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몇 가지 웨스트엔드 소식들을 살펴보자.

1. 뮤지컬 <네버 포겟>의 배우들 출연료 삭감
영국의 보이 그룹 테이크 댓(Take That)의 노래로 만든 쥬크박스 뮤지컬 <네버 포겟, Never Forget>이 1,150석의 사보이 극장에서 900석의 리릭 극장으로 옮겨가면서 작품 프로듀서가 배우들의 임금을 상당부분 삭감한 새로운 계약을 요구해서 배우들과의 의견 충돌이 있다는 소식이다. 프로듀서는 영국 지방 투어를 마치고 5월에 웨스트엔드로 입성한 이 작품의 흥행이 예상보다 저조하자 작은 규모의 극장으로 이전함과 동시에 내년 4월까지의 출연 계약을 마친 배우들의 수도 줄이면서 남은 배우들의 임금 삭감을 요구한 것 같다.

2. 흥행이 저조했던 2008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올해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티켓 세일이 작년에 비해 10% 감소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티켓 세일 부진의 원인으로 관계자들은 새로 도입한 티켓팅 시스템의 오류 문제와 좋지 못했던 날씨, 베이징 올림픽, 그리고 전체적으로 좋지 못했던 경제 여건을 꼽는 모습. 하지만 결국 페스티벌을 이끌었던 예술감독 존 모건(Jon Morgan)이 사임했다.

3. 기대 신작 뮤지컬 <마거릿> 조기종영
야심차게 막을 올렸던 신작 뮤지컬 <마거릿, Marguerite>도 예정보다 두 달 일찍 공연을 종료하고야 말았다. 공연 관계자는 관객들의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경제 상황의 여파로 인해 티켓 판매가 저조하여 예상보다 일찍 공연의 막을 내린다고 말했으나, 내년 일본과 스페인, 프랑스에서 공연을 올릴 계획이 있으니 일단 공연의 전체적인 성공여부는 내년 2라운드로 넘어가는 것 같다.

세계적인 경제 불안정의 여파로 영국도 여러 부분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런던도 예외 없이 각종 에너지 요금이나 생필품 가격이 전에 비해 크게 올라 물가 상승의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 이러한 상황 아래 웨스트엔드도 여기저기서 감원과 비용 절감을 위한 각종 자구책의 소식들이 들리고 있으며, 공연 마니아들의 주머니 사정 역시 전과 같지 못해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래저래 무거워 진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웨스트 엔드

그러나 이런 불안정한 외부 환경 속에서, 관객들에게 사랑 받는 공연들은 더욱 두드러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일련의 부정적이고 불안정한 경제 상황이 웨스트엔드 전체 티켓 세일에 악영향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더욱 빛을 발하는 공연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으니, 어쩌면 이런 악조건들이 작품들의 자생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마 웨어하우스(Donmar Warehouse)는 250여 석의 소극장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질 높은 공연으로 티켓 구하기가 쉽지 않은 극장이다. 올해 여름-가을 시즌동안 공연되었던 연극 <초크 가든, Chalk Garden>과 <피아프, Piaf>는 일찌감치 표가 매진되어, 공연을 보려면 공연 당일 아침 일찍 극장 앞에 줄을 서서 발매되는 30장(스탠딩 티켓 20장 포함)의 티켓 중 한 장을 노려보는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돈마의 연이은 성공 자신감은 올 하반기에 윈덤 극장(Wyndham’s Theatre)에서 시작된 ‘돈마 웨스트 엔드 시리즈’와 보드빌 극장(Vaudeville Theatre)에서의 <피아프> 연장공연으로 대변된다. ‘돈마 웨스트 엔드 시리즈’는 750석 규모의 윈덤 극장을 일 년간 대관하여, <이바노프, Ivanov>,<십이야, Twelfth Night>,<마담 드 사드, Madame de Sade>,<햄릿, Hamlet>을 공연하며, 이번 연극 시리즈는 올 하반기와 내년 웨스트 엔드에서 가장 이목이 집중된 공연들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각 공연마다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 데릭 자코비(Derek Jacobi), 주디 덴치(Judi Dench), 주드 로(Jude Law)등 스타들을 전면에 내운 마케팅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으며, 웨스트엔드에서는 드문 일요일 추가 공연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티켓 가격을 책정하여 상대적인 뮤지컬 편중 현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다른 예로 뮤지컬 <위키드, Wicked>가 2009년 9월까지 티켓 예약 판매를 연장했다는 소식을 들 수 있다. 2006년에 브로드웨이에서 건너 온 이 오즈 마녀들의 뮤지컬은 지금까지 런던에서만 약 5천5백만 파운드(1천1백억원)의 수입을 벌어들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올 여름시즌 동안만도 주당 약 6십만 파운드(12억원)의 티켓 세일 파워를 발휘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약 2,200석의 대형극장을 매일 채울 수 있는 공연의 힘은 아마도 경제 조건에 덜 민감한 청소년 관객들에게 타깃을 맞춘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위키드 공연 관계자는 공연이 현재 경제 여파에 크게 영향 받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관객들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잠시 도피하고 싶은 욕구와 여가를 즐기려는 목적이 합쳐져서 올 여름 호황을 맞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니하이(Kneehigh) 프로덕션의 연극 <브리프 인카운터, Brief Encounter>도 올해 웨스트엔드의 새로운 바람이었다. 시네마 온 더 헤이마켓(the Cinema on the Haymarket)에서 9개월 간의 공연을 마치고 내년 초 영국 투어를 시작하는 이 작품은, 원작인 영화와 무대를 적절히 조화시키며 평론가들을 비롯한 관객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특히 이 작품은 올 2월 막을 올릴 당시만 해도 12주만 공연할 계획이었으나 시즌을 연장한 끝에, 상대적으로 연극에 불리한 웨스트엔드 여름시즌도 가뿐히 넘기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었다.

이 밖에도 <오페라의 유령>,<레미제라블>,<맘마미아>와 같이 장기공연 중인 작품들은 크게 흔들림 없이 매일 공연장을 관객들로 채우고 있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50주년 공연, West Side Story>과 <하이 스쿨 뮤지컬, High School Musical>도 두터운 팬층을 배경으로 올 여름 흥행에 크게 성공한 뮤지컬로 기록되고 있다.

투덜이는 그만, 기회로 만들어야

이런 상황 속에서 내셔널 시어터(National Theatre)의 공격적인 일요일 오후 공연 확대 소식도 주목할 만 하다. 일반적으로 웨스트엔드에서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공연하고 일요일에는 극장 문을 열지 않는 것이 관례. 현재까지 <스톰프>와 <라이온 킹> 정도가 일요일 공연을 시행했으며, 앞서 말한 돈마 시리즈가 일요일 공연을 시작한 정도였다. 내셔널 시어터의 예술감독인 니콜라스 하이트너(Nicholas Hytner)는 이번 일요일 공연 정책이 웨스트엔드의 다른 극장들에 도미노 현상처럼 파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전문가들도 극장이 런던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공연장 뿐 아니라 문화 공간으로서 일요일에 개방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현재 공연계 악조건 속에서 조금 더 관객들에게 다가가려는 극장 측의 적극적인 모습이 과연 어떤 영향을 불러 일으킬 것인지 궁금한 대목인 것이다.

결국 경제 상황 등 불안정한 외부 요인들이 웨스트엔드에 위기감을 불러온 것은 사실이지만 더욱 긴장하는 제작자들로 인해 공연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공연이 얼마나 관객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다가가는지 다시 한번 짚어보기 전에 공연 흥행을 어렵게 한다며 현재의 여러 여건들을 하소연 하는 제작자들은, 어쩌면 치열한 경쟁을 필요로 하는 이 시점에서 못난 투덜이 쯤으로 전락 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