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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날 몰라, 그러니 너도 안다고 하지마 <레슬링 시즌>

작성일2012.06.01 조회수8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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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청소년극의 이름을 단 무대는 정작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오히려 부모들과 교사들의 관심을 더욱 받았던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고 안목이 부족한 학생들의 탓이 아니라, 어른들이 원하는 교훈을 명제와도 같이 작품 속에 결론 지어 관객들에게 쥐어주고자 했던 작품 탓이 크겠다.

연극 <레슬링 시즌>은 다르다. 어떤 의견도 권하지 않고, 어떤 사람도 선악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이고, 네가 누구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10대들의 모습만 그대로 담아낼 뿐이다.

주인공들은 전국대회 선발전을 앞둔 고교 레슬링부와 그의 친구들. 경쟁자로 마주 설 수 밖에 없는 이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꼭 금메달을 따야 하는 민기와 그런 민기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강석. 뭉쳐다니는 이 둘이 못마땅한 기태와 영필 모두는 지름 9미터 링 안에서 맨 몸으로 마주한다.

하지만 온전히 경기에 집중할 수 없다. 링 밖에서의 외침들 때문이다. ‘너가 그랬더라’, ‘네 친구가 그랬더라’, 그리고 ‘둘이 그랬다’. 여기에 방향을 잡지 못한 사랑과 성(性)이 이들 사이를 어지럽게 오고 간다. 소문은 힘이 세다. 몸이 먼저 자란 아이들은 그렇게 부딪힌다.

‘흔들리는 10대들’을 보여주는 것 만이 <레슬링 시즌>의 목표가 아니다. 철저히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나와 우리들의 모습을 반추해 볼 수 있게 하려는 의도는 심판의 역할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인물들이 격하게 대립하는 장면이나, 또는 의외의 상황으로 빗겨갈 수 있는 순간이 되면, 어김없이 심판이 등장해 호루라기를 불며 더이상의 진행을 막는다. 그 순간, 인물들의 감정으로 옮겨가려는 우리의 마음을 멈추게 되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공연 직후 이어지는 포럼 역시 작품의 일부이다. 사회자가 되어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는 심판, 저마다의 의견을 손들어 말하고 쏟아내는 객석의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자니, 발표력이 떨어지고 나서길 싫어한다는 지금의 10대들의 모습이 어디 갔나 싶다.

관객들의 말에 배우들은 여전히 캐릭터에 머물며 자신을 대변한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다. 극중 강하게 반복되는 대사인 ‘넌 나를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넌 나를 몰라’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또 하나의 과정인 셈이다.

두 달여간 레슬링 훈련을 한 배우들의 움직임이 놀랍다. 사방에서 입장하는 배우들과 열린 무대는 공연을 많이 접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새롭고 재미난 구성으로 다가갈 것이다. 웃음과 야유가 공연 중간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링 위에서는 구르고 메치고 부딪혀 나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내가 누구인가,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청소년기, 인생의 ‘레슬링 시즌’은 시작되었고 링 위에서 치열한 경기를 펼칠 것이다. 그 한 면을 기발하게 옮겨 놓은 볼만한 경기, 자신들의 이야기라 끄덕일 법한 10대들을 위한 <레슬링 시즌>이 지금 국립극단에서 열리고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재)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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