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대형 음반 매장에 가면 항상 OST 항목에서 새로 나온 뮤지컬 음반이 없나 찾아보곤 했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아 브로드웨이나 웨스트 엔드의 공연 정보도 부족했을 뿐더러 수입된 뮤지컬 앨범들도 종류가 많지 않았다. 지금이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각종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손쉽게 공연관련 음악뿐 아니라 동영상까지도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미스 사이공>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음반과 리브레토만 가지고 공연을 상상하던 때도 있었다.

웨스트엔드의 디지털 기술 활용

현재 우리는 인터넷으로 촘촘히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고, 이는 어지간하지 않으면 거부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은 웨스트엔드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웬만한 공연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각 사이트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위시한 소셜 네트워킹을 연동하여 소통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공연평이 나오기도 전에 일정 수준 이상의 시어터고어 블로거들이 내놓는 각종 공연에 대한 정보와 평가는 실제로 영향력을 점점 키워가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디지털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은 다름아닌 공연 정보와 평론을 다루는 신문과 잡지들이다. ‘가디언(Guardian)’, ‘더 스테이지(The Stage)’, ‘왓츠 온 스테이지(What’s On Stage)’ 등의 공연 관련 미디어들은 경쟁적으로 기본적인 기사 제공 뿐 아니라 블로그와 트위터를 적극 활용한 독자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추세이다. 실제로 이러한 온라인 미디어들이 웨스트엔드 이슈들을 독자들과 가감 없이 논쟁하는 장소로서 적극 활용되면서 공연계의 전체적인 건강성 유지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셔널 시어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NT 라이브 시네마(Live cinema)도 디지털 기술이 선사한 또 하나의 선물이다. 런던 사우스뱅크에 위치한 극장을 찾지 않더라도 가장 가까운 영화관에서 같은 시각에 같은 공연을 생중계로 볼 수 있게 만든 아이디어는 실로 획기적이다. 그리고 현재 이 시스템을 통해 영국 전역 뿐만 아니라 유럽, 캐나다, 호주, 미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관객들도 런던에 오는 수고로움 없이 가까운 영화관에서 내셔널의 공연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내셔널의 <워 호스>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공연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는 말이다.


공연 관람 중에 트위팅은 트렌드?

한편 로열 스트랏포드 이스트 극장(Theatre Royal Stratford East)은 더 이상 공연 전에 관객들에게 휴대폰을 꺼달라는 방송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극장의 어퍼서클(3층)에 ‘트윗존(Tweetzone)’을 만들 계획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공연 관람 중에 공연에 대한 생각을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올릴 수 있도록 한다는 아이디어인데, 극장은 이번 정책으로 조금 더 관객들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기대하고 있다.
사실 스트랏포드 이스트 극장의 이번 시도가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 웨스트 요크셔 플레이 하우스(West Yorkshire Playhouse)도 시범적으로 몇 번의 공연에 관객들이 트위팅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는 ‘트윗싯(tweet seats)’을 마련할 계획이었으나, 아이디어가 트위터를 통해 전파된 후 부정적인 반응이 많아 결국엔 실행되지 못했었다.

분명 관객들의 입소문이 공연의 성공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고, 이러한 요소를 시대적 상황과 발맞춰 극장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신선해 보인다. 그러나, 6월에 오픈 예정인 뮤지컬 <테이크 어웨이, Take Away>부터 적극적으로 시행될 예정인 이 정책이 실제로 극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시대의 부작용

 런던 웨스트엔드의 명물 ‘드레스 서클’ 상점이 폐장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은 빠르고 효율적인 것만이 살아 남는 이 디지털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30년 이상 운영되고 있는 ‘드레스 서클’은 공연에 관련된 음반, DVD, 책, 기념품 등만을 취급하는,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방문해서 흐믓해 했을 웨스트엔드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현재 상점은 온라인 판매만 남기고 코벤트 가든에 위치한 오프라인 매장은 닫힐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의미 있는 상점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위기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 마켓의 발달로 인한 가격 경쟁력에서의 부담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뮤지컬 공연들이 더 이상 캐스팅 앨범이나 머천다이징 상품을 내놓지 않는 상황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상점의 폐점 위기 뉴스가 나간 후 공연 관계자와 배우들을 중심으로 매장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 고민되었는데, 이러한 논의가 아이러니하게도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중심으로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지금의 시대적 상황을 잘 대변해 준다.

어떻게 이용할까?

앞에서 언급한 현상들은 정부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 잉글랜드 정부의 DCMS(문화, 미디어, 스포츠를 총괄하는 부서)에서 시행한 설문 조사에서 영국 국민들이 문화 예술 분야를 디지털로 접하는 비율이 올해 34.8%로 전년도에 비해 약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점점 더 많은 영국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문화 예술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참여한다는 의미이다.
이제 웨스트엔드 공연계에도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선도적으로 활용하는가가 중요한 덕목이 되어버렸다.


사진출처 각 공연 및 단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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