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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공연계 결산: 7가지 키워드

작성일2017.12.15 조회수4658

2017년. 예기치 못했던 ‘장미 대선’을 비롯해 많은 사건이 일어난 해다. 우리 사회가 갖은 변화를 겪는 동안 공연계도 그 갈래 속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었다. 올해는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2017년 공연계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7가지 키워드를 꼽아봤다.

1. 블랙리스트
작년에 이어 올해도 ‘블랙리스트’는 공연계의 주요 화두 중 하나였다. 달라진 것은 정권 교체 후 조금씩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간 블랙리스트에 올라 각종 지원사업 등에서 배제됐던 예술가들도 다시 공정한 처우를 받기 시작했다. 지난달 9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공개한 ‘창작산실’(창작공연 지원사업) 지원작에는 그동안 블랙리스트에 올라 탈락했던 극단 하땅세, 백수광부, 놀땅 등의 작품이 포함됐다. 예술위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관객평가단 제도를 새로 도입하기도 했다. 같은 달 27일 예술위의 새 위원장으로 위촉된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우선 과제로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을 꼽으며 적극적으로 진상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 아시아브릿지컨텐츠 사태
지난 8월, 공연제작사 아시아브릿지컨텐츠의 최진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공연 사업을 기반으로 교육·음식료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다 90억원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회생신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수로프로젝트를 비롯해 20여편의 연극·뮤지컬을 제작해온 최진 대표의 자살 소식은 공연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공급 과다, 스타 캐스팅으로 인한 제작비 급등, 한 공연의 흥행 실패를 또 다른 공연으로 급히 막는 ‘돌려막기’ 등 다년간 지속된 고질적 문제들이 다시금 논란의 장에 올랐다. 또 다른 불행을 막으려면 정부 차원에서 건전한 공연 제작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외에도 파파프로덕션이 재정 악화로 20년간 대학로의 대표 흥행작이었던 연극 <라이어>의 판권을 EMK뮤지컬컴퍼니에 넘겼고, 뮤지컬 <햄릿>은 임금 체불로 공연이 두 번이나 갑작스레 취소되는 사태를 겪었다.

김수로프로젝트 20탄 -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좌), <벤허>(우)

3. 창작뮤지컬
위기 속에서도 잘 만든 창작극은 빛났다. 올해도 완성도나 소재의 신선함에 있어서 영미권 작품들에 뒤지지 않는 수작이 여러 편 탄생했다. 평단과 관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작품으로는 특히 <어쩌면 해피엔딩>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스 작곡가가 만든 이 작품은 버려진 구형 로봇들의 사랑이라는 참신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음악, 감성적인 무대로 구현하며 전석 매진에 이어 앵콜 공연까지 이끌어냈고, 예그린어워드에서 ‘올해의 뮤지컬상’과 연출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밖에도 <프랑켄슈타인>의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음악감독이 만든 대극장 창작뮤지컬 <벤허>가 원작의 묵직한 서사를 탄탄한 무대로 담아내 갈채를 이끌어내며 예그린어워드 최다 부문 후보에 올랐고, 여성의 성과 사랑을 발랄하고 세련되게 담아낸 <레드북>, 초연의 성공에 힘입어 다시 돌아온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비롯해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온 <아리랑><마타하리><서편제> 등이 꾸준히 관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이블데드>(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우)

4. 인기작 컴백
2017년은 오래된 공연 마니아들에게 특히 즐거운 해였을 것이다. 손꼽아 재연을 기다리던 작품들이 연이어 무대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3월에는 창작뮤지컬 <미스터 마우스>와 <밑바닥에서>가 10년 만에 나란히 무대로 돌아왔다. <미스터 마우스>는 홍광호 출연분 전석 매진으로, <밑바닥에서>는 소극장에서 보기 드문 화려한 제작진과 배우들의 참여로 화제에 올랐다. 이어 5~6월에는 뮤지컬 <록키호러쇼>와 <이블데드>가 9년 만에 무대로 귀환했고, 관객들은 독특한 스토리와 B급 유머 코드가 어울린 두 작품을 열렬히 반겼다. 8월에는 전 배우와 스텝들이 노개런티로 참여해 주목받은 뮤지컬 <틱틱붐>이 7년 만에 무대에 올랐고, 연말에는 동명의 명작 영화를 바탕으로 엘튼 존이 음악을 만든 <빌리 엘리어트>가 7년 만에 무대에 올라 감동을 전하고 있다.

5. 공연 형식 다양화
이머시브 공연(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사라지고 관객들이 공연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형식의 공연)을 비롯해 참신하고 실험적인 형식의 공연들도 다수 등장했다. 남산예술센터와 아트선재센터가 공동 제작해 선보인 <천사-유보된 제목>은 사전 예약한 관객이 60분 동안 혼자 극장을 둘러보는 특별한 형식으로 눈길을 끌었고,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꾿빠이, 이상>은 배우와 관객이 공연장 곳곳에 함께 어울려 존재하는 무대로 펼쳐졌다. 아이엠컬처는 관객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함께 이야기를 만드는 즉흥뮤지컬 <오늘 처음 만나는 뮤지컬>과 관객들이 맥주를 마시며 극을 관람하다 배우에게 쪽지를 건네기도 하는 <미 온 더 송(Mee on the song)>을 무대에 올렸다. 이외에도 관객이 헤드폰을 쓰고 대학로 구석구석을 걷고 체험하는 <로드씨어터 대학로2>, 배우가 공연 직전 대본을 받고 즉흥 연기를 펼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기획공연 <하얀 토끼 빨간 토끼> 등이 독특한 형식으로 상상력의 지평을 넓히며 호평받았다.

창작가무극 <꾿빠이, 이상>

6. 팬텀싱어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그리고 올해 8월부터 10월까지 두 차례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팬텀싱어>는 뮤지컬계의 숨은 인재들을 다수 재조명하며 공연계와 대중 사이의 접점을 넓혔다. 심사위원을 맡았던 김문정 음악감독과 마이클리는 물론 시즌1에 출연했던 고은성, 기세중, 백형훈, 윤소호, 박유겸 등과 시즌2에 출연한 박강현, 이충주, 조형균, 최우혁, 조휘, 이정수 등의 뮤지컬 배우들이 이름을 알렸고, 특히 각 시즌의 최종 우승팀에 속한 고훈정, 배두훈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크게 넓히며 날개를 달았다. 이외에도 KBS <불후의 명곡>, MBC <복면가왕>, 엠넷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서도 뮤지컬 배우들이 꾸준히 출연해 각자의 고유한 음색과 가창력, 실력을 뽐냈다.

7. 진화·도전하는 클래식
올해 클래식 분야에서는 새로운 유망주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주목받았고, 동시에 국내에서는 저변 확대를 위한 다양한 도전과 실험이 이어졌다. 피아니스트 홍민수가 리스트 국제 콩쿠르 2위에, 지휘자 차웅이 토스카니니 국제 콩쿠르 2위에 입상하는 등 총 9명의 한국인이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10월 초에는 국내 클래식 음악가들의 미발표 음원을 스트리밍으로 제공하는 플랫폼 ‘클래시컬 네트워크’가 문을 열었고, 서울국제음악제는 티켓 가격을 최고 4만 8천원으로 책정해 문턱을 낮췄다. 이외에도 소프라노 임선혜가 예능프로그램 <더 마스터-음악의 공존>에, 비올리스트 이승원이 <문제적 남자>에 출연하거나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영화 <황제>에 출연하는 등 많은 클래식계 스타들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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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