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갓 오마이갓 1(Omigod Omigod)!
플레이 디비에 <금발이 너무해, Legally Blonde>에 대한 기사를 쓴다고 말해버렸는데 막상 공연을 보고 나서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오마이갓 오마이갓 2(Omigod Omigod)!
남자 혼자 왜 공연을 보러 갔을까? 공연을 보고 멍해져 집에 돌아왔다. 아직도 내 옆 자리에서 소리 지르던 핑크빛 어린 여자 관객들의 괴성이 환청으로 들린다! 주위의 후배들도 혼자 공연보러 갔었다고 하니 킥킥거리며 비웃는 것 같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이미 어떤 공연일지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다. 원작의 영화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있었던건 알고 있었을 뿐더러, 후편까지 나온 영화의 위력도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런던에 상륙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번 공연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정리해 보려는 이유는 단지 작품이 가볍게 볼 수 있는 뮤지컬 코미디라서 공연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쉽게 간과해 버리긴 어렵겠다는 생각에 있다.

작품의 제목 [Legally Blonde]가 왜 <금발이 너무해>로 해석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품은 동명의 2001년 원작 소설과 영화를 바탕으로 하여 제작된 뮤지컬이다. 패션 머천다이징을 전공한 화려한 금발의 여주인공 엘 우즈(Elle Woods)가 자신을 차버린 남자를 되찾기 위해 하버드 법 대학원에 입학하여 자기자신이 가진 장점과 노력으로 일과 사랑에 성공한다는 내용의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이다.

샌프란시스코 트라이 아웃 이후 2007년 브로드웨이에 상륙한 이 미국산 뮤지컬은 뉴욕에서 1년 반 동안 공연된 후 서울과 함께 올해 런던에도 올 수 있었다. 12월 5일 런던의 사보이 극장(Savoy Theatre)에서 프리뷰를 시작한 공연은 크리스마스 성수기를 맞이하여 젊은 여성 관객들로 꽤나 북적이고 있는 듯 하다.

고정관념(Stereotype)을 깨기 위해 설치된 더 많은 고정관념들
이 뮤지컬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작품이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시선의 이중성에서 나온다.

주인공인 엘 우즈는 전형적인 금발 미녀이다. 하지만 ‘금발 미녀=멍청하다’라는 사회의 고정관념을 거부한 그녀는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고, 여성들만의 클럽(델타 누, Delta Nu)을 운영할 정도로 활동적이며, 누구에게도 당당한 신세대(?) 여성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주인공의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 작품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고정관념들을 양산해 낸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자면, 여자는 관심가는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언제 어디에서건 ‘밴드 앤 스냅(Bend and Snap)’ 동작을 관능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들은 근육질의 마초맨이거나, 최소한 옷은 못입어도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 성공이 보장되거나 집안이라도 좋아야 한다. 또 주인공을 제외한 하버드 사람들은 패션감각도 없으며 심각하고 지루하고 못 생긴 사람들이고, 작품속에서의 동성애자는 지극히 동성애자다워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본 다른 나라들도(유러피언과 아일랜드) 한쪽에서만 바라본 치우쳐진 시선일 뿐이다.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하버드 법 대학원에 그녀가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였다. 하지만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다른 생각들을 수용하려는 다문화주의적 노력은 주인공이 하버드에 입학할 때만 적용될 뿐이다. 이외의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작품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슬프게도 고정관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장치된 고정관념들 속에서, 어느 순간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려고 노력하는 엘 우즈의 당당한 모습은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치밀하지 못한 구성
공연이 가지고 있는 내적 주제의식의 문제점과 더불어 외적 구조의 한계는 더욱 이 작품의 가치를 떨어트린다.(물론 이런 의견에 반대할 델타 누 준회원들이 많겠지만)

로렌스 오키프(Laurence O'Keefe)와 넬 벤자민(Nell Benjamin)의 음악과 가사는 전체적으로 완성도에 있어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을 것 같다. ‘So Much Better’를 포함한 몇 곡들은 배우들의 젊고 활기찬 에너지로 나름 관객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가사나 음악의 구성이 치밀하다거나 지적인 위트를 찾아보긴 힘들다. 시대를 초월한(?) 여러 장르의 음악들이 섞여있는 모습도 조화롭다거나 신선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데이빗 록웰(David Rockwell)의 개성없는 셋트 디자인과 더불어, 연출과 안무를 같이 담당했던 제리 미첼(Jerry Michell)의 연출가로서의 역량도 부족해 보인다.(이번 작품이 그의 브로드웨이 연출가로서의 데뷔작이다) 특히 엘의 브룩 윈덤의 교도소에서의 줄넘기 장면은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간 봐왔던 뮤지컬 장면들 중에 가장 우스꽝스럽고 바보 같은 장면중의 하나였다.(Omigod!) 더불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델타 누 코러스들의 등장에 전혀 공감할 수도 없었으며, 또한 공연 중간에 등장하는 힙합과 아이리쉬 댄스가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와 어울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워너역의 던컨 제임스와 엘역의 셔리던 스미스

그나마 이번 런던 공연의 캐스트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주인공 엘역의 셔리던 스미스(Sheridan Smith)와 워너역의 던컨 제임스(Duncan James)의 연기는 안정적이었고,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에너지도 관객들에게 만족스럽게 전달되었으니까.

엘 우즈는 현대 젊은 여성들의 롤 모델일까?
현대 사회에서, 특히 한국에서, 외모는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 버렸고 경쟁력의 척도로도 인식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나 <금발이 너무해>의 엘 우즈가 과연 현대 도시 여성들이 지향하는 삶을 대변하고 있는지. 여성들이 추구하는 롤 모델(Role Model)로서 충분한지.

글쓴이는 여성도 아닐 뿐더러 다소 아날로그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기에 이러한 질문에 충분한 해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더더군다나 아직까지 스타벅스 커피나 브런치 문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지미 추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거나 최소한 자위적 만족감을 어떻게 느끼는지도 잘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저 가볍게 즐기려는 뮤지컬을 두고 왜 그리 심각해져 있는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는 설득에 수긍당하기엔 이런 대형 상업자본이 만들어 낸 문화적 영향력의 실체가 너무 크다. 왜 디즈니의 <하이 스쿨 뮤지컬>을 반대하는 뮤지컬 창작자들의 운동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미국적 신자유주의 사고에서부터 작품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찰하려는 노력은 또 다른 커다란 담론이고, 아직까지 글쓴이는 역량이 부족하여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하게 언급할 수 있는건, 역사적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이 제시했던 미국적 여성상들이 진취적이었으면 진취적이었지 이번 작품에서처럼 서투르거나 어설프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 기사는 <금발이 너무해> 런던 프리뷰 공연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사진출처 <금발이 너무해> 런던 프로덕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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