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작품과 도발적인 시도로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화제를 낳았던 오페라 <아이다>와 <투란도트>의 릴레이 공연이 시작되었다. 한국오페라단이 올해 ‘피치 페스티벌’의 작품으로 선택한 <아이다&투란도트>는 오페라의 거장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총 감독한 무대와 의상, 배우 등을 그대로 한국에 공수한 무대. 무엇보다 피치의 수제자 마씨모 가스파론이 연출한 <아이다>와 거장 피치가 연출한 <투란도트>를 연이어 만나봄으로써 두 사람의 남다른 스타일을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첫 날 무대에 선 <아이다>는 음악과 무용이 무엇보다 돋보였다. 이집트 공주의 하녀가 된 이디오피아 공주 아이다와 아이다를 사랑하는 이집트 경비대장 라다메스의 가슴 아픈 사랑, 그리고 이들의 사랑을 질투하는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의 보복은 사랑과 조국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 앞에 놓인 힘겨운 인간의 사투 그대로다.

특히 거대하게 세워진 계단과 단상의 무대 세트를 제외하고 여타의 장치는 최소화 했다. 흰색 무대 위를 움직이는 인물들의 검은 의상은 간결하지만 강렬하게 작품의 분위기를 나타냈다. 내리꽂는 스포트라이트가 아닌 은은한 측광의 사용으로 배우들의 얼굴이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모습은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로써 노래의 집중도는 더욱 강해진다. 아이다의 조국과 싸우러 나가는 라다메스의 출격을 두고 ‘이기고 돌아오라’를 외치는 아이다의 아리아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속일 수 없는 한 여인의 처절함이 그대로 뿜어져 나왔다.

또한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은 음악과 더불어 무용으로 표현된다. 황금빛 무용단들의 군무와 개개인이 빛나는 발레는 중앙 무대를 가득 채운다.

이튿날 같은 자리에 선 <투란도트>는 노련한 거장의 솜씨가 십분 발휘된 무대였다. 스펙터클과 드라마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정서에는 오히려 <투란도트>의 감동이 더할 수도 있겠다. <아이다>와 같은 계단식 무대 위에 중국 궁전을 세워둔 이 작품은 붉은 색과 푸른 색의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 대비 자체로 관객을 압도한다.

아름다운, 그러나 얼음처럼 차가운 북경왕궁의 공주 투란도트는 자신이 낸 수수께끼를 푼 자에겐 결혼을, 그렇지 못한 자에겐 죽음을 명령한다. 나라를 잃고 방황하던 타타르국의 왕자 칼라프는 투란도트에게 한눈에 반해 수수께끼 풀기에 도전한다.

왕자가 보낸 한번의 미소에 목숨을 바치는 노예 류의 희생과 사랑 앞에서 얼음장 같은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는 투란도트, 불변의 사랑 칼라프가 더울 애절하다. 죽음은 있었으나 결국엔 해피앤딩에 객석에선 감격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붉은 배경 속에 빛나는 등불의 나열은 반딧불이 같다. 오히려 ‘남자의 이름을 알아내라’는 숙제를 안게 된 공주 투란도트에게 바치는 칼라프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전주가 흐를 때부터 칼라프와 관객 모두 절정을 향한 마음의 흥분이 가득하다. 중국관리 핑, 팡, 퐁의 익살맞은 몸짓과 노래는 팽팽한 긴장감에 여유의 웃음 소스가 되어 준다.

공연 첫 날인 <아이다>에서 긴장한 기색이 보였던 오케스트라는 다음날 <투란도트>에서는 기량을 맘껏 발휘하며 자신있게 극과 어우러졌다. 지휘를 맡은 마르코 잠벨리는 두 손으로 공연 중에는 여유와 카리스마의 오케스트라을 이끌었으며, 공연 후 커튼 콜에서는 무대 위, 아래, 객석까지 모두 배려하는 제스처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다양한 무대 전환이나 빠른 전개에 익숙한 현대 관객들에게, ‘음악과 춤, 그리고 이야기가 깊이 있게 모아진’ 진정한 오페라 <아이다&투란도트>의 만남이 더욱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글 : 황선아 기자(인터파크ENT suna1@inter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