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작은 규모이지만 기대를 뛰어넘는 재기발랄함으로 유쾌한 감동을 선사하는 뮤지컬이 있다. 바로 지난 7월 17일 개막한 <타이틀 오브 쇼>(title of show)가 그것.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단 네 명뿐인 캐스트와 한 명의 뮤지션이라는 의외의 구성에 처음에는 다소 의아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타이틀 오브 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과 감동에 결코 90분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극장문을 나선다.

뉴욕뮤지컬페스티벌에서 브로드웨이 입성한 첫 작품
브로드웨이 2008-2009 시즌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막전부터 눈길을 끌었던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이번 시즌 유일한 ‘오리지널 뮤지컬(영화나 소설, 연극 등 기존 작품에 기반을 두지 않은 순수 창작 뮤지컬)’이라는 점과 새롭고 신선한 작품의 산실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뉴욕 뮤지컬 페스티벌(New York Musical Festival)에서 시작되어 오프-브로드웨이를 거쳐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한 첫 작품이라는 점이다.

<타이틀 오브 쇼>는 젊은 창작자 헌터와 제프가 오리지널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작품 안에서 헌터와 제프 역으로 출연하는 헌터 벨(Hunter Bell)과 제프 보웬(Jeff Bowen)은 실제 이 작품의 극작가와 작곡/작사가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 작품은 바로 <타이틀 오브 쇼>가 완성되어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쇼로 만들어낸 뮤지컬이다.
헌터와 제프는 배우이자 친구인 수잔, 하이디와 함께 뮤지컬 페스티벌에 참가할 목적으로 오리지널 뮤지컬을 만들어간다. 페스티벌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이 작품은 오프-브로드웨이의 비냐드 극장(Vineyard Theater)에서 공연되며 호평을 받았으나 이후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한다. 이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창작활동이 아닌 사이드잡과 오디션을 전전하던 이들은 직접 홍보 영상물을 제작하여 인터넷을 통해 유포함으로써 다시 한번 주목을 받는다. 이후 이들을 눈여겨본 프로듀서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브로드웨이 무대에까지 오르게 된다. <타이틀 오브 쇼>는 실제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의 라이시움 극장(Lyceum Theater) 극장에서 막이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90분간 쉴새 없는 특유의 재치와 입담으로 풀어내고 있다. 브로드웨이 버전은 지난 2006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이후의 이야기를 덧붙여 새롭게 구성되었다.

진솔하고 리얼한 창작자들의 이야기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타이틀 오브 쇼>의 등장인물은 모두 5명. 헌터, 제프, 수잔, 하이디 등 4명의 주요 인물과 한 명의 키보디스트가 그들이다. 세트라고 한다면 고작 의자 4개가 전부이다. 의상 역시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일상복에, 등장인물 자체가 실제 캐릭터이기에 일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들의 대화 역시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이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구성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꾸준히 뉴욕 씨어터고어들의 발길을 돌리고 있는 이유는 바로 뮤지컬을 만들고 공연하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리얼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일이나 사운드면에서 오프-브로드웨이에서나 흔히 들어 봄직한 넘버들이 어쩌면 바로 그 점에서 브로드웨이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두 명의 무명 창작가가 꿈과는 다른 현실 속에서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노래들은 재미와 동시에 이따금씩 감동을 주기도 한다. 특히 헌터와 제프가 자신들을 빗대어 부르는 ‘투 노바디스 인 뉴욕(Two Nobodies in New York)’과 수잔이 창작활동의 어려움을 노래한 ‘다이 뱀파이어, 다이!(Die Vampire, Die!)’는 가사는 우습지만 결코 우습지만은 않은 찡한 감동을 전한다. 또한 극의 후반부에 전체가 함께 부르는 ‘나인 피플스 페보리트 띵(Nine People’s Favorite Thing)’은 소수일지라도 진정 자신들의 작품을 좋아할 수 있는 관객들을 위해 이 작품을 만들어온 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창작자이자 배우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브로드웨이 조크(joke)가 곳곳에 장치로 쓰이고 있음은 분명 재기 발랄하게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모든 관객들이 그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다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될 만 하다. 예를 들면, 실제 브로드웨이의 유명한 배우인 크리스틴 에버솔(Christine Ebersole), 캐리 버틀러(Kerry Butler), 페티 루퐁(Patti LuPone) 등의 음성이 보이스메일로 사용되며 작품의 일부로 큰 웃음을 주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혹은 평소 그들의 이미지가 어떠한지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는 관객들은 그 순간을 함께 즐길 수 없다는 점에서 다소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타이틀 오브 쇼>는 새롭고 신선하다. 브로드웨이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소재와 구성의 이 작품이 앞으로 속속 개막될 대작들 틈에서 과연 얼마 동안이나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테지만,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기운에 한번 더 힘을 실어 주었다는 점에서 일단 그 가치를 인정할 만 하다. 또 하나의 젊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선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