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초연한 작품을 2016년에 만난다면 그 때와 지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작품의 배경이 최근에 있었던 사건, 게다가 미제로 남은 연쇄살인사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단순히 미제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지금 사회에 모습까지 반영한다면 더욱 그럴 거이다.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20주년 기념 <날 보러와요> 를 관람하는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이며,

동시에 지금도 이 작품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이유이다.

<살인의 추억> 의 원작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니 만큼,

김광림 연출/작가가 만들어낸 극적인 구성은 상당히 탄탄하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흐름 가운데,

진실의 모호성 및 상대성, 진실은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잘 알기 어렵다는 느낌이 잘 전해진다.

몇몇 배우가 배역의 충분히 녹아내리지 못한 듯하여 종종 몰입이 어려운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개연성 있는 대사, 등장인물 개개인의 특징을 잘 살린 캐릭터는 작품의 밀도를 높여주고,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등장하는 다양한 갈등상황과 웃음의 요소(때로는 허탈한 실소)들이 작품에 계속해서 함께 하도록 도와준다.

등장인물 모두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온전히 착하고 완벽하기만 한 사람들은 아니다, 실수와 잘못도 범한다.

하지만 책임지기보다는 자신의 이득이 우선순위인 권력 속에서,

사건의 현장, 삶의 현장에 잇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삶에는 아픔과 균열이 생긴다.

초연과 어느 정도 달라진 내용이겠지만, 작품을 보며 20년 전에는 꽤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내용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극에서 비추는 언론의 모습,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한 개인의 모습에서.

<살인의 추억>에서도 보았지만, 큰 사건이 났을 때 미디어는 입맛에 따라 때로는 과장하고 때로는 감추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

물론 지금은 주류언론의 아젠다세팅 기능이 많이 축소되었고 보도 후 검증의 방법도 많아졌지만, 진실보도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진 언론의 선정성으로 인해 적잖은 사람들의 삶이 고통을 받고 방향이 달라지었을 듯 하다. 그들에게만 책임을 전적으로 돌릴 수 없지만 씁쓸하다. 연극을 보면서, 언론의 보도를 보며 적극적으로 분노하고 반응했던 그 때를 되돌아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현대적 수사와 고전적 수사가 교차하고, 그 안에서 때로는 답답함도 느껴지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감당하고 싶었던 일들을 완수하지 못해 트라우마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의 공감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모든 선택을 환원론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상황의 절박함이 무리수를 두게 하는 과정을 볼 때 마음이 편치 않다. 특별히 마지막 김형사의 절규는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지금 봐도 그런 느낌인데 20년 전 초연에는 어떠하였을까... 그 아픔과 고통을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될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하는 20주년 관람이기에 헛헛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사건이 해결되었으면 느꼈을 후련함이나 뿌듯함은 강하지 않다. (물론 진범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아서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처음에 말한 것처럼, 이 공연은 의미가 있다.

우리를 계속 기억하게 만들고 질문하게 만드니까.

해결되지 않은 문제, 오래된 문제라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고

그 중요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기억하고 투쟁하고 답을 찾을 것이라고.

단순히' 경기남부연쇄살인사건'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지지 않는 권력에게,

자신의 이득에 맞는 이야기만 하고자 하는 권력에게,

그 가운데 상처입은 사람을 감싸지 않은 권력에게

우리는 가만히 있을 거이냐고 질문을 던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