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꼭 작품성만 좋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앞서 보았던 작품들과는 다르게 공연이 특정 관객층의 요구에 부합하거나, 또는 시기적으로 내용이 잘 맞아떨어진다던가, 아니면 적절한 마케팅과 홍보에 의해 큰 성공을 이끌어 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 작품! 한국에 온다면? 시리즈 2' 에서는 작품성보다는 흥행성에 무게감이 있는 공연들 위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더티 댄싱, Dirty Dancing: The Classic Story on Stage> -여성들을 위한 판타지

<더티 댄싱>의 스테이지 버전은 뮤지컬이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원작의 영화를 가감 없이 그대로 무대로 옮겨온 경우이다. 굳이 따지자면 영화와 공연의 차이는 2D와 3D 라이브의 차이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공연이 최근 몇 년간 웨스트 엔드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공연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제작자들이 공연으로부터 관객들이 무엇을 요구하는 지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러 오는 대부분인 여성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가사와 노래가 더해진 뮤지컬 버전의 새로운 <더티 댄싱>이 아니라, 그들이 젊었을 때 영화를 통해 보았던 나쁜 남자에 대한 환상의 재현, 다시 말하면 어린 여주인공을 통한 감정이입의 재경험일 뿐이다. 이는 원작 영화가 ‘여자들을 위한 스타 워즈(Star Wars for girls)’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여성들의 감성을 제대로 건드린 결과물이었기에 가능하다.

호주와 독일공연에 이어 2006년 런던에 상륙한 공연은 이미 6개월치의 티켓이 공연 시작 전에 매진될 정도로 일찌감치 흥행 대박의 징조를 알렸다. 하지만 이제 브로드웨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더티 댄싱>이 만약 한국에 수입될 경우 흥행에 성공할지는 아직은 미지수일 것 같다. 아마도 원작의 영화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가진 국내 여성 팬들이 얼마나 많고, 또 그들이 적극적인 공연의 소비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판단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분명한건 이 공연은 작품성을 배제하고서도 흥행성에 있어선 얼마든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예시로서는 정답에 가까운 공연이란 것이다.


<위키드, Wicked>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위키드>는 ‘뮤지컬은 드라마, 음악, 안무, 디자인 등이 어우러진 종합 무대예술’이라는 기준에서 놓고 보면 잘 만들어진 뮤지컬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몇몇 장면이나, 작사,작곡가인 스티븐 슈워츠(Stephen Schwartz)의 노래들이 더러 흥미 있는 경우도 있으나 차라리 공연은 글린다와 앨파바 두 여주인공의 MTV 뮤직 콘서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더 낫기도 할 듯 싶다. 전체적으로 공연의 드라마도 약할 뿐더러 너무 외형적인 면에 치중해 드라마와 시각적 요소들이 서로 적절히 녹아 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공연은 뉴욕에서도 런던에서도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흥행성공을 이뤄 나가고 있다. 런던 <위키드>만 하더라도 그 커다란 아폴로 빅토리아 극장을 매일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관객들을 채우며 3년 넘게 순항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뮤지컬은 런던 관광객들의 하룻밤 즐길 거리로 부족함이 없을뿐더러, 두 여주인공의 우정과 경쟁심 같은 소재들이 특히 젊은 여성 관객들에게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의 <위키드> 공연이 성사된다면, 분명 지금까지의 명성때문만이라도 만족할 만한 수준의 흥행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는 로열티를 포함한 제작비의 비중이 꽤 커보이는 이 공연이 수익을 낼 수 있는지가 미지수라는 것. 일본 제작사 시키가 뮤지컬 <라이온 킹>을 한국에서 장기 공연 하고도 수익을 내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하이 스쿨 뮤지컬, High School Musical>-프로덕션? 프로덕트?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공룡 디즈니의 <하이 스쿨 뮤지컬> 무대 버전은 원래 원작인 디즈니 TV 채널 영화의 대성공에 힘입어 무대화된 일종의 프랜차이즈 상품이다. 저 예산의 원작 영화가 예상 밖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 디즈니는 발 빠르게 속편들을 시리즈로 제작하면서 무대용 뮤지컬도 만들게 되었고, 현재 이미 무대 버전의 <하이 스쿨 뮤지컬2>가 영국 투어 공연을 하고 있다. 또 언제나 디즈니가 그러하듯 <하이 스쿨 뮤지컬> 로고가 박힌 앨범, DVD, 화보, 인형, 공책, 연필, 지우개 등등 팔 수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기념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고, 2010년에는 영화 <하이 스쿨 뮤지컬 4>까지 나올 계획이라고 하니 디즈니의 콘텐츠를 상품화하는 능력은 가히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콘텐츠를 상품화하는 게 뭐가 문제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문제점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디즈니가 접근하는 콘텐츠에 대한 방식은 철저히 상업적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하이 스쿨 뮤지컬>이 <라이온 킹>이나 <메리 포핀스>처럼 새로운 무대 미학을 통해 어떤 예술적 가치를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노력했는지를 반문한다면 대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웨스트엔드의 어느 유명한 평론가가 ‘이 공연은 프로덕션(Production)이 아니라 프로덕트(Product)다’라고 언급한 사실도 있다.
<하이스쿨뮤지컬>이 조만간 한국에서 공연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TV버전의 원작영화가 얼마나 한국의 어린 관객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겠지만, 영미권에 비해 <하이 스쿨 뮤지컬>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된다. <하이 스쿨 뮤지컬>은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성공해야 할까?


<조셉 앤 더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뮤지컬계의 큰손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초기작 <조셉 앤 더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는 원래 1968년 중등학교 성가대의 부활절 콘서트를 위해 만들어진 15분짜리 짧은 음악극이 시작이었다. 그 후 우연한 기회로 공연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점차 뮤지컬로서의 틀을 갖추게 되어 지금의 대형 상업 뮤지컬로 성장했지만 공연은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 면에서 초기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조셉의 일화를 뮤지컬로 그린 이 공연은 특히 대부분의 <조셉> 프로덕션들이 그랬듯이, 주인공인 조셉 역에 비중 있는 팝스타나 유명한 배우를 출연시켜 극 내용상의 빈약함을 만회하면서 인기몰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작년에 막을 내린 리버이벌 <조셉> 런던 공연에서는 BBC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리 미드(Lee Mead)라는 매력남이 출연하면서 공연의 식상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흥행 대박을 만들어 냈다.

한국에서도 올 해 이 공연이 올려진다는 소식이 있는데 아마도 조셉 역을 누가 맡느냐에 따라 공연의 성패를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참 잘 나가는 아이돌 멤버 중 하나가 조셉 역을 맡으면 굳이 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공연은 충분히 흥행할 수 있지 않을까?


<워 호스, War Horse> - 가족들이 보기에 부담 없는 감동 드라마

마이클 모퍼고(Michael Morpurgo)의 1982년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연극은 지난 2007년 10월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흥행을 지속하고 있다. 현재 웨스트엔드의 뉴 런던 극장으로 이전하여 공연을 연장하고 있는 이 연극은 조만간 영국내 투어와 브로드웨이 공연을 계획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최근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극을 보고 이 원작 소설의 영화판권을 샀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평론가들에게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던 이 연극의 최대 강점은 공연이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감동 드라마라는 것이다. 세계 1차 대전 당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이라는 이름의 말과 소년 알버트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이 공연의 압권은 핸드스프링 퍼펫 컴퍼니(Handspring Puppet Company)의 실제 크기로 제작된, 움직이는 말 퍼펫(인형)들이 인간과 교감하는 장면들이다. 비록 원작이 어린이용 소설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플롯이 단순한 느낌이 있으나 한국에서 이 연극을 볼 수 있다면, 공연을 보러 온 가족 관객들에게 멋진 극장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 같다.

돌아가서

런던에 살면서 다양한 종류의 공연을 직,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느끼는 점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연의 작품성과 흥행성이 항상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작품성이 형편없어도 잠재적인 관객층을 적극적으로 발굴 개발하는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아 왔을 뿐더러, 훌륭한 작품성을 가지고도 여러 가지 내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흥행에 있어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분명히 공연시장에서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면을 간과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연 제작자들이 관객의 현실적 요구에만 맞춰 작품 고유의 색깔이나 의도를 망각한 채 돈을 추구하기 보다는 관객들의 수요에 한 발 앞선 창의적인 심미안으로 시장을 선도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사진 출처: 각 프로덕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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