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집시>(Gypsy)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1959년. 무려 50여년 전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 리바이벌 되어 다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집시>는 주요 배우들이 2008년 토니 어워드(Tony Award)와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Drama Desk Award)를 석권하며 다시 한번 큰 주목을 받았다.

줄 스타인(Jule Styne)의 음악에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이 가사를 붙히고 아써 로렌츠(Arthur Laurents)가 극본을 담당한 <집시>는 1959년 초연 이후, 1974년, 1989년, 2003년에 이어 이번 프로덕션까지 브로드웨이에서만 4번이나 리바이벌되었다. 1963년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1993년에는 배트 미들러(Bette Midler) 주연의 TV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2008년 3월 브로드웨이의 세인트 제임스 극장(St. James Theatre)에서 새롭게 오픈한 <집시>는 2007년, 시티 센터(City Center)의 앙콜(Encores!) 시리즈에서 선보였던 프로덕션을 브로드웨이로 옮겨온 것으로,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아써 로렌츠가 1974년과 1989년에 이어 세 번째로 연출에 참여하였다.

미국 공연 역사 속 모녀 이야기

<집시>는 벌레스크(Burlesque)* 배우로 유명한 집시 로즈 리(Gypsy Rose Lee)가 그녀의 어머니 로즈(Rose)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회고록 “Gypsy: A Memoir”에 베이스를 두고 있다.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딸을 보더빌(Vaudeville)* 배우로 키우고자 하는 오랜 꿈을 갖고 있던 어머니 로즈가 우연히 만나게 된 공연 에이전트 허비(Herbie)의 도움을 받아 두 딸, 준(June)과 루이즈(Louise)를 데리고 미국 곳곳을 돌며 공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제껏 주연을 도맡아 해온 준이 로즈의 강압적인 요구에 지쳐 그녀 곁을 떠나게 되자, 로즈는 이제껏 그리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채 조연으로 무대에 서왔던 루이즈에게 스타가 될 것을 강요하게 된다. 보더빌에 그리 재능이 없었던데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루이즈는 그리 내켜하지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벌레스크 무대에 서게되고, 운좋게 벼락스타가 된다. 더이상 로즈의 도움이 필요없게 된 루이즈는 그 동안의 앙금이 수면위로 떠오르며 어머니와 갈등관계에 놓이게 되고, 로즈는 이제껏 자신이 꾸어온 꿈이 딸이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해서였음을 인정하며 끝을 맺게된다.

 

초연과 엔딩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1959년 초연에서는 마지막에 로즈와 루이즈의 화해무드로 마무리가 되지만, 1974년과 2008년 리바이벌 프로덕션에서는 이 부분을 열린 결말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로즈와 루이즈가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하고 화해하기 보다는 상대방에게 거리를 두고 각자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벌레스크 ?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크게 유행하던 스트립쇼에 가까운 코미디 쇼. *보더빌 ? 1880-1930년대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공연되던 다양한 형태의 버라이어티 쇼. 벌레스크와 달리 노출이 없고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오락.

변함없는 감동을 선사하는 브로드웨이 고전

로즈 역할을 맡은 패티 루퐁(Patti LuPone)은 이 작품으로 2008년 토니 어워드와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에서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웠다. 2006년 <스위니 토드>(Sweeney Todd)로 후보에는 올랐으나 수상을 놓친 아쉬움을 달랜 셈이다. 허비 역할의 보이드 게인스(Boyd Gaines)와 루이즈 역의 로라 버난티(Laura Benanti)도 두 시상식 모두에서 각각 남우조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완벽한 호흡으로 보더빌, 벌레스크 시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작품이 조금도 어색하거나 지루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다. 줄 스타인과 스티븐 손드하임의 음악은 50여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충분히 아름답다.

극중 극에 삽입되어 수차례 반복되는 “렛 미 엔터테인 유(Let Me Entertain You)”, 로즈와 허비가 부르는 “스몰 월드(Small World)”, “에브리띵즈 커밍 업 로지즈(Everything’s Coming Up Roses)”는 초연 당시부터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번 리바이벌 에서는 특히 엔딩 부분에 로즈가 부르는 솔로곡 “로즈스 턴(Rose’s Turn)”에서 패티 루퐁의 가창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며 관중을 압도한다. 그녀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뮤지컬 <집시>는 안타깝게도 오는 1월 11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이제까지의 흥행성적을 고려한다면, 갑작스런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경기의 악화는 애초 3월경으로 예정되었던 이 작품의 폐막일을 2달이나 앞당긴 셈이다. 보더빌과 벌레스크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작품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어머니와 딸,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이번 프로덕션은 아쉽게도 곧 막을 내리지만, 뮤지컬 <집시>는 앞으로 50년이 더 흐른 뒤에도 관객들에게 같은 감동을 선사할 영원한 브로드웨이 고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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