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랑의 끝에서 두 번째 만남, 문소리 지현준

작성일2019.09.02 조회수2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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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러 가면서 이렇게 떨린 적이 있던가. 오는 9월 7일 개막하는 연극 ‘사랑의 끝’에 출연하는 배우 문소리와 지현준을 만나기 위해 우란문화재단을 찾아가는 길은 오랜만에 달뜬 기분이었다. 한국 영화계 묵직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문소리를, 지지난해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영화를 직접 만들기도 했던 문소리를 만난다는 기분 좋은 떨림을 그녀에게 직접 전하자 문소리는 예의 그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분위기를 단번에 풀었다.
 
Q. 이 작품이 국내 초연이고 프랑스 연극이라 국내에 자료가 별로 없더라. 이 작품은 어떤 작품인지, 또 두 분이 이 작품에 끌린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문소리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연극 ‘빛의 제국’(명동예술극장, 2016년)에서 시작됐다. 연출 아르튀르 (이하 아서)와 지현준씨 셋이 시작했는데 (빛의 제국) 작업 과정이 우리에게는 단순히 ‘좋다’를 넘어서 특별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빛의 제국’ 프랑스 공연을 두 번 했는데 공연 중 아서 연출의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그 중에 (‘사랑의 끝’의 작가인) 파스칼 랑베르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파스칼이 ‘빛의 제국’을 보고 너무 울어서 공연장에서는 우리와 인사도 못하고 갔다. 나중에 작가(파스칼)를 만났는데 굉장히 에너제틱하고 아서와도 친한 사이더라. 프랑스에서 마지막 날, 아서가 나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대본을 보낼테니 (지)현준이랑 셋이 같이 하자 하더라. 나도 ‘그래 하자’ 했고. 그런데 한국 가서 프로덕션은 나보고 알아보라고 하더라. (웃음)  

Q. 그래서 직접 프로덕션을 알아본건가?

문소리  ‘안녕하세요 문소린데요. 만나 주실 수 있을까요?’ 하며 연락을 돌렸다. (지)현준이가 아는 프로덕션이 많아서 알아보고 지금의 프로덕션을 꾸리게 되었다.
 




Q. 대본도 보기 전에 세 분이 의기투합 하셨다. 대본 보고 어떤 느낌이었나?

문소리  처음에는 영문 대본이라 매우 천천히 봤다. 나중에 번역을 맡기고 다시 보고, 어떤 내용 인지만 파악한 정도였는데 프로덕션 시작되고 대본을 보니까 ‘내가 참..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뭣도 모르고 한다 했구나’ 싶었다. 그 어떤 배우라도, 지구인이라면 누구라도 큰 도전이겠다 싶더라.

지현준  나 역시 작품 봤을 때 처음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 연습하면서 점점 변해가는 과정이고, 아서가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지금은 빛이 조금 보이는 정도이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이 작품 안에는 사랑 이야기 뿐만 아니라 예술과 다양한 세계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
 
Q. 독특한 형식인데 한 사람이 각각 50분 이상을 혼자 끌고 가야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남자의 언어와 여자의 언어는 어떻게 다른가? (사랑의 끝은 두 남녀의 대화 형식이다. 남자가 1시간가량 혼자 말하고 여자는 듣는다. 남자의 말이 끝나면 다시 여자의 긴 대사가 시작된다)

문소리  프랑스 연극이 말이 많기는 한데, 그래도 3-4페이지 혼자 하는 대사는 있어도. 이 작품은 50페이지 가까운 대사를 혼자 한다. 놀라운 형식이다. ‘나도 말 좀 하자’고 끼어들고 싶을 텐데. (여자는 남자의 말을 들으며 서있다) 처음에는 이 형식이 왜 이래야 하는지.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 한 사람 대사가 왜 이렇게 긴지 이해가 안됐다. 하지만 대본을 계속 보다 보니 ‘특별한 순간과 맞닿아 있구나’ 깨닫게 되었다. 왜 이런 형식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는 중이다. 50분 동안 말하는 사람도 힘들지만 듣고 있는 사람도 힘들다. (갑자기 지현준을 보며) "넌 나중에 앉더라?" (폭소) (지현준) "연출님이 앉으랬어요" (웃음)
 
Q. 두 분은 이 연극과 같은 사랑의 끝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양쪽 모두가 지리멸렬한 사랑의 끝에 접어들면 이렇게 할말도 없을 것 같다)

문소리 (한참 생각하고 답이 나왔다) 나는 한번도 이런 경우였던 적은 없었다. 최대한 조용히 (끝났던 것 같다) 말하고 싶지 않을 때 끝나니까. 물론 경우에 따라 상대방이 오랫동안 속 썩일 때도 있지만. 그리고 이제는 끝을 내면 안되는 상태라. (웃음) 이 작품을 하면서 남편한테 부탁했다.

어느 날 연습하고 집에 가는데, 너무 슬프더라. 연습 초반이라 감정을 잘 못 느끼다가 집에 왔더니 ‘이렇게 끝내야 하나, 끝내는 건 너무 슬프고 힘든 일이다’ 싶더라. 그래서 남편한테(장준환 감독) ‘우리 웬만하면 끝내지 말자’ 그랬다. 그 말을 듣고 연두(문소리, 장준환 감독의 딸)가 ‘그럼 웬만하지 않으면 헤어질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러더라. 그랬더니 또 남편이 ‘연두야.. 세상 모든 일은 대부분 웬만해~’ 그러더라. (웃음)
 




Q. 두 분은 '빛의 제국'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인데 더불어 아서(아르튀르 노지시엘) 연출까지. 셋을 다시 한 무대로 뭉치게 한 요인은 무엇인가

지현준  (이분들은) 내 인생에서 만나기 어려운 분들 같다. 내 안에 있는 걸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다.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는게 힘든 일인데. 어떻게 설명하기 힘들다. 이 사람과 얘기할 수 있겠구나 싶고, 신뢰하고 존경하는 분들이다. 인생에서 알아야할 것들을 이분들을 통해 배운다. 내가 좀 넓어지는 것 같고 잘 살게 되는 느낌을 받는다.

문소리  아서가 얼마나 훌륭한 연출인지 남다른 연출인지를 떠나서. 그런 것만으로 인연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 같다. 현준이 말대로 서로를 깊이 볼 수 있었고,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생겼고 계속 같이 작업하고 싶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이창동, 설경구 처음 만났을 때 그 때가 내 인생의 모멘트였다. 영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에 대한 태도와 사람에 대한 고민이 컸던 이십대에 두사람으로부터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웠다. 사십대가 되어 현준이랑 아서를 만났을 때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른 식으로 나를 가르쳐준다. 연극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고민하게 하고... 굉장히 중요한 동료다.

Q. ‘빛의 제국’ 때 처음 만났는데 (지현준에게) 어떠셨는지?

지현준  누나는 ‘나랑 정말 다른 사람이구나’ 느꼈다. 누나 처음 봤을 때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웃음)  

문소리  (‘빛의 제국’ 에서 부부로 출연함) 처음 만나고 우리가 너무 다른 사람 같아서 둘다 망연자실 했다. 내가 납득이 안가는데 누굴 납득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부부를 연기하지. 하지만 함께 하면서 서로 많이 다르지만 바라보는 방향이 비슷한 지점이 있더라.
 
Q. 문소리는 한국 영화계 존재감이 상당한데 무대 활동은 연극 애호가들에게 커다란 선물 같다. 연극 무대에 서는 건 영화배우 문소리로서 어떠한 느낌인가.

문소리  나에게 연극 활동이 선물이다. 처음에 ‘빛의 제국’ 시작할 때 ‘5년에 한번씩 무대 서야지’ 했는데 끝나고 나니 ‘2년에 한번씩 하고 싶다’로 바꼈다. 지금 2년만에 연극이다. 원래 첫 사랑이 무대였고 영화보다. 소극장 연극을 많이 보러 다녔고 연극에 첫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작업 자체가 재미있다.
 
Q. 평소에도 연극을 자주 보나 보다.  

문소리  어제도 봤다. 연극 ‘인방갤’이라고. 막공이라 급하게 봤다.
 




Q. 과거 인터뷰에서 ‘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 좋은 작품이다’라고 했는데 문소리가 생각할 때 좋은 작품은 어떤 건가?

문소리  옛날에는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하는 의미가 있고. 그런데 결과는 알 수 없다. 관객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계속 생각이 변한다. 내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생각을 하는 과정인 작품이면 나에게도 관객에게도 좋은 작품으로 남는 것 같다. 흥행에 상관없이 그 시간들이 제 인생에 가장 긴 시간들이고, 흥행을 못하면 한달 정도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작품이 영원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들면서 또 생각이 바뀔 거 같다.
한때는 도전이 없는 작품은 좋은 작품이 아닌 것 같고, 질문하지 않는 작품은 이유가 없는 작품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 보다 생각이 넓어졌다.
 
Q. '여배우는 오늘도'로 감독 데뷔를 하셨는데 영화 감독으로서 영화 전체를 만드는 과정을 겪은 후에 배우로 활동할 때와 영화를 대하는 시각이나 태도가 달라진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문소리  나 스스로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많이 생각해봤다. 전체를 보고자 하는 눈이 좀 더 생겼거나 감독과의 소통이 (입장 바꿔 생각하기) 더 잘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주변 지인들은 너가 원래 그렇기 때문에 연출은 한거지 연출을 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고 하더라. (웃음) 확실한 건 나와 영화와의 관계가 훨씬 더 깊어졌다는 점이다.
 
Q. 앞으로 영화로 만들고 싶은 소재가 있는지, 준비하는 작품이 있는지.

문소리  계획을 잘 안세운다. 모르겠다. (지현준, '뭐 쓰고 있지? 다이어리에 막' 그러자 문소리, '나중에 카톡으로 알려줄께') (웃음)  
 




Q. 첫 예능 출연작인 MBC ‘가시나들’에 대한 호평이 자자 하던데, 또 문소리가 진심으로 사람을 대한다 너무 좋았다고 하는 분들이 많더라. 시골 할머니들과 함께 공부하고 밥도 먹고.. 어떤 경험이었나.

문소리  정규 편성이 안되서 아쉬웠다. 하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웃고 울고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어릴 때 할머니와 방을 함께 썼고 늘 같이 살았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4대가 함께 살았다. (촬영하면서) 우리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서 만나자 마자 편하고 좋았다. 할머니들께 사랑받았던 시간들도 행복 했고. 내 영화를 한번도 본 적 없는 분들인데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나를 보시면서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 하며 예뻐해 주셨다. 최근에 할머니들 단체로 내 영화 ‘배심원들’ 보러 가셨다고 하더라. 내가 교육학 전공인데 그때는 공부를 별로 안했는데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수업을 짜게 되더라. '이런 면이 나한테 있구나' 싶고 재미있었다.
 
Q.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아서 연출의 스타일은 어떤가

지현준  아서 연출님 바라보는 지점이 좀 특별하다. ‘빛의 제국’ 할 때도 소설과 다른 해석들이 매력적이었다. 연극의 존재이유에 대해 항상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우리가 연극을 하는 이유, 죽음에 대한 생각 등이 항상 중첩되어 있다. 봄빛, 가을 빛을 우연히 볼때 그 빛을 통해 평안 해지는 순간이 누구나 있을 텐데, (그 순간은) 저 건너편에 있는 어떤 사람 혹은 (내가 아는) 죽은 사람이 자기한테 말을 거는 순간이라고 하더라. (문, '나도 그 말 생각나. 진짜 인상적 이었어')
나에게 항상 질문을 던진다. 사람을 보는 시각이 막혀 있지 않고 열려 있다. 연극을 왜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 하게 한다.  

문소리  막혀있거나 어떤 생각이 그를 잡고 있는게 없다. 무대 위에서 생각이나 사람을 대하는 것, 시각이 막혀 있지 않고 굉장히 열려있고 총체적으로 느낀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이래서 연극을 하는 거구나 느끼게 하고..

가끔 우리는 어떤 질문만으로도 정신이 번쩍 들잖아요. 답을 얻기도 전에.
 




Q. 과거 플레이디비와의 인터뷰에서(연극 '길 떠나는 가족' 출연 당시) 이윤택 연출에 대해 아버지, 고향 같은 분이라고 말한바 있다. 미투로 밝혀진 이윤택 연출 사건은 사실 당시에 많은 배우와 연극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기에 충격이 더 컸다. 지현준씨 당시 어떤 심경이었는지. 또 과거 여자친구가 이윤택 연출의 피해자였고, 그 분의 미투 폭로 글에 ‘그 당시 남자친구가 알면서 묵인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지현준은 한참을 고민하고 한마디 한마디 뜸을 들여 말을 골랐다) 불편 하실텐데 고맙습니다. 이런 질문을 해주셔서.

그 친구가 (미투) 폭로한 얼마 뒤에 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나는 너에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는데.. 미안하다'고 나를 언급한 것에 대해 사과했고, 나 역시 ‘내가 그 사실을 그동안 몰랐던 것에 대해, 너가 그렇게 감당하게 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 친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게 물었을 때 나는 ‘그냥 됐다’고 했다. 왜냐면.. 그 친구에게 감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나 나나 모두가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내가 아무 말도 안했는데 나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말이 계속 퍼져나가고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상처고.. 그것을 겪는게 엄청 힘들었다. 맞다. 과거에 이윤택 연출 존경 했었고 내 꿈이 어쨌든 거기서 자랐으니까. 그때는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그런 과정 속에서 어쨌든 그 속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그걸 몰랐던 게 너무 부끄러웠다. ‘난 그러지 않았다’(알면서 묵인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하는게 왠지 부끄러웠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게 있다면 무대에서 배우로서 내 역할을 해야겠다. 어떻게든 버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함께 작업하는 이들에게 침묵으로 민폐를 주면 안될 것 같았고 내가 나오는 작품을 보는 관객분들도 마음 편하게 보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작품을 즐겁게 임해도 힘든 과정인데.. 함께 일하는 분들께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 하는 생각이.. 지금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된 것 같다.  (이윤택 연출이) 진짜 깊이 반성하셨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Q. 사랑의 끝은 어떤 사람들이 보면 더 좋을까?

(문소리 지현준 서로 바라보며) 보러 오시겠지? 연극 좋아하시는 분들 많이 보러 오셨으면 좋겠다. 연극에 대한 애정 있으신 분들. 보러 오시겠죠? (웃음)
 




글 : 김선경 기자 (uncanny@interpark.com) 사진 : 기준서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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