. 우리 아이들은 떠돌이처럼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하는 일에 푹 빠져서. 그리고 그게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 좋겠어요. 사진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일지 모르겠는데요, 아프리카를 누비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포토그래퍼처럼. 그렇게 살았으면 해요.”

정작 자신은 “단순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권해효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투쟁해야 되는 세상이 됐다”는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코믹배우를 넘어 ‘사회적 발언을 하는 배우’, ‘정치색을 띤 배우’, ‘집회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배우’로 대한민국의 입술이 된 배우 권해효. 어떤 이들에겐 눈엣가시가 됐을지도 모를 그에게, 걱정과 응원을 실은 목소리를 담아 “캐스팅 불이익은 없었나”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하하, 그건 모르죠. 그건 모르겠어요, 모르겠고. 숨쉬는 것 빼고는 모든 게 정치적인 우리나라에서, 정치와 생활을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정치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사회적인 발언을 하다 보면, TV를 보던 사람들은 그 배역을 보는 게 아니고 제 정치적 견해 때문에 불편하실 순 있겠죠. 자신의 견해와 맞지 않는 배우 권해효를 보시며 불편해하신다면, 여러 가지로 저한테 손해가 되겠지요. 하지만 그 정도의 손해, 불편함은 감수할 생각을 갖고 있어요.”

사회참여에 뛰어든 권해효는 “사회참여 방식에 후회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을 행동하지 못했을 때의 불편함, 속상함은 있을지 몰라도 배우의 길과 사회 참여의 길에서 생기는 갈등이나 딜레마는 없어요. 사회인으로 이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활동해야지요. 연기자로서, 사회인으로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회 참여 방식일 뿐입니다.”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이어가던 그가 머뭇거리던 순간은 “다음 연극 무대는?” 이라는 질문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판화같은, 그런 느낌

“음…. 솔직히 지금 그런 생각까지 할 엄두는 안 나는데요. 어릴 때는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헷갈려요. 나이는 사십 대 중반인데, 무대에 설 때는 ‘아직 내가 어리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좀 더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정작, 제가 하고 싶은 역할이 뭔가에 대해서는 헷갈릴 때가 많아요.”

재수시절, 대학교 미술 교양 리포트를 대신 써주고 A+를 받을 만큼, 미술에도 박학다식한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그린다면 “판화”속에 담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채색화보다는 판화에 가까운 사람으로 그려줬으면 좋겠어요. 판화도 굉장히 다양하지만, 붓이나 나이프로 만들 수 없는 판화 특유의 특별한 선 감각이 좋아요. 그런 느낌이 좋아요.”



“내일이 결혼기념일인데, 새벽 촬영이 있어서 미리 꽃을 주문했다”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 가장, 희끗한 흰머리를 감추지 않는 명품배우, “이번 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은 권해효 500M 접근금지”라는 엄포를 놓는 옆집 아저씨. 연극배우 권해효가 꿈꾸는 세상이 공연장 안팎에서 골고루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스튜디오 춘_기준서(www.studiochoon.com), 명동예술극장 제공
장소제공: 대학로 caffe Pucci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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