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의 일차원적인 오감만 자극하려는 너무나도 뻔한 상업뮤지컬에 길들여지다 보면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뭔가 신선한 것에 대한 욕구를 자연스레 가지게 된다. 이렇게 공연 관람의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뮤지컬만 편식할 것이 아니라 오페라나 발레, 연극, 또는 현대적인 신체극을 찾아서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위 주류의 문화가 되어버린 대형 뮤지컬 대신 <포비든 브로드웨이(Forbidden Broadway)>와 같은 키치(Kitsch)적인 느낌의 소극장 뮤지컬을 보면서 새로운 웃음과 재미를 경험하는 것도 기존의 뮤지컬 방식에 지친 팬들에게는 식사 후의 디저트처럼 또 하나의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재치있는 뮤지컬 코미디 레뷔
제라드 알레산드리니(Gerard Alessandrini)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이 공연의 특징은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를 대표하는 유명 뮤지컬들과,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배우, 작사작곡가, 프로듀서들을 조금은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유쾌하게 풍자하는 모습에 있다. 대부분의 기존 뮤지컬 곡들에 알레산드리니의 재치있는 개사가 첨가된 뮤지컬 코미디 레뷔(Musical Comedy Revue) 형식의 이 공연은 1982년 초연되어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서만 무려 27년간 공연되었을 정도로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10년 만에 런던에 돌아온 이번 <포비든 브로드웨이>의 메니에 쵸콜릿 팩토리 공연은 현재 웨스트엔드의 대표적인 뮤지컬들과 함께 로이드 웨버, 엘튼 존, 트레버 넌, 카메론 매킨토시, 일레인 페이지 등의 유명 인사들 또한 패러디의 희생양이 되어 관객들에게 통쾌한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공연의 재미는 신랄한 풍자
공연은 서두에서 ‘약간(?) 무례해서 아마 소송 당할지도 모른다’는 애교섞인 엄살을 피우며 시작하지만, 실제 장면 장면을 보다 보면 신랄한 풍자의 칼날에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 어느 작품 가릴 것 없이 통렬하게 파헤쳐진 느낌이다.


아마도 가장 신랄하게 조롱당했던, 그래서 더욱 재미있었던 장면중의 하나는 <라이온 킹>으로 대표되는 디즈니의 지극히 상업적인 태도를 비꼰 장면이었을 것이다. 주술사 라피키로 어설프게 분장한 배우는 미키 마우스 인형이 올려진 냄비를 쓰고 ‘Circle of Life’를 개사한 ‘쥐들의 세계(Circle of Mice)’를 부르는데, 이는 미키 마우스로 대변되는 디즈니의 철저한 상업성과 엔터테인먼트 왕국의 모습을 재치있게 풍자한 내용이다. 더불어 두 어른 사자들은 ‘오늘 밤 통증을 느끼고 있나요(Can You Feel the Pain Tonight)’을 부르며 머리에 쓴 사자가면의 무게에 목이 눌려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버리는 순간이 있는데, 그건 바로 가사가 너무 음탕해서이다(There’s a moment when you’re screwed, because the lyrics are way too lewd)’ 라고 강변하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패러디에서는 여주인공이 가슴노출에 집착하는 모습과, 남자배우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바지 지퍼를 내리고 꺼내는 모습으로 희화화 한다. 또 인터넷으로 모든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 가십(Gossip)들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시카고>의 패러디 ‘올 댓 챗(All That Chat)’과, <저지 보이스>의 4명의 주인공들이 ‘남자처럼 걸으며 여자처럼 노래한다(Walk like a man, Sing like a girl)’고 프랭키 밸리 특유의 가성 창법을 모사한 장면도 절로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다.

뮤지컬 팬들에게 존경받는 스티븐 손드하임도 이 풍자의 그물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수위는 조금 낮아 보인다. 그의 주요 작품에 등장했던 여배우 버나뎃 피터스와 함께 등장한 손드하임은 쥬라기 공원보다 오래되어버린 자신의 작품들이 매년 리바이벌되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아는 만큼 즐기게 되는 공연
뮤지컬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도 작품 전반에 깔린 유쾌한 분위기와 배우들의 뛰어난 모사 연기 덕분에 공연을 즐기는데 어려움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이 공연의 묘미는 장면 장면이 무엇을 풍자하고 있는지를 원작을 바탕으로 찾아내는 묘미에 있다고 하겠다. 뮤지컬에 더 관심이 있을수록 더 많이 웃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올리버와 아트풀도저는‘Consider Yourself’를 개사한 ‘매우 비싼 가격(Considerably High Price)’을 부르며 관객들에게서 훔친 지갑과 보석으로 웨스트엔드 비싼 공연을 볼 수 있겠다며 자랑을 해대고, 카메론 매킨토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My Favorite Things’를 개사한 ‘나의 기념품들(My Souvenir Things)’을 부르며 기념품 판매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회전 무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설픈 <레미제라블>팀은 각자 공연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데, 장발장은 자신의 노래가 너무 높다고 불평하며 ‘Bring Him Home’을 개사한 ‘낮춰주오(Bring It Down)’을 부르고, 에포닌은 ‘내 휴대폰에는(On My Phone)’을 부르며 공연 대기시간이 길어 문자도 보낼 수 있다고 자랑한다. 모두에게 <레미제라블>은 너무 오래 출연해 공연이 지겨울 대로 지겨운 상태이지만, 결국에는 다같이 ‘One Day More’를 개사한 ‘10년 더(Ten Years More)’를 부르며 앞으로 공연이 10년 더 계속되기를 바라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거기에다가 올해 TV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해 <레미제라블>의 노래를 불러 유명해진 수잔 보일까지 마지막에 가세한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계속 진화하는 공연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기존 유명 작품들에 대한 해학적인 풍자와 더불어 최근 웨스트엔드 공연 이슈들을 건드리는 발 빠른 모습으로 런던 관객들과의 공감대를 더욱 형성했다. 이렇게 꾸준히 공연을 업데이트하는 모습이(전에도 이 작품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갱신되었다) 작품이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신선도를 유지하는 비결인 듯 보였다. 

현재 공연중인 <헤어 스프레이><프리실라, 사막의 여왕>을 통해 요새 웨스트엔드의 동성애/여장남자 취향에 대해 언급한 장면이나,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자신을 물어뜯는 고양이 인형을 안고나 와 ‘메모리(Memory)’를 부르며 이제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에만 열중하는 모습을 풍자한 장면도 웨스트엔드 팬들에게 더욱 공감가는 내용일 것 같다.

또, 최근 공연을 마친 로열 알버트 홀의 <왕과 나>도 피해갈 수 없었는데, 불편하고 시야가 먼 좌석 때문에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공연장 특유의 문제점을 꼬집어내는 모습도 날카로왔고, 사보이 극장의 뮤지컬 <캐루셀(Carousel)>이 무대 디자인에 공을 들이지 않고 커다란 스크린 프로젝션을 남용했던 모습을 코믹하게 OHP 필름으로 묘사한 장면도 웨스트엔드 관객이 아니라면 약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일 것 같았다.


유쾌한 일탈이 주는 문화적 자극
네 명의 실력있는 배우들과 한명의 피아니스트가 간소화된 소극장 무대에서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이렇게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기존 대형 상업 뮤지컬의 방식에 길들여진 관객들을 우리 밖으로 잠시 탈출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이 작품의 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포비든 브로드웨이>는 분명 기존의 대형 뮤지컬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의 불편한 진실을 들춰보는 재미를 제공한다. 이 공연이 제공하는 이러한 건전한 조소와 풍자는 관객들에게 재미와 더불어 뮤지컬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번 공연에서 다뤄졌던 여러 풍자의 대상들이 어떤 의미에선 무고한(?) 희생양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주류의 문화에서 파생된 키치 문화는 결과적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는 사실에서 이번 공연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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