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공 세 여배우들의 연기 배틀이 팽팽했습니다. 딸과 손녀 역의 두 젊은 배우는 프랑스어 억양까지 현지인처럼 구사했고, 엄마 역할의 전국향 배우는 역시는 역시 최고였어요! 주제도 의미깊고 좋은 연극입니다.

연극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 5개월차입니다. 사실적인 대본을 연극적으로 잘 형상화 시킨 재밌는 작품입니다. 연극을 포함한 무대예술이 가진 큰 무기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자본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장점을 극대화시키는데에 더 집중해야하니까요. 대학로에 흔히 있는 사실주의 연극이 아니라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재밌게 만들기 위해 웃음을 짜내는 억지 유머코드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태봤던 상업 연극보다 덜 웃깁니다. 하지만 연극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를 경험하기엔 좋은 연극이라 추천합니다.

다인극이지만 흡사 모노드라마를 보는듯한 '전국향'배우의 절제된 옥분역은 억척스럽고 무지하지만 애수에 잠긴 캐릭터와 물아일체인듯 가히 압도적이었고 이성적인듯 방어적인, 상처받은 영혼의 위태로운 감정을 유창한 불어에 담아 연기한 '이현주'배우의 혜영도 섬세했으며 천진난만한 어린 소피역의 '조혜선'배우는 진짜 어린이가 아닌가 싶을만큼 깜찍하고 사랑스러웠다. 전라도 사투리와 프랑스어만큼이나 이질적인 두 인물의 삶은 애끓는 모정과 자신의 근본을 찾고 싶은 혈육의 인연으로 메울수 없는 현실 속 커다란 간극 사이에 놓여 있었고 이해와 사랑이라는 공존의 감정보다 원망, 증오, 죄책감, 연민의 감정들이 언어만큼이나 높은 장벽이 되어 오랜 세월 품어왔던 그리움의 대상을 현실의 괴리감 속에 박제시킨다. 해피엔딩이 아닌 이별을 택하는 혜영의 편지는 희망을 예견하는듯 하나 치유될 수 없는 그녀의 상처를 대변하는 회피의 수단이고 어쩌면 딸을 낳아 기르는 모정으로 옥분의 지난 세월과 홀로 남겨질 옥분에게 혜영이 전하는 관용이자 예의바른 배려인듯 다가온다. 문학소설이 주는 깊은 울림을 작은 무대위에 눈처럼 흩뿌려 관객들의 가슴에 소복히 쌓이게 하던 연극 '나,옥분뎐(傳)!' 활화산의 용암처럼 흘러내리던 혜영의 절규에 덤덤히 읊조리던 옥분의 대사가 쓸쓸하니 긴 여운을 남긴다. '당췌 뭐라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무슨 말인지 그것이 궁금허당께' 권영준 삼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작품을 기다리며..

극단 '공연제작센터'에서 기획한 '권영준 삼부작' 중 두번째 작품인 '나,옥분뎐(傳)!'은 가난으로 자식을 입양보내야 해던 옥분의 기구한 삶과 안락한 삶을 살아왔지만 생모로부터 버려진 트라우마를 가진 혜영이 해후하여 겪는 일상을 그리며 가족의 의미와 소통의 중요성에 관한 고찰을 시사하고 있다. 극작을 위한 희곡에 남다를 열정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애정이 빛을 발했던 일부작 '꽃님이발관'의 호연 이후 3개월만에 만난 이부작에 대한 기대치는 당연히 높았다. 희곡 '나,애심뎐(傳)!'과 소설 '나,옥분뎐(傳)!' 두가지 텍스트를 한번엔 엮어 발간한 <동시상연집(同時上演集)> 중 전지적 작가시점의 소설을 희곡으로 재편성한 작품으로 권작가 특유의 서정성이 풍성하게 묻어났으며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폭풍처럼 격돌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잘 담아낸 섬세한 연출로 깊이 있는 심리묘사가 일품이었던 공연이었다.

기본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습니다. 남도 사투리와 프랑스어와의 기묘한 조화가 잘 이뤄지는 작품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감동도 함께 느끼게 되죠..

전국향 배우도 잘하지만 혜영역 이현주 배우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진짜 감동은 이현주 배우의 대사 속에서 느껴지더군요..

따뜻한 가족의 정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