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아내의 경제적 뒷바라지를 받으며 교수 임용을 위해 논문을 준비하는 남편의 허영은 남편을 청자로 두고 아내와 아내의 엄마가 주고받는 대사의 홍수 속에서 정체가 탄로 난다. 아내는 좌절된 꿈의 말로는 술집과 포르노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예술을 향해있는 꿈의 위대함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는 대중에게는 이해받기 어려운 고된 일이라고 좌절된 현실을 포장한다. 남편은 그림 속 여자들처럼 한때는 아름다웠던 아내와 사랑을 하고 실력만으로 교수가 되는 로맨틱하고 위생적인 삶을 바라지만, 현실에 남은 것은 도덕적 아집 때문에 더 이상 진행시킬 수 없는 논문과 젊은 남자 손님에게 친절한 아내를 질투하는 포르노에의 추락욕구뿐이다.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시어머니가 물려준 보신탕집을 운영하며 아빠를 위해 희생했던 엄마와 똑같은 삶을 살게 돼버린 아내의 허영은 남편과 손님의 대화에서 정체가 탄로 난다. 와인과 도넛을 좋아하고 논문을 준비하는 남편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어떤 이지적인 삶의 형상을 추구했지만, 현재를 윤택하게 하는 것은 와인과 도넛보단 소주와 족발이 어울리는, 보신탕집에 개를 대주는 백정인 손님과의 7년 동안 쌓아온 우정이 전부이다.

맘모스가 어떤 거대한 것을 은유한다면, 과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소되지 못하고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한 두 사람의 분열된 허영이 만든 거대한 감정의 콤플렉스 덩어리가 바로 ‘맘모스’의 정체일 것이다. 이 연극이 무대의 가장 왼쪽에서 가장 오른쪽에의 여정이라고 가정해보자. 즉 무대 가장 왼쪽에 있는 박물관의 유물처럼 오래되고 자기 자신도 제대로 보이지 않게끔 불투명한 화장대의 거울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위생적이고 현대적인 세탁기로의 여정이라면, 거울에서 발견된 최초의 콤플렉스 덩어리가 세탁기로 들어가서 위생화 되는 과정이 바로 ‘해동’이 갖는 의미일 것이다.

얼어붙었던 거대한 감정덩어리가 대화와 대화 사이에서 해소되느라 형태가 진흙탕처럼 흉측해지는 것도 잠시, 아내는 다시 감정이 얼어붙는 빙하기의 도래를 예고한다. 해동이후 이 시기에는 질척해진 감정덩어리가 어떤 매끈한 맨몸을 되찾는다. 감정덩어리가 위생화 되면 마침내 맨몸을 그럴듯하게 상품화한 포르노만 남는다.

남편이 교수로 임명됐을 때 입기로 했던 새 양복을 벌거벗은 손님이 빌려 입고 있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심지어 남편한테는 손이며 발이며 너무 커서 맞지 않았는데 손님에게는 손님을 위해 맞춘 것인 양 딱 맞는다. 그동안의 노력을 포기하기로 선언한 남편이 세탁기에 들어갈 것을 선택하고 남편이 무대에서 사라졌을 때, 그때마침 등장하는 것이 남편의 새 양복을 입은 백정(손님)이다. 마치 꿈이 이루어져서 다시 금의환향 한 것처럼 남편이 그렇게 질투했던 손님의 모습으로 남편이 돌아온 것 같은 연출이다.

남편은 떨리는 손으로 칼을 들고 손님을 위협하면서 손님의 옷을 벗겼다. 남편은 손님을 강도로 오해하고 손님은 남편을 강도로 오해하면서 사소한 오해 속에서 손님은 탈의한다. 여기서 드러난 맨몸은 너무나도 허약해 보인다. 백화점에서 맞춘 남편의 새 양복을 걸친 손님은 양복 때문에 근사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맨몸에 불과하다는 점이 은폐된다. 벽에 내내 걸려있던 라파엘전파의 그림들처럼 양복을 입은 손님은 빛나는 한 순간이 박제된 한 장의 그림 같다.

콤플렉스 덩어리가 아주 거대해 보여서 인간이 마치 위대한 화가들의 업적과 이름처럼 거대해보이지만, 이는 아주 사소한 것에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아내가 자신의 꿈을 포기했던 것도 아내가 가정을 부양할 수 있을 만큼 강해서가 아니라,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허영과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삶의 전부인 남편의 연약함에 감응할 수 있는 찰나의 감수성, 찰나의 흔들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인 연약함이라는 비극을 은폐하기 위해 스스로 빙하기를 찾는 것이 이 연극의 인물들이 저지르고 있던 유일한 어리석음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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