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좋았다.
모짜르트 교향곡 6번은 긴장해 있는 오케스트라에게도 관객에게도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에 집중하게 만들게 해주는 좋은 역할을 해주었다. 소담스러우면서도 즐겁고 발랄하게 음악을 이끌어나가는 덕에 간만에 연주를 들으면서 웃었으니까^^. 집에서 혼자 들었다면 3악장 미뉴엣과 4악장 알레그로에서는 손뼉치고 웃으면서 들었을 것 같다.

그러나 라르스 포그트와의 협연은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다.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둘의 슈만이 너무 달랐던 것일까.
오케스트라의 슈만은 상당히 낭만적인 곡선인데 피아니스트의 슈만은 엄격한 직선이었다.
공연이 끝난 지금, 말러 챔버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인지 피아니스트에 대해 좀 더 짜게 매기게 된다. 그의 연주는 정확했지만 터치가 무거웠고 영 오케스트라의 슈만에 녹아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너무 착한(?) 연주를 선호하지 않은 까닭도 있다.
1악장의 불일치는 거슬릴 정도라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2악장에 들어가서 서서히 다가가더니 3악장에 가서는 만족스러운 호흡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피날레에 대해서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협연이 중간에 들어간지라 앵콜이 인터미션 전에 터지는 재미난 상황이 벌어졌는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던 슈만보다, 앵콜곡으로 연주한 브람스 콰르텟이 좋았다.^^
자연스러웠고 서로 호흡이 잘 맞아서 인상적으로 남았다.

마지막 브람스 교향곡은 상당히 좋았다.
말러 챔버와 다니엘 하딩에 대한 호감을 상당히 증가시켰다. 손끝을 타고 음악이 흐른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젊은 지휘자와 함께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이래서 때때로 젊은 연주가 듣고 싶구나, 깨닫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와 수석 오보에 연주가의 연주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3악장 오보에의 연주로 시작되는 선율은 사랑스러우면서 다정해 마음이 따뜻해질 정도였다. 마지막 악장에 가서 관악기와 현악기가 서로 팽팽하게 날을 세우면서 이를 달래듯 감미로운 관악기의 화음이 이루어지고 하나의 선율로서 흘러 반복 전개된 후 피날레로 흐를 때는 정말 저절로 가슴 속이 뜨거워지면서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마지막 선율이 사라지기도 전에 저절로 박수가 튀어나왔다.

앵콜곡들도 훌륭.
그저 취미로 듣는지라, 앵콜곡이 뭔지 모르겠는게 아쉬움...
그냥 대강 음악에서 느껴진 것으로 찍은 바로는, 첫번째가 모짜르트, 두번째가 말러, 세번째가 멘델스존 같았는데(진짜 찍었다;;; 확실히 아는 분이 곡명을 말해주면 참 좋겠다.), 셋 다 좋았고 특히 마지막 곡은 오케스트라와 찰싹 달라붙는 느낌이라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다니엘 하딩 내한 공연에 맞추어 그의 베스트 앨범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다소 황당한 느낌이었다.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지휘자에게 베스트 앨범이라니... 그러나 하딩이 19세에 데뷔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낸 많은 앨범들을 간추릴 경력이 충분할것이다. 사이먼 래틀과 같은 최정상의 지휘자에게 어린 나이에 발탁되어 유럽 음악계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은 그의 경력은 그 어떤 음악가보다 화려하고 돋보인다. 게다가 귀족적이고 우아한 그의 외모는 그의 재능을 대중적으로 더욱 빛나게 해주는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이번 공연은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한국팬들을 이래저래 기대하게 만들수 밖에 없었다.

공연은 한마다로 말해서
교과서적으로 완벽했다.
처음 시작을 알린 모짜르트의 교향곡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만큼 모짜르트 해석에 충실했다. 정교한 현악파트를 중심으로 매끄럽게 흘러가는 선율은 춤을 추듯 몸을 유연하게 흔드는 하딩의 지휘와 정확하게 교감했다.
라르스 포스트와의 두번째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내심 실망감을 주었다. 피아노 협주곡의 묘미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격정적인 피아노가 대등한 관계에서 경합하면서 때로는 감싸앉으며 때로는 서로에게 경쟁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을 감상하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따라서 오케스트라에 주눅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오케스트라를 압도해버리지도 않으면서 피아노가 가진 매력을 흠뻑 발산할 수 있는 것이 호흡의 관건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다. 그저 어울리지 않았다. 포그스는 거구의 체구가 보여주듯 스테미너는 뛰어나나 정교하고 세밀함은 다소 떨어지는 연주를 보여준 반면, 말러챔버 오케스트라는 예의 칼날처럼 날카로운 일체의 화음으로 연주하였다. 둘은 하나의 음악으로 격정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멀리 떨어져 안부를 묻고 있는 듯 싱거웠다.
오히려 앵콜곡으로 피아노와 현악 4중주에서의 연주가 훨씬 에너지 넘치고 감동적이었다.
2부 공연은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이었다. 브람스 음악은 현악기의 표현력이 특히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목관악기 파트에서 출중한 선율을 들려주어 무척 인상적이었으며, 전반적으로도 무난한 해석이었다.
다니엘 하딩이 무대매너도 참 깔끔한 신사라고 생각드는 것이 앵콜곡을 충실히 준비했다는 점이다. 감정적이고 열광적인 반응을 잘 나타내는 한국 관객을 의식했는지 그다지 뜸들이는 것도 없이(?) 시원시원하게 모짜르트 교향곡을 비롯한 3개의 앵콜을 들려주었다. 앵콜곡이란 공공연히 내세우지는 않지만 관객이나 연주자나 내심 요청해주길 바래 절정의 순간에 펑하고 터뜨리는 일종의 극적 효과이다. 따라서 앵콜곡을 연주할 때는 정식 공연 프로그램은 다 마친상태에서 모두들 다소 흥분상태에 있는 데다가, 완벽한 연주에 대한 커다란 부담감이 없기 때문에 다소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연주를 들려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니엘 하딩의 앵콜 연주는 자로 잰듯 처음의 엄격함과 정교함을 잃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미덕이자 아쉬움으로 남는다. 때로는 연주자는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격정에 휘감겨 전통적 해석이나 박자따위는 무시하고 갈때까지 가는 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카타르시스다.
천재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다니엘 하딩은 잘 다듬어진 모범생 타입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뛰어나고 걸출한 모범생인지라 그 어떤 공연보다도 따뜻한 만족감을 주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조금 서두르는가 싶었다. 역시 젊어서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모차르트가 끝나고,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중반까지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피아니스트인 포그트가 먼저 흥을 내기 시작했고, 이후 전반적으로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브람스 교향곡은 느린 곳과 빠른 곳을 적절히 지적하고, 강약에 제대로 액센트를 부여했다.
피아니스트의 앵콜곡인 브람스 피아노4중주와 교향악단의 앵콜곡인 모차르트 모두 본 공연을 능가할 정도로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