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명배우 열전···우리네 인생과 닮은 <고도를 기다리며> 막바지 연습현장

작성일2015.03.09 조회수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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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소극장이 뜨겁다. 올해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 45주년과 소극장 산울림 개관 30주년, 여기에 임영웅 연출가의 연출인생 6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사무엘 베케트가 1953년 발표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50년 동안이나 오지 않는 고도를 계속 기다린다. 기다림을 통한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1969년 극단 산울림의 창단 공연으로 국내 초연됐으며, 1985년 산울림 소극장 개관작도 이 작품이 차지했다.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타내듯이 <고도를 기다리며>는 더블린·아비뇽·폴란드·일본 등의 수많은 해외 초청공연과 함께 평단과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최근까지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산울림 소극장에 작은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단단히 연기의 뿌리를 내리고 이제는 TV와 영화,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정동환·송영창·한명구·안석환·정재진·이호성·김명국 등 13명의 명배우들이 뭉쳐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린다.


이런 뜻깊은 자리에 배우들이 연습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막바지 연습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산울림 소극장의 연습실을 지난 4일 찾았다. 연습실 문 앞에 서자 배우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무대만큼 작은 연습실은 평균연령 50세의 배우들이 내뿜는 에너지로 뜨거웠다. 에스트라공은 길가에 앉아 열심히 구두를 벗으려 애쓰고 블라디미르와 함께 실없는 수작을 부리며 '고도'를 기다린다. 여기에 포조와 짐꾼 럭키가 등장해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다 사라진다. 실제 무대를 방불케 할 만큼 팽팽한 긴장감 속에 배우들은 대사의 리듬을 살리며 탁구 경기의 랠리처럼 뜨거운 명승부를 펼쳐내고 있었다.

이날 연습실에서 만난 임영웅 연출은 “처음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기로 하고 작품을 읽는데 사흘쯤 걸렸다. 속으로 ‘이거 큰일 났구나’싶었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어서 그때부터 작품과 피 튀기는 싸움을 했다(웃음). 연습을 한참 하고 있는데 그 해에 이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탔다. 사람들이 상을 탔다고 해서 책을 사서 읽는데 막상 읽어보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몰라서 어려워했는데 마침 연극을 한다고 하니까 많이들 보러 왔다.”고 웃으며 감회에 젖었다.


임영웅 연출 (위)
<고도를 기다리며> 지난 포스터들 (아래)

<단테의 신곡> <메피스토> 등 꾸준하게 무대에 오르며 연극을 놓치지 않는 정동환은 25년 만에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에 다시 서게 됐다. “한 때는 다들 청춘이었는데 이제는 노(老)배우들이 됐다. 다시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25년 전에 40살이었는데 그 때 내가 뭘 안다고 이 작품을 했을까? 그게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농을 치며, “베케트 선생님이 나이가 칠십은 되야 이 작품의 내용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극을 쓰셨는데 임영웅 연출 또한 대사나 움직임의 양을 사십 대가 아니면 감당하지 못하게 만들어 놨다. 이 작품이 부조리극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부터 부조리가 있는 거다.”라고 말하자, 주위 배우들이 모두 공감하듯 웃음을 터트린다.

이에 가만히 지켜보던 임영웅 연출은 “명배우들은 칠십이 되어도 팔십이 되어도 무대에서는 펄펄 나는 거야.”라며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1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서는 안석환은 “첫 무대가 1994년도였다. 연기자로서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긴장이 됐다. 대사 길이는 짧지만 양은 많고 그걸 타이밍과 리듬감을 살려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고 소감을 밝히며, 이번 무대에 대해 “시간이 흐른 만큼 연륜 있는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무대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 작품이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두 바보가 고도를 50년 동안 기다리는 바보짓을 한다. 그런 유희성이 관객들에게 재미있게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까?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서는 ‘저렇게 바보 같은 게 내 모습이 아닐까’라고 한 번쯤 생각해준다면 좋겠다.”라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김명국, 정동환, 임영웅 연출, 안석환, 이영석 (왼쪽부터)

포조 역으로 무대에 다시 서는 김명국은 캐스팅에 얽힌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내 놓는다. “93년에도 포스트극장에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란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부부가 객석에 앉아 있었다. 이 연극은 노인들이 보실 연극은 아닌데 누군가 했더니 임영웅 연출님이랑 오증자 선생님 부부셨다. 다음 날 산울림 극단 단원이 누런 봉투에 산울림 직인이 찍힌 대본을 가져왔다."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또한 그는 “관객들에게 특별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열린 마음으로 편안하게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느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배우들 또한 항상 초심을 잃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오래한 것이 자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작품을 얼마만큼 진정성 있게 관객들에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배우들의 연습을 끝까지 지켜본 임영웅 연출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초연 때부터 그 시대의 명배우들과 작업을 했다. 좋은 배우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어려워도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배우들에게 깊은 신뢰를 보냈다. 공연은 오는 3월 12일부터 5월 17일까지 산울림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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