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은 조금씩 다 잘한다. 입담은 개그맨 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 입을 열면 청산유수에다 반전이 있는 결말 멘트로 좌중을 압도한다. 피아노도 전공자까진 아니지만,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할 만큼 꽤 수준급이다. 가장 큰 약점이 가창. 오죽했으면 3000명이 넘는 관객 앞에서 아예 이렇게 말할까. "제 노래는 그냥 술먹고 고성방가하는 동네 아저씨 정도로만 여겨주세요." '파리지앵' 정재형은 너무 진지한데서 오는 무거움을 탈피하려고 애쓰는 가벼움이 자칫 코웃음을 유발한다. 그래서 인기다. 그의 무대는 프랑스 유학 출신이라는 걸 대놓고 자랑하듯 아방가르드한데, 삶은 에피쿠르스적이다. 삶의 원초적 즐거움이 대중앞에 드러날 때, 그의 진가는 발휘된다.

루시드폴 얘기는 어떻게 풀어야할까. 그와의 대화는 죄지은 사람이 고해성사하기위해 마주한 신부의 가르침을 듣는 듯하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시를 읊는 듯한 모습은 속세에 때묻지 않은 고결함 그 자체다. 물론, 루시드폴은 이 얘기에 분명 반색을 하며 반기를 들 것이다. 카이스트 출신의 두 남자가 모인 페퍼톤스는 감각적인 음악과 학구적인 이미지와는 또다른 코믹 멘트로 서민적 냄새를 물씬 풍긴다.

이들은 모두 '안테나 뮤직' 소속 뮤지션들이다. 다들 자신이 가사를 만들고 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이고, 자신없는 가창이지만 이를 악물고 노래하는 열혈 보컬리스트다. '가창력' 문제를 들고 나오는 때아닌 '무리'들의 문제 제기에 이들은 특별한 무대를 준비하기도 했다. 안테나 뮤직 배 보컬 경연대회 `대 실망쇼'가 그것이다. 얼마나 노래를 못 부르는지 한번 감상해보자는 직설적 대응의 콘서트는 그러나 '대 만족쇼'로 역전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재미와 감동을 이끌었다.

이들은 왜 한 곳에 모여있을까. 우연일까, 필연일까. 굳이 답을 내놓자면 우연이기도하고 필연이기도 하다. 가창만을 중시하는 이들에겐 그들이 직접 부르는 노래가 달갑지 않겠지만, 그들의 음악이 궁금한 이들은 존재 자체가 고마울 터. 그만큼 이들이 펼치는 음악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깊고, 색다르면서도 고급스럽다.

'안테나 뮤직'은 그러니까, 개성과 독창성을 자랑하는 음악가들의 집합소인 셈이다. 그 안에 가창은 음악의 일부분일 뿐이다. 안테나 뮤직이란 울타리에 들어가기위해서는 입담이나 끼가 전제 조건이 아니라, 먼저 음악의 개성과 음악을 향한 열정이 우선돼야한다. 그렇게 음악적으로 '공인'받은 이들이 알고보니 입담이 좋다거나, 엉뚱한 면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유희열은 자신이 늘 꿈꾸던 뮤지션인 팻 메스니처럼 되고 싶어해 한국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선율의 패턴이나 리듬을 추구해왔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서정적인 발라드만을 기억하는 이들조차도 그의 음악에 `세련미'를 부가하는데 이견이 없을 정도다. 그는 재즈 화성을 폭넓게 쓰는 것은 물론, 다양한 리듬의 세계에서 한 올 한 올 건지는 작업을 등한시 하지 않는데, 그의 음악이 발라드, 라틴, 일렉트로니카, 재즈 등이 한데 묶여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짬뽕 장르에 걸쳐있는 것도 이같은 그의 음악적 성향을 보여주는 증거다. 　정재형의 음악은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예술성'을 향하고 있다. 다른 가수에게 곡을 줄 땐 말랑말랑한 선율인데, 정작 자신의 음악에선 '고집'때문인지, '배운 티'때문인지 장인의 노력이 느껴질 만큼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것 역시 국내 대중가요에선 하지 않았던 시도들이다. 어쩌면 그는 '뮤지션 위의 뮤지션'의 세계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루시드폴의 포크는 더이상 과거의 흔적을 배어물지 않는다. 단순한 기본 장조와 단조 계열의 코드를 버린 지는 이미 오래. 대신 유럽식 재즈의 리듬과 멜로디를 가져와 고급스러운 코드로 포장한 음악들은 한국 포크의 세계화를 꿈꿀 정도로 멋지고 맛있다. 거기에 어떤 시 보다 더 감동적인 표현의 가사들은 그 맛과 멋을 업그레드한다. 클래지콰이와 함께 일본의 시부야계 스타일의 감각적인 리듬을 국내에 처음 들여온 페퍼톤스 역시 이 장르의 독보적 노선을 꾸준히 지켜가고 있다.

이들이 꾸리는 각자의 독특한 음악 세계는 하나의 스타일이 됐다.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다. 이들이 특히 여성 팬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것도 스타일리시한 감각 덕분이다. 잘생기고 노래 잘하는 남자 보컬리스트들에게 쉽게 꽂히는 여성의 보편적 성향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이지만 `스타일'이 주는 효과를 무시 못한다는 걸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피아노 치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여성 음악 팬(과거에는 기타치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꼈다.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로커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한때 `대세'였다.)의 취향도 이같은 분위기를 한껏 거들고 있다.

자신의 음악에 자존감을 가지는 뮤지션일수록, 개성있는 색깔로 독보적 음악 세계를 구축하는 뮤지션일수록 순수한 경우가 많은데, '안테나 뮤직'의 뮤지션들이 대개 그렇다. 만약 `여성 팬들이 왜 '안테나 뮤직' 뮤지션들에 빠질까'에 대해 누가 묻는다면, 이 순수한 열정도 추가해야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주름도 늘고, 제법 뱃살도 나와 외모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안테나 뮤직' 소속 뮤지션들의 '음악살'은 `나잇살'을 제치고 또다른 매력을 분명히 풍겨낼 것이다. 그들의 생존력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