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요덕스토리>로 유명한 정성산 감독의

올해 새 작품 <평양마리아>를 보고 왔어요.

정성산 감독은 평양 출신으로 북한에서 생활할 당시에도

모스크바로 유학 가서 영화를 전공할 정도로 엘리트셨는데요.

북한에서 몰래 한국의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발각돼 한국으로 탈출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정 감독님의 아버지는 함경남도 요덕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버지가 공개처형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죄책감과 분노의 마음을 담아 쓴 작품이

바로 뮤지컬 <요덕스토리> 입니다.

정치범수용소에서 피어난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담은 요덕스토리는

국내외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호평을 받으면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인데요.

저는 기회가 닿지 않아서 아직까지 보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 감독님의 뮤지컬 작품은 그 후 개그맨 김진수 씨가 출연했던 <위대한 쇼>,

그리고 영화 <양강도 아이들> 등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대학로에서 새로운 뮤지컬 <평양마리아>의 공연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쁜 마음에 냉큼 달려가서 오픈 둘째 날인 4월 23일에 공연을 보았습니다.

정성산 감독님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려온 저이지만,

평양마리아는 모노 작품에다가, 북한의 지하교인들의 인권 탄압을 그린 작품이라기에

관람을 하러 가기 전에 살짝 걱정되기도 했었어요.

염쟁이 유씨 같은 대학로의 명품 모노 작품도 많긴 하지만,

모노 작품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 자칫 지루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기도 했고요,

저는 무교이기 때문에 너무 종교적인 이야기를 그리진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공연을 보고 나서 제 걱정이 "얼마나 쓸데없는 기우였던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

뮤지컬 감독이기 전에 영화감독인 정성산 감독님의 능력이 최고로 발휘된 작품이

바로 뮤지컬 <평양마리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미 한 편의 영화를 따로 촬영해서,

뮤지컬 공연장에서는 영상과 무대가 절묘하게 어우려지면서

멋진 하모니를 이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무대 뒤로 영상이 보이고, 그 앞에서 배우가 공연하는...

그런 단순하게 영상이 결합된 무대라고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제가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여, 직접 공연을 보시면 '오~ 이런 거였구나' 하고 아실 거예요. ^^

그리고 여주인공인 정리화 역을 맡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2시간 동안 노래와 연기를 주도하는데,

세 분의 배우가 트리플캐스팅됐는데 저는 정리화 씨의 공연을 봤고요,

두 시간 내내 와우~ 열연을 펼치시는데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한 편의 영화와 어우러져서 공연이 진행되는 데다가,

무대 위에도 정리화 씨 외에도 북한 장교 옷을 입은 남자 배우들이 나와 군무를 함께 펼치기도 하면서

전혀 모노 뮤지컬이라고 볼 수 없는 흥겹고 재미있는 시간이 후다닥 지나갔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북한 조선혁명박물관 책임 해설원인 '정리화'라는 여인의 사랑이야기가 주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의 가요 '사랑의 미로'를 몰래 즐겨듣던 정리화는 순수한 평양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는데요.

쌍둥이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던 도중에 남편이 선물로 준 MP3가 북한 보위부에 발각되는 바람에

그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일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이들도 잃고, 남편을 살리기 위해 중국으로 탈출해 몸을 팔기까지 하는데요...

그 뒤로 이어지는 끔찍한 이야기들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야기의 후반까지 전혀 종교적인 색채를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전 제가 다른 작품 설명을 잘 못 읽고 왔나 착각할 정도로 종교적인 이야기가 아닌

한 여인의 절실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정성산 감독이 7년 동안 실제 인물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요.

정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작품적 상상력일까 궁금할 정도로

너무도 충격적인 현실들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요즘 통일을 화두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평양 마리아>를 보고

우리 한반도의 윗쪽 땅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서 연인들에게도 강추합니다.

내가 사랑을 한다면, 주인공 정리화처럼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한 남자를 사랑했던 리화가 나중에는 마리아가 돼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애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