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 가야금연주회 ''달항아리''

2011년 7월 13일 비오는 수요일 LG아트센타

황병기선생님은 나의 일방적인 짝사랑이면서 무조건적인 사람이다.
드물게 있는 그의 연주회 소식은 때로는 나를 특별한 곳으로 이끌기도 하고, 억지쓰는 철부지로 만들기도 한다.
몇년전 7월이었던것 같다.. 서울 신촌 산울림극장에서의 성금연추모 20주기 공연장에 선생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당장 산울림 극장으로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극장왈, 이 추모제는 일반인이 올수없고, 가야금 명인 100인만 모시고
할뿐더러 극장의 객석수도 100개 밖에 않된다는 거였다. 단 한좌석도 여유가 없다니...
나는 기획매니져와의 통화를 요구 했었고 결국 그녀를 설득시켰다.
물론,성금연 선생의 일대기를 공부하고 나서였고^^
결국 나는 그 자리에 있을수 있었다. 물론 그를 보기위해서..
오늘 공연 역시 오후스케줄 모두를 포기하고 서울행 KTX에 올랐다.
공연시간이 거의 다되어서야 허겁지겁..2층 맨 앞줄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바로 눈앞에 들어온건 무대화면에 덩그러니 그려진 달항아리하나,
그림하나로 객석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좀,,특이한점 몇가지도 있었는데
꽤 많은 외국인들이 자리한점(당연하다)과 한복입은 관객이 많다는것(역시당연)
그리고 황병기 선생님의 직접 해설로 프로그램이 없다는것이었다.(이건아님)
헉,기억력 좋은^^ 나같은 사람에게,, 흔적없이 왔다가 흔적없이 가라하시나..
곧 휴대폰을 꺼달라는 멘트와 전석매진이라는 안내방송과함께 본공연의 막이 올랐다.

~~~*** 본공연 ***~~~

1곡. 밤의소리 -春雪- (가야금 : 지애리, 장구: 김웅식)

*** 선생님의 곡목 해설 ***

" 한 폭의 동양화를 보자마자 감동을 받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 합니다.
''밤의 소리''는 바로 조선후기 화가 안중식의 ''성재수간도''를 보고 작곡한 곡입니다.
나뭇잎사이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바깥으로 뛰어나가. 사릿문사이로 보이는 가지를 뒤에서
보고 그린 그림입니다."

이곡에 얽힌 일화는 유명하다. 검색하면 다 나오니까 그부분은 생략하고.
음악인의 그림보는 눈은 소리를 들을수 있는 힘도 함께 갖추어야 함을
세삼 깨닫게 되며, 다시 한번더 예의주시하며 살펴보게 되는 그림이다. 밤의 소리는 선생님의 4번째 앨범 ''춘설''의 첫번째곡으로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국곡은 악장으로 나뉘어지나 우리곡은 장으로 이루어진다는 선생님의 설명.-
1장. 신비롭게 2장. 흥겹게 3장. 격정적으로 4장. 애절하게
지애리님는 지난번 대구공연에도 빼어난 연주실력으로 깊은 인상을 받은바있다.
오늘은 마치 황병기님의 화신처럼 자유자재의 손놀림과 감정표현,
검빛저고리와 적색치마의 조화도 한층 더 고풍스럽게 느껴졌다.
1,2 장의 신비롭고 기쁜 감정에서..
3장 바람이 몹시부는 숲속의 격동(선생님음악의특유의쓸어내는연주기법)
4장의 조용하고 슬픈가락까지..
한폭의 동양화에서 풍겨나오는 쓸쓸한 밤풍경이 무대위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

2곡. 소엽산방 -春雪- (거문고 : 정대석-서울대교수-, 장구: 김웅식)

*** 선생님의 곡목 해설 ***

"우선 소엽산방(掃葉山房)이란 뜻은,
''나뭇잎을 쓸어내면서 사는사람의 산속의 밤''이라는 뜻입니다.
조선조때에는 주로 선비가 거문고를 많이 탓는데 이 거문고라는 악기는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읍니다. 가야금은 일본에는 고또, 중국에는 쟁, 베트남에는 단짜인이 있는데, 북한에서조차도 무대연주를 하지않습니다.
거문고는 술대를 이용한 6줄, 가야금은 12줄이고,확연히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읍니다.
거문고 소리가 훨씬 깊고 심오하지요."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가야금을 연약한 여인에 비교(개량이가능)한다면,
거문고는 선비의 굳굳한 절개와 기개(개량이불가능)에 비교되었었다.
가야금은 손가락으로 튕기면서소리를 내지만
거문고는 술대로 내리치면서 묵직한 현을 울려야 하는 것부터가 남성적이다.
이곡은 느리게 시작했다가 빠른템포로 몰아치면서 끝을 맺었다.
가야금사이에 듣는 거문고소리는 일필휘재로 그린 그림위에
마지막 화가의 낙관을 힘주어 마무리하는듯한 농현의 여운이 깊게 남았었다.

3곡. 하마단 (가야금 : 지숙희 , 안나래?)

*** 선생님의 곡목 해설 ***

하마단은 실크로드의 아주 서쪽에 있는 페르시아 지방의 고대 도시이름입니다....
지금 현재 이란이지요..그 하마단을 표현한 음악입니다.
오늘 연주는 가야금4중주 맴버`여울`의 두 젊고 예쁜 보기에도 좋은~~웃음
저와 비교되는^^~~웃음..ㅎㅎ 지숙희 안나래 양입니다.

승려 시인 현담이 쓴 시 하마단 을 읽고 시인 곽재구가 "존재의 먼 심연에 이르는 희미한 길과 안개가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평한 것을 표현한 곡이다
선생님은 무대위에서 한번도 유머를 놓친적이 없으시다.
요란스럽지 않게, 소담스러우면서도 담백하게 많은 사람들을 웃겨주시는 시들지 않는 유머!

하마단 - 현담

하마단
먼 사막을 향하여 떠나는 산 위엔
흰 눈이 빛나고
페르시아 긴 칼이 서늘하다
하마단

여기서 이스파한까지는
여기서 페샤와르까지는
여기서 이슬라마바드까지는
여기서 바라나시까지는
하마단
하마단
메마른 내 몸 속에는 아직 무수히 많은 길들이 흔들린다
지친 낙타의 큰 눈 속에 잠긴 신기루
푸르른 호수 가운데
먼 길 들꽃처럼 무수히 날린다

4곡. 추천사 (달하노피곰) (소리: 무형문화재 강권순)

*** 선생님의 곡목 해설 ***

"추천사는 서정주의 시를 노래로 만든곡입니다...
말하자면 그네뛰는노래 인데,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로 시작을 해서
후반부에 가면 西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갈수가 없구나부분이 나오는데,,
이 서쪽이라는 것은 진리의 세계를 말하는것,즉 달처럼 나는 갈수가 없으니
나를 밀어서 진리의 세계로 갈수있도록 해달라.. 는 곡입니다."

''추천사'' -서정주-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밀 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밀 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5곡. 미궁(迷宮) (가야금:황병기 목소리:윤인숙)

*** 선생님의 곡목 해설 ***

"이번에 소개드릴곡은 좀..이상한 곡입니다.(객석웃음 ㅎㅎ).
제가 1975년에 작곡한 음악인데 명도 국립극장 초연당시
어떤 여인이 무섭다고 중간에 과음을 지르며 뛰쳐 나간적이 있읍니다.^^
또 너무 충격적인 음악이다 해서 연주가 금지된 곡이기도 하지요. ..
그러다가 21세기 들어와서 네티즌들이 인터넷으로 들으면서,
이곡은 3번 들으면 죽는다.. 작곡가는 벌써 죽었다.(ㅎㅎ)
어떤 학부형들은 애들을 놀라게 하느냐..
또 어떤 군인은 어제 미궁을 들었다.군에서 새벽 3시에 담력을 키워준다고 틀어주었다 (객석은 웃음바다다. ㅎㅎ)
모두 7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읍니다.
1장은 ''초혼'' 인데 우주에 있는 혼을 불러들이는일 즉, 인간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2장은 ''웃고 우는 감정'' 인데 이 두감정이 실은 하나입니다.
인간은 실은 가장 기쁠때 울지 않읍니까?..
3장은 ''신음소리'' 인데 고통을 이기는소리, 미래에 대한 의지의 소리입니다.
4장은 ''신문기사를 읽는 소리''이고
5장은 ''발음이 점점 흩어러지면서 절규하는 소리''
6장은 모든소리를 다 삼켜버리는 (white noice) 즉 ''바다'' 와 같은 소리,
피안의 세계로 가는 소리입니다.
반야심경의 마지막 부분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의 성가를 반주로 표현하면서 이곡을 처음 시작했던 ''초혼''의 반대되는 .. 그러한 곡입니다. 그럼 연주해보겠읍니다."

그렇게 미궁의 연주는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건 바로 오늘 목소리의 주인공 윤인숙이다.
햐얀소복에 하얀백발의 긴머리 흰버선,,흡사 여자 산신령같은 차림새부터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첼로활로 가야금을 두드리면서 그녀의 구음이 시작된다.

한국인의 깊은 ''한''을 표현하는 것은,어떤 악기보다 나는 구음이라 생각한다.

선생님의 원음원은 홍신자의 목소리이나 그러나 오늘 이분, 그에 못지않은
심도있는 울림이 있다... 가야금과 인성의 조화가 조금씩 세밀해져가면서
구음은 깔깔깔 섬뜻하게 웃기 시작한다.. 객석에서도 따라 웃는 소리가 간혹들리기도 하다가
이네, 울음소리로 바뀌어지면서..여인은 뼈속깊은곳까지 한 많은 사람처럼 목놓아 운다.
이상하게도 그 짧은 시간에 나 역시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그려면서 잠시였지만,촌각의 희열을맛보는듯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어라 설명되어질수 없는..현장에서만 느낄수 妙用時..
그러다 가야금으로 낼수있는 모든소리..밑판을 긁고 두들기고 문지르고..
마치 전자음향과 같은 창작의 소리를 보고 들으면서 선생님이 천재성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
여성의 구음은 신음소리에서 신문읽는 소리로 넘어가며,, 비명소리,절규의 소리로 전개된다.
가야금은 다시 처음시작때와 같이 저음으로 두들리기 시작한다.
"아제아제바라아제" 흩어러지듯 읖조리는 성부에 가야금의 절묘한 마무리까지 박소리를 내듯
미궁의 마무리는 가야금 한박자로 끝을 맺었다.
오늘 구음의 윤인숙님은 65세의 백발이시고, 황병기 선생님은 75세의 원로이시다.
이 두 장인의 ''미궁''은 언제 다시 들어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그러나 내 평생 잊은수 없는 명장면으로 가슴 깊은곳에 기억될것이다.

마지막곡. 침향무(沈香舞) (가야금:황병기 장구:김웅식)

*** 선생님의 곡목 해설 ***

제가 낸 음반 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가야금곡입니다.
저는 가야금을 시작할때 부터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가야금을 했었읍니다.
이것을 해서 밥을 먹고 살아야겠다라는 생각도 없었구요,
우리가 사랑을 하면 목적의식을 가지고 사랑하는건 사랑이 아니지요.
아무런 조건도 이유도 없어야 진짜 사랑하는 것입니다.
1959년 법대 졸업당시 서울대 국악과가 신설되면서 현재명 선생의
적극적인 추천에도 저는 넘어 가지 않았으니까요 웃음^^ㅎㅎ
그러다가 1974년 이화여대 국악과가 신설이 되면서 전임으로 가게 되었읍니다.
그 당시 저는 모든일을 정리하고
순수한 가야금연주자로서의 인생만을 살게 된겁니다.
그러면서 암스테르담과 여름에는 순회독주회도 다녔으며
본격적인 작곡활동도 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가 작곡한 음악중에 침향무가 가장 연주가 많이 되는 곡입니다.
아마 수천번도 넘게 되었을 겁니다.
부모에게 소중하지 않는 자식이 어디있겠읍니까만은저에게도 자식(곡)이 많지만, 유달이 애착이 가는 곡이기도 합니다. 그럼 잘 될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겠읍니다.

침향무.....
이 곡은 선생님의 제일 첫번째 음반 마지막 곡이다.
비단길이 나오기전 음악으로, 내가 선생님을 알게된 계기가 된 음악이기도 하다.
20년도 넘는 세월...
그는 이제 80을 바라보는 나이고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50을 바라보고 있다.

황병기 선생의 음악에는 규칙이 없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인생철학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그러나 이론과 실제가 이토록 완벽한 사람도 드물것이다.
달항아리를 닮은 음악이라 하셨던가..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가야금을 타실때에는 한마리 백로와 같고, 그모습은 한폭의 동양화이다 라고.

여기 평론가의 힘있는 한마디를 대신하면서 선생님을 다시 한번 새겨보고 싶다.

황병기는 한국 현대음악사에 있어서 이정표적 존재이다....
그의 작곡세계는 마치 나선형과 같은 두 가지 인력이 작용한다.
하나는 중심으로 향하는 힘(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서 벗어나려는 힘(미래)이다.
이러한 두 가지힘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그는
새로운 작품을 한생 시켰는데 이들을 ''한국 낭만주의 음악''이라 하겠다

올해로 75세를 맞이한 황병기 명인이 무대에 섰다.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미궁>을 연주했다. 지애리의 <밤의 소리>로 시작한 연주회는 황병기 명인의 곡 소개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한국인이지만 국악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들을 위해 설명해주시는 품이 예민하지만 친절한 할아버지 같았다. 황병기 명인이 연주가로서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그가 작곡한 곡들을 연주회장에서 들을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의 뒤를 잇게 될 젊은 제자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매우 고무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동안 기회가 닿지 않아 쭉 음반으로만 황병기 명인의 작품을 접했던 나는 공연장에서 그의 음악을 듣는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했다. 게다가 정대석씨가 <소엽산방>을 거문고를 연주할 때에는 멋진 보너스까지 받는 느낌이었다. 단지 날씨가 궂어 습도가 높은 탓에 거문고 소리가 탄탄하게 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또 황병기 명인의 가곡까지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서정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추천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내 생각이지만 가곡은 창이나 민요와 달리 지르는 소리보다는 곱게 가성을 내서 읊조리는 듯한 소리가 많아 우아하고 고상하게 들린다. 황병기 명인은 공연 끝무렵에 <미궁>을 윤인숙씨의 목소리와 함께 연주하고 그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를 얻은 <침향무>를 마지막에 연주했다. <미궁>의 웃고 우는 부분에서 나는, 감정이 폭발했다. 현대 음악 형식을 띤 난해한 곡은 현장에서 들어야 한다. 음반만으로는 공감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어제의 공연이 황병기 명인의 연주를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을까 한다. 나는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