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창작을 넘나들며 묵묵히 자신의 예술세계를 고집해 온 안무가 김정학이 7년만의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와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의 이수자이자 조흥동류 월륜춤의 최고 무용수로서 인정받으면서 경기도립무용단, 제주시립예술단, 서울예술단에서의 안무 작업을 통해 현대적 감각의 창작력으로 관객과 평단을 놀라게 했던 김정학의 신작은 1부 창작춤 <파란 목련>과 2부 전통춤으로 총 90분 길이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1부에 선보일 신작 <파란 목련>은 여성의 일생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희..

1부. 「파란 목련」

“처음엔..
그런 걸 왜 묻나“
남의 일에 그렇게 끼어드는 게 아니지.
나도 뭐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어느 이른, 이른 봄에. 위태하고 화려하게
가차 없는 사랑을 시작했다면 모른 척 지나쳐야 해.
그리고 그 시간이 너무 짧은데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다면 소란하고 무죄한 그 아름다움에 대해
더욱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아.
그녀의 이름은 목련이야.
지금은 모두가 떠난 지 오래고 이미 울타리와 숲들이
우거진 초여름 밤이니 그 봄을 얘기해도 무정한 바람
같은 훼방은 없겠군 ., 뭐 그런 거야 별로 상관없지만,
그녀가 떠나기 전에 내게 들려준 노래를 이제 들려줄까해.
나 말고 누군가 더 기억해 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마 자네도 조금만 떠올리면 기억날 테지만.

1. 처음엔
맨 처음엔
부끄럼 없이 먼저 겨울을 빠져 나와
그렇게 당신을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아직 차갑게 외면하는 햇빛조차
일찍 온 내가 눈부셔 망설이는 줄 알았답니다.
어제 아침엔 울타리 곁을 지나가던 한 청년이 잠에서
아직 덜 깬 하얀 목을 들어 나를 한참 올려다보더니
짧은 웃음을 건네는데, 갑자기 당신생각에 숨이 차올라
나도 한동안 하늘만 쳐다보고 서 있었어요.
봄을 알리는 일들은 사방에서 일어나
먼 데서 부터 달려온 햇살이 몸을 감싸주지만
날선 바람에 흐린 기다림은 더욱 감춰지질 않아요
언제쯤 오시나요.


2. 산 아래 야트막한 마을에도
봄날 저녁은 정답게 파고드는데
기다리다 저무는 자리는 너무 추워요.
한낮에도 달처럼 흰 그리움에 지쳐
이제, 나 당신께로 가려합니다.
환한 자태로 발밑을 가리며
무모하게도 홀로 빈자리를 채우는 나날.
여러 색깔의 꽃들이 자기 소리를 내며
산과 마을로 내려와 밤은 점점 짧아지는데
이 하얀 시간들은 당신의 자리입니다.

하지만 너무 괴로워하지 말아요
난 당신 까닭에 더 많은 꽃을 만들어내고
그 후엔 훌훌, 다른 모습으로 떠날 테니까.
그건 당신과 나와 상관없는
이 계절에 관한 일로 생각하세요.
그리 될 거라고 밤바람이 말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이제야 이해합니다.
그러니 그냥.
거기서, 오지 않아도 이제 괜찮아요.
어차피 모두 떠나는 거니까.

3. 밤비를 맞으며 뒤늦게 돌아온 당신.. 무슨 까닭인가요.
이렇게 조금 남은 시간에
타인처럼, 처음보다 무례히,
내 앞에 와 있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이 밤은 기다림보다 어둡고
나를 만지는 당신은 떠나온 길처럼 아득합니다.
정말 가벼운 당신.
무죄한 당신 앞에서 그리움은 서둘러 흩어지고
봄 햇살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내 두터운 꽃잎은
비에 젖어도 맑은 당신 모습 앞에서
대책 없이 숨죽여 타들어갑니다
절망도 무화시키는 당신의 따뜻한 입술에 길 잃은
두 손은 빗물에 흘러가는데..
긴 겨울을 뚫고 살아남았던 우리.
이미 당신은 내게서 멀리 떠난 줄을
내가 왜 모르겠어요... 알고 있어요.
내게서 떠난 당신의 그 일은 이제 그토록 나쁘진 않아요

4. 아무 때나 거침없이 젖은 날개로
돌아와 슬픔보다 큰 침묵으로 머물던 당신.
그래서 난 당신이 매번 반갑고 낯설어요
아무리 아프고 힘들고 외롭고 지쳐도.
한 길로만 올 수는 없었나요
어울려 사는 자작나무도 겨울바람에 가지를 휘고
깊은 바다 밑에 해초들도 해안을 지나 산을 넘으려는
서풍에 흔들려 이파리를 떨군다는데..
아픈 무게에 눈멀고 헤벌어져 무참히 떨어지는 내 소리가
당신에겐 들리지 않았나요
이상한 당신.

오늘, 당신과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빛깔이군요
하늘은 종일 유리처럼 파랗고
오랜 침묵으로 잃은 시력과 숨을 데 없는 슬픔이
여기저기 떨어져 힘없이 헤어져야 하는 소란한 저녁.,
당신으로 인해 오래 더운 몸은 덧없이 부풀린 기억을 버립니다
내 아래서 타들어가는 당신의 거친 잠도 바람에 흩어집니다.

남이 된 우리 사랑은 느리게 재가 되고
철없이 우리 안에서 즐거운 검고 푸른 바다
당신은 유일한 내 사랑
아무도 모르지
당신도 모르지.
사라진 노래.
이른 봄 처음 보았던 하늘..
내 안에 푸른 당신을
아마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거야.

2부「전통춤」

1. 입 춤
춤에 있어 <입춤>이란 <서춤>과 같아 단아하고 정갈하며 마음을 가다듬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은은하게 우러나오는 감성을 육신을 통하여 무원과 무맥을 풀어내는 춤으로 궁중정재의 절제된 품위와 서민의 소탈한 마음의 조화를 함께 간직한 우리춤의 원초적 춤사위로 옛날 권번이나 무용연구소에서 기본춤으로 정하는 춤 세계 입문의 춤이라 할 수 있는 춤이다.

2. 진 쇠 춤
진쇠라 함은 우리 고유 타악기인 꽹과리를 말하며 가장 소리가 잘 나는 쇠, 즉 참쇠라는 뜻을 가르키는 말로 <진쇠춤>은 쇠를 들고 절묘하게 가락과 소리를 내어 여러 신을 불러들이며 그 신들로 하여금 잡귀를 물러나게 한다. 나라에서는 국태민안과 시화연풍을 노래하고 팔도원님들이 왕 앞에서 국운을 빌며 제사 지낼 때 <진쇠춤>을 추었다하며 근세에 와서는 경기 도당굿 제석거리에서 추어졌으며 고 조한춘, 이지산, 박용호, 이동안 등 여러분들이 추었던 것을 많은 고증과 유래 및 춤사위를 정립하여 <진쇠춤>을 원형에 가깝게 정리하였다.

3. 승 무
우리나라 민속무용의 정수를 승무라 할 만큼 가장 품위와 격조가 높은 춤이다. 승무는 유독 춤만이 돋보이는 완전한 예술형식을 지니고 있으며 그 동작 하나 하나의 모습이 정교하고도 아름답게 다듬어져 보인다. 또한 춤추는 사람과의 사이에 긴장감을 조성해주는 법고는 단순히 흥겨운 리듬으로서만이 아니라 춤의 연장으로 이어진다.
속세의 번뇌를 잊어버리고 인간의 미지한 세계를 북을 두드리며 호소하고 정신을 통일시켜 부처님 앞에 사죄하는 의식으로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승무>로 형상화, 춤의 예술로 발전되었으며 춤의 반주 음악은 단일 무용으로서는 가장 많은 장단변화와 함께 무리없이 연주되는 것이 <승무>의 큰 특색이라 하겠다.

4. 산 조
가야금의 섬세하고 화려한 선율에 이른바 정.중.동 의 전통적인 형식을 간직하면서 일체의 소품없이 그 움직임의 범위를 확대하여 정제하는 매혹적이며 단아하고 담백한 춤사위를 갖는 우리춤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5. 중부살풀이
인간사 액을 막아주고 살을 풀어 준다는 복합적 큰 의미의 춤으로 긴 수건을 들고 심혼에서 영을 불러 울어대는 몸짓으로 남도 살풀이, 호남 살풀이, 도 살풀이 등 다양한 춤사위가 있지만 중부살풀이는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
일원과 충청권에서 추워진 살풀이춤을 집대성하여 재구성한 조흥동류의 중부 살풀이 춤이라 하겠다.

6. 궁 애(宮 愛)
태평무에서 그 무원을 찾을수 있는 왕과 왕비의 춤을 이시대의 새로운 해석으로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조명하면서 궁중비화의 사랑을 그려본 작품이다.

7. 소 고 춤
농악에 편성되는 소고잡이들이 추는 춤으로 경기 선소리를 부를 때도 이 춤을 춘다. 전복(戰服)에 상모가 달린 전립(戰笠)을 쓰고 자루가 달린 소고를 두드리면서 경쾌하게 움직이며 춘다. 소고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기보다 하나의 소도구를 이용되는 일이 많다. 춤의 모습은 농사행위와 수렵행위·전쟁행위로부터 형성된 돌격무진(突擊舞進) 동작과 포위하는 동작이 대부분이다.

8. 한 량 무
본래 <한량무>는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춤으로 한량, 주모, 각시, 노승, 동자춤 등으로 구분되어 시류를 풍자화한 춤이였으나 세월의 흐름에 독무로 변하여 독립된 남성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옛 선비의 춤이다. 그동안 여러 스승으로부터 학습하여 온 <한량무>를 재안무하여 1982년 ［대한민국무용제 전야제］에서 <회상>이란 제목으로 선보인 조흥동류의 <한량무>는 옛 가락과 춤사위를 정리하여 무대에 올려졌다. 지나온 시절을 회상하며 발자취를 하나, 둘 되돌아 보는 옛 선비의 고고한 자태와 품위를 마음껏 뽐내여 인생의 무상을 노래한 작품이다. 청송곡으로 시작하여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그리고 다시 청송곡으로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