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플디팬미팅] 인순이 '<시카고>, 오기 때문에 더 사랑한 작품'

작성일2013.08.05 조회수9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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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위험하고도 섹시한 인물 ‘벨마’로 분한 인순이를 만나기 위해 12명의 팬들이 더위를 헤치고 국립극장에 모였다.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로 데뷔 이후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순이를 만나기 위해 친구끼리, 혹은 모녀가 찾아온 것. 특히 한창 공부 중인 자녀를 둔 엄마, 오랜 팬 등 정서적인 공유 덕분에 이곳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하다. “만나기 30분 전부터 떨렸어요”라는 팬의 고백에 “설마 내가 무대에 올라갈 때보다 더 떨릴까요~”라며 넉넉한 웃음으로 받는 현장. 가수이기 이전 인생 선배로서 이들이 나눈 정감있는 수다를 플레이디비가 담아보았다.

“2009년 <시카고>는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

Q 가수, 뮤지컬 배우는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전 어려서 꿈을 꿀 수 없는 환경이었어요. 당시엔 아직 어린 나이라도 돈을 벌기위해 일터로 나와야 했는데,  저도 그래야 했죠. 그때 누군가 노래를 해보라 제안을 했어요. 노래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거에요. 우리 선배님들처럼 그저 음악이 좋아서 노래를 시작하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 분들이 부럽기도 해요. 시작은 그랬지만 목숨 걸고 열심히 했죠. 말하자면 정말 긴 이야기라 간단하게만 말해야겠다(웃음).  뮤지컬 제안은 어려서부터 받아왔어요. 제가 극장에서 리사이틀을 하시던 윤복희 선배님의 언더였거든요. 그래서 선배님이 뮤지컬을 하실 때마다 저를 불러주셨어요. 그런데 ‘선배님 저 돈 좀 벌어야 해요. 벌어 놓고요’ 했죠. 그 다음 엔 ‘선배님, 저 임신했어요’ (웃음). 생계 때문에, 나중엔 임신을 해서 뮤지컬을 못했는데 그러다 <시카고>를 만나게 됐죠.

 

Q <시카고> 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2000년에 처음 출연하고 2009년 공연을 다시 했을 땐 달라진 게 너무 많았어요. (<시카고>의 2000년 버전은 음악과 대본만 계약, 2009년부터는 브로드웨이 버전과 똑같은 레플리카 공연이다) 초연 땐 침대도 등장하고, 심지어 록시가 ‘미 앤 마이 베이비(Me and my baby)’를 부를 땐 남자 앙상블이 기저기를 차기도 했고, 굉장히 코믹했거든요. 2009년에 와보니까 굉장히 엄격해 졌어요. 연습 할 때 외국 연출님, 무용, 음악 선생님이 계시는데 시험 보는 거 같았어요. 틀리면 표정이 ‘아~~’이러고 계세요. 한번도 그런 경험이 없어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이왕 하기로 했으니 (다른 배우와) 똑같이 해야 하잖아요. 속은 끓죠, 쳐다 보니 자꾸 틀리죠(웃음). 그땐 정말 죽을 거 같았어요. 그런데 오기도 생기도 이 작품을 더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공연은) 모든 사람이 균형을 맞춰야 해요. 내가 한발짝 나가면 뒤에 있는 사람이 불편한 그림이 나오고 조금만 멀리 가면 조명이 이상하게 떨어지고, 내가 늦게 나가면 내 조명이 없어져버리고. 제 콘서트는 저에게 모든 게 맞춰지는데, 이건 극 스토리에 모든 게 맞춰야 하죠. 특히 이 작품은 나가고 들어오는데도 일사분란 해야 해서 4~5초의 시간도 어긋나선 안 되요. 그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지금은 조금 할 것 같아요. 조금(웃음).

Q 젊음을 유지하는 나만의 비법이 있으신가요?
일단 저와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저보다 젊어요. 회춘할 거 같아(일동 웃음). TV에서 비춰지는 모습은 그렇지 않지만 내면은 약간 장난끼도 있거든요. 무대 뒤에서 깔깔거리다 보면 나이를 잊어요. 그리고 여배우잖아요. 드레스나 핫팬츠를 입으려면 관리를 해야 해서 저녁 6시 이후엔 먹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몇 년 전 미국 라스베가스에 갔는데 내 앞에 핑크색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신은 여자분이 가더라고요. 앞에서 보니 할머니였어요. 정말 멋있고 사랑스러웠어요. 여자라면 죽을 때까지 여자가 돼야 하는구나. 나도 죽을 때까지 여자 해야지. 결혼하신 분은 아시겠지만 집에 가면 전혀 여자 대접을 못 받아요. 가족 대접이죠(일동 웃음). 죽을 때까지 여자이고 싶은 마음이 아직 있어요.

 

“꿈 너머 꿈은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것”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꿈이 없는 상태에서 꿈을 만들었고, 꿈을 이뤘어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백배 천배 이뤘어요. 그래서 그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오히려 후배들에게 멋진 선배로 늙어가는 것, 그리고 내가 꿈을 이뤘다면, 꿈을 이룬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 4월에 개원한 다문화 학교도 7~8년 전부터 생각해 왔어요. 제 꿈 너머 꿈은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걸로 생각해요. 지금 다문화 학교엔 필리핀, 스위스, 중국, 일본, 한국 다섯 나라 아홉 명의 아이들과, 아홉 분의 선생님이 계세요. 후원금 없이 제 돈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힘들다고 생각은 안 해요. 제가 열심히 일하면 아이들을 키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후원자들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문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조금 있으면 스무 명에 한 명 꼴이 된다고 해요. 이 아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못 받으면 우리나라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요즘 가장 주력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 같은 (공연이 있는) 날이면 뮤지컬이 가장 큰 일이고요. 뮤지컬은 언제 해도 제 콘서트 올라가는 것보다 열 배 긴장돼요. 신곡도 녹음 중에 있고, 말씀 드린 다문화 학교도 신경 쓰고 있어요.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모든 일을 균형 맞춰 하기는 쉽지 않지만 욕심이 많아서 다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Q 제 딸이 대중음악 작곡가가 되고 싶어 해요. 조언해주신다면.
우리 딸이 크면서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한 적 있어요. 어려서부터 본 사람이 전부 연예인이고 놀이터가 극장이었잖아요. 그래서 딸에게 물어봤어요. ‘작년에 네가 좋아했던 오빠 지금도 노래하니?’ 그랬더니 아니래요. 가수는 어려서 시작해서 너무 일찍 끝나잖아요. 나머지 긴 인생을 뭘 할지 걱정인 거에요.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 전문직을 가진 다음, 그 때에도 노래가 하고 싶으면 제가 음반을 내준다고 했어요(웃음). 고맙게도 잘 따라와서 공부를 열심히 해줘요. 작곡은 기술이라고 봐요. 언제든지 곡이 좋으면 히트할 수 있으니까, 전 좋다고 생각해요. (질문자: 그래도…공부는 해야하죠?)(일동 웃음) 공부 잘해서 머리 좋은 사람이 곡도 잘 만들어요. 공부 하는 게 좋죠~

Q ‘딸에게’라는 책을 쓰셨잖아요. 쓰신 동기가 있으신가요?
아이는 대학생이 되면 부모와 떨어지는 것 같아요. 딸이 유학을 간다고 하니 앞으로 내가 해줄 말이 없잖아요. 옆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니까… 그래서 아이와 내가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 그 동안 끄적거리며 쓴 걸 정리해서 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우연히 책으로 냈죠.  별 이야기를 다 썼어요. 남자친구를 만날 때 튕기라든지…(일동 웃음). 그런 이야기부터 내 경험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엄마 생각이 나서 꺼이꺼이 울기도 하고. 지금도 우리 딸에게 수시로 문자를 보내요. 내가 먼저. 왜냐하면 내가 엄마를 먼저 보듬어주지 못한 게 후회돼서, 혹시 우리 딸이 나중에 후회할까봐. 누가 먼저 하든 보듬고 안으면 되잖아요(웃음)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스튜디오 춘(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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