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어요 울라프가 아닙니다

공연 시간이 다소 짧았던 건 아쉬운 점입니다 (7시 조금 넘어 시작해 8시 30분 쯤 끝난 것 같네요)
그렇지만 연주가 매우 좋았고(눈 감고 들으니 눈물 나게 좋더라구요)
차분히 진행된 점 역시 만족스러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또 관람하고 싶네요!

제법 쌀쌀한 10월 31일, 어디에선 할로윈 파티를, 어디에선 국정화 반대 시위를, 어디에선 공연을 하고, 보고.. 다채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시점에, 너무나 고요했던 연세대 캠퍼스... 백양아트홀 안에서는 환상과 같은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올라퍼 아르날즈라는 사람을 국내에서 이렇게나 많이 보러 올 줄은 생각지도 못 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주로 듣는 이에게는 클래식 음악으로 들릴 수도, 시규어로스와 같이 몽환적인 음악을 주로 듣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장르로 들릴 수 있는 참 오묘한 음악인데 국내에 이렇게 인지도가 많은지 몰랐습니다. 심지어 이번이 첫 내한이 아니고 이미 몇 번 다녀갔었다니..

2~3곡을 연이어 연주하고 몇 마디의 말을 꺼낸 후 다시금 2~3곡을 이어서 연주했습니다.
…and They Have Escaped the Weight of Darkness 앨범에 있는 곡들이 주로 나왔던 거 같습니다.
다른 나라와의 셋리스트가 어떻게 다른지까진 비교하지 않았지만 사실 욕심같아선 Living Room Songs 앨범에서처럼 많은 멤버들을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가 한 명이라고, 첼리스트가 한 명이라고 그의 음악이 누추해지거나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명이라서 현의 미세한 소리들이 들리고 더 집중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후딱 자리를 비웠는데 나중에 사진 같은 것들을 보니 사인을 하셨더라구요.. ㅠㅠ
좀 더 기다릴 걸 그랬습니다..

너무너무 좋았던 공연, 꼭 다음에 다시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10월 31일. 한가을에 찾아온 때이른 겨울 추위. 털장갑과 털모자로 단단히 채비를 하고 나선 길.겨울나라에서 온 올라푸 아르날즈와 함께 시월 마지막 밤에 겨울 맞을 채비를 하다.(공사 후 처음 들린 연대. 세월이 만든 풍화도 시간이 남기고 간 추억도 아닌 렛미인 출연 성형으로 갑자기 변신한 옛 애인 같은 백양로에 깜짝 놀라 얼른 뒤로 하고 걸음 총총. 자라인지 솥뚜껑인지 보고 놀란 가슴을 올라푸의 음악이 차분히 진정시켜주겠지.... )
올라푸의 음악을 눈감고 듣는다. 그러자 전나무가 가득한 숲으로 난 길에 홀로 점점히 나 있는 발자국이 떠올랐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눈이 펑펑 내리고 소리가 잦아들고 세상이 모두 침묵할 때 오로지 눈 위를 밟고 가는 서걱거리는 발자국 하나가 숲 사이로 작은 길을 하나 만들며 멀어져가는 풍경이. 그리고 바로 이 시 한 편이.......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어 들리나니 대지(大地)의 고백(告白)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寂寞)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 고은 ''눈길''
북극과 가까운 아이슬란드에서 온 올라푸의 음악은 겨울을 닮았다. 새하얀 눈을 닮았고 그 눈으로 수놓인 고요한 숲을 닮았다. 그리고 그 겨울이 몰고온 겨울바람을, 어둠속에 찬연히 빛나는 수정같은 눈동자를 닮았다.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관객들이 그 조용한 분위기를 흐트리게 되면 집중하기 불편해진다.
공연장안에 스모그도 피어오르고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기침하는 관객이 몇 있었고.. 늦게 입장하는 관객도 몇 있어서
초반에 집중 하기가 조금 어려웠지만

후반에 갈수록 집중이 잘되고 편안하게 공연을 들을 수 있었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고
어떤 관객은 공연이 끝났는데도 울면서 감동을 이어갔다.

유투브에서 올라퍼 아르날즈가 어떤 집안에서 공연을 하는게 있었는데
오히려 더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션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