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인들이 묻는다. “그래서 오프 브로드웨이가 뭔데?” 그러면 그 동안 봐온 작품들을 떠올리며 대강 브로드웨이보다는 규모가 작고, 오프오프 브로드웨이보다는 규모가 큰 쇼들이라고 대답해왔다. 그러다 요즘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적어지면서, 그래서 자연스럽게 눈길이 오프 브로드웨이 쪽으로 더 자주 돌아가면서,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게 됐다. 오프 브로드웨이가 정확히 뭘까? 그래서 찾아봤다.

뉴욕의 소극장, 오프 브로드웨이
오프 브로드웨이는 맨하탄 전역에 있는 100-490석 규모의 41개의 극장들이다. 그러니까 브로드웨이상에 있더라도 극장 객석수가 100-490석 이면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인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소극장쯤 되겠다. 기발한 뮤지컬들, 연극들, 모노드라마를 포함한 모든 쇼들이 여기에 속한다. 가끔 오프 브로드웨이하면 작품의 수준이 낮다거나 출연진도 별로일 것 같아서 브로드웨이만을 고집하는 분들도 있는데, 솔직히 그런 걱정이 기우만은 아닐 때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필자도 극장을 나오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으니까.


하지만 그 동안 <스프링 어웨이크닝>, <에비뉴 큐>, <넥스트 투 노말>, <인 더 하이츠>, <렌트> 그리고 <스펠링 비> 같은 브로드웨이 히트작들이 다듬어지고 영양분을 취해 큰 작품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곳이 오프 브로드웨이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다음 시즌의 최고 히트작을 만나길 기대하며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들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게 우리 형편 아닐까? 게다가 극장이 작기 때문에 작품으로부터 받는 감동도 브로드웨이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고, 혹시 유명스타라도 출연한다면, 그의, 그녀의 땀구멍까지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니겠는가! 그 동안 <섹스 앤 더 시티>의 씬시아 닉슨(Cynthia Nixon), 에단 호크(Ethan Hawke) 같은 배우들이 출연했던 곳이 이 친밀한 공간들이었다.

알찬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들
우리나라에도 연극/뮤지컬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극장이 있듯이, 뉴욕에도 언제든 찾아가면 좋은 작품을 대략 보장받을 수 있는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아는 선에서 몇 군데를 소개하니, 뉴욕서 오프 브로드웨이를 경험하고 싶다면 체크해 보면 좋을 것 이다.


먼저 43번가에 위치한 ‘세컨드 스테이지 씨어터(Second Stage Theater)’. 뮤지컬 <스펠링 비>가 탄생한 곳으로 현재 뉴욕에서 사랑 받고 있는 극작가 Sara Rhul의 <에우리디케(Eurydice)>를 공연하기도 했던 곳이다. 오래된 교회를 개조해서 만든 첼시의 ‘아틀랜틱 씨어터(Atlantic Theater)’는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시작된 곳이면서, 우리나라에도 왔었던 연극 <필로우 맨>의 극작가로 피비린내 나는 폭소를 전하는 마틴 맥도너의 작품들이 주로 첫 선을 보이는,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극장이다. 그리고 뮤지컬 <에비뉴 큐>를 디벨롭한 ‘비녀드 씨어터(Vineyard Theater)’에서도 한 시즌 한 시즌 신중하게 작품을 선정한다. ‘퍼블릭 씨어터(Public Theater)’에서는 아방가르드하고 실험적인 작품이 많이 올라가며, 그 외 이번에 한국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이 NYMF초청작으로 올라갈 ‘에이콘 씨어터(Acorn Theater), ‘뉴 월드 스테이지(New World Stages)’, ‘맨하탄 씨어터 클럽(Manhattan Theater Club at City Center)’도 관객들이 즐겨 찾는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들이다.


오프 브로드웨이에는 어떤 공연이?
이왕 오프 브로드웨이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으니, 어떤 작품들이 공연 중인지 소개도 할 겸 몇 편을 봤다. 그 중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과 뮤지컬 한 편이다.

* 연극 <우리 동네(Our Town)>
‘버로우 스트리트 씨어터(Barrow Street Theater)’에서 오픈 런으로 공연 중. 뮤지컬 <헬로우, 돌리!(Hello, Dolly!)>의 원작인 <매치 메이커(Matchmaker(1954)>를 쓴 쏜톤 윌더(Thronton Wilder)에게 1938년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총 3막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뚜렷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무대가 있는 것도 아니며, 어떻게 보면 설명이 주저리주저리 너무 많아서 ‘왜 저렇게 다 풀어서 설명할까?’ 싶기도 하지만, 감동이 있다. 1막에서는 ‘일상’에 대해, 2막에서는 ‘사랑과 결혼’,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죽음’에 대해 잔잔하면서도 임팩트있게 작가의 생각을 극으로 표현한다.

퓰리처 수상이 1938년도 일이니까 1897년에 태어난 작가가 대략 그의 나이 마흔 전에 쓴 작품일 텐데, 2009년의 관객들에게 똑같은 감동으로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극중에 교회성가대 연습장면에서, 즐기라고 하는 게 음악인데, 성가대원들이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자 음악감독이 시끄럽다며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곧 사람들은 소곤소곤 노래를 부른다. 보면서, ‘저게 바로 인생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응하며 사는 삶. 만약 강한 스토리에, 코미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2시간 내내 고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필저는 몇 차례 더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 뮤지컬 <세션스(Sessions)>
‘알곤킨 극장(Algonquin Theater)’에서 공연 중인 작품. 미안한 얘기지만, 한 동안 뮤지컬을 보지 못해 갈증을 느끼던 차에 더욱 갈증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정신과의사와 그의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일단 스토리가 전혀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리고 음악감독의 놀라운(?) 리듬감 때문에 공연 내내 힘들었다고 말해야만 하겠다. 평소 작품을 추천하거나 아니면 아예 소개를 안 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기에, 이 작품을 소개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오프 브로드웨이는 아무래도 생소한 분들이 많을 것이고, 혹시라도 어쩌다 본 한 편의 오프 뮤지컬이 이 작품이 돼 다시는 우리나라 소극장도 찾지 않게 될까 봐, 소개하기로 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2009년 가을 오픈 예정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들
* 블라인드 레몬 블루스(Blind Lemon Blues)
1920년대 블루스 가수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Blind Lemon Jefferson)’의 일생을 다룬 작품으로, 블루스 가스펠, R&B, 소울, doo-wop 그리고 랩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9월 8일부터 10월 4일까지 ‘요크 씨어터 컴퍼티(York Theater Company)’에서 공연된다.

* 이멜다(Imelda)
필리핀 전 대통령 페르난도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의 이야기로 9월 22일부터 10월 18일까지 ‘팬 아시안 레퍼토리 극장(Pan Asian Repertory Theatre)’에서 만날 수 있다.

* 평범한 날들(Ordinary Days)
네 명의 뉴욕 청년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각자 자신의 범상치 않은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는 스토리로, 10월 2일부터 ‘해롤드 앤 미리암 스타인버그 센터’에 있는 ‘블랙박스 극장(Black Box Theater)’에서 막을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뉴욕에 와서 잘 한 일 중에 하나는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봤다는 것이다. 브로드웨이로 옮긴 후, 그 작품은 김 빠진 맥주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히트쇼를 저렴하면서도 더 친밀한 거리에서 볼 수 있어서 좋은 오프 브로드웨이에서는 매년 관객들을 위한 행사도 진행한다. ‘20 at 20(http://www.20at20.com)’라는 이벤트. 여기에 참여한 쇼들은 공연시작 20분 전까지 티켓이 남아있으면 관객들에게 20달러에 판매하는 행사다. 올해는 9월 8일부터 9월 20일까지 2주 동안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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