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뉴스

[리뷰 Flashback.15] 동서고금의 살뜰한 조화, 유니버설발레단 ‘심청’

작성일2013.05.15 조회수3538
RSS 구독
글자크기 본문 글자 크기 확대 본문 글자 크기 축소 이전글 다음글 목록



식인귀처럼 달려드는 물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바람, 누워 내리는 바늘 같은 빗살들. 신이 내린 물고문에 휩쓸린 배 한 척의 뱃머리 위로 앳된 소녀 한 명이 오른다. 소녀의 얼굴은 공포로 빼곡하다. 그 뒤편으로 사나운 눈을 한 선원들이 죽으라 발을 구르고, 바다는 제게 바쳐진 제물을 삼키려 혀를 뱃머리 위까지 날름거린다. 소녀는 발끝을 위협하는 서슬한 바다의 한가운데에서 눈먼 아비의 얼굴을 본다.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개안을 빈 소녀는 단숨에 물살로 내달리고, 가녀린 몸이 뱃머리에서 사라진 순간 객석의 숨이 멎는다.


유니버설발레단 ‘심청’은 익히 알려진 ‘심청전’이 원작이다. 1986년 초연 이후, 1987년 첫 해외 무대에 올랐다. 이후 꾸준히 미국, 프랑스, 일본 등 12개국에서 200여 회의 공연을 펼치며 박수 받은 작품이다.


토슈즈로 그려낸 ‘효(孝)’…세계인의 감성 아우르는 조화로움


유니버설발레단 ‘심청’은 고전과 현대, 서양과 동양의 감성이 적절한 밀도와 온도로 빚어낸 작품이다. 한국 고유의 소재를 다루면서도 움직임은 철저하게 클래식 발레에 기반을 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외국인 안무가와 작곡가가 참여해 ‘글로벌’한 감성을 이끌어낸다. ‘심청’의 초연안무가 ‘에드리언 댈라스’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제1대 예술감독이다. 그녀는 1막에서 서민들의 춤에 담긴 ‘흥’을 가볍고 경쾌한 발놀림의 발레로 녹여냈고, 궁중연희가 펼쳐지는 3막에서는 한삼(손목에 착용해 길게 늘어뜨리는 소매)을 이용해 한국적 색채를 놓치지 않았다. 반면, 3막의 ‘문라이트 파드되’와 2막의 디베르티스망(춤의 향연) 장면에서는 ‘백조의 호수’, ‘지젤’ 등 고전 발레에서 만날 수 있는 클래식한 아름다움도 마음껏 드러냈다. 작곡가 ‘케빈 바버 픽카드’의 음악도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선율로 세계를 아우르는 감성을 자극했다. 서양인이 바라보는 한국적 정서에 기댄 이 작품은 국내 관객뿐 아니라 해외 관객의 입맛을 채우기에도 손색없었다.


외국인에게 ‘효’ 사상은 낯선 정서일 수 있다. 하지만 발레 ‘심청’은 마임이나 동작을 통해 내용에 구체성을 더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기획팀 관계자는 “부모에게 헌신하는 모습은 모두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마음인 것 같다. 공연을 보신 외국 분들 중에는 우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고전과 현대 기술의 조화는 작품에 생기를 더한다. 1막 폭풍우 치는 인당수에서 흔들리는 배의 모습은 실제를 방불케 할 만큼 스펙터클하다. 폭풍우에 내던져진 배 위로 돛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곳곳에서 귀를 찢는 천둥 번개 우는 소리가 쾅쾅 내려친다. 실제로 무대를 휘감고 돌아 객석까지 뻗치는 바람은 관객을 폭풍우의 긴장 속으로 함께 몰아간다. 2막의 도입부는 인당수에 빠진 심청을 수중 영상으로 담아낸다. 꼬박 14시간에 걸쳐 촬영된 영상은 물속에서 유영하는 발레리나의 섬세한 몸짓을 몽환적으로 포착한다.


한국 고유의 정서인 ‘효’ 사상을 ‘글로벌’한 감성으로 녹여낸 것도 인상적이다. 유니버설발레단 ‘심청’은 원작에 등장하는 뺑덕어멈의 존재를 삭제했다. 부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 더욱 초점을 맞춰 깔끔하고 몰입도 높은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특히, 처음 보는 이도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 구조는 온세대가 어울려 볼 수 있는 ‘가족공연’으로서도 충분한 매력을 갖췄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명장면들…‘심청’의 섬세한 감정연기 돋보여


유니버설발레단 ‘심청’은 눈에 띄는 명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돼있다. 1막 선원들의 군무는 남성 군무의 에너지로 넘친다. 남성 무용수들은 배 위에서 재빠르고 힘찬 동작으로 허공과 바닥을 가른다. 특히, 이후 이어지는 ‘심청’의 낙하 장면은 선원들의 군무와 박진감 넘치는 무대 연출,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심청’의 인간적인 고뇌가 함께 그려져 관객을 감정의 끝으로 몰아넣는다. 2막 용궁의 디베르티스망(춤의 향연) 장면도 눈이 즐겁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상상력으로 녹여낸 무대와 무용수들의 다채로운 기교가 교차하며 풍성한 볼거리를 만든다. 하지만 시선을 빼앗는 화려한 무대와 의상은 춤 자체에 집중하기 어려워 아쉬움이 남았다.

 


3막은 사랑을 맹세하는 ‘왕’과 ‘심청’의 ‘문라이트 파드되’가 관객의 심장을 조인다. 달콤한 음악에 맞춰 발을 구르는 두 무용수는 순간의 적막조차도 춤으로 보게 할 만큼 우아하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황혜민과 엄재용은 10년 이상 쌓아온 파트너십을 자랑이라도 하듯 완벽한 호흡을 보여줬다.


명장면을 안정적으로 그려낸 무용수들은 제 몫을 단단히 했다. 이번 공연에서 ‘심청’ 역으로 분한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은 성숙한 연기력과 우아하고 정확한 테크닉을 구사했다. 사랑스러운 소녀부터 아버지 걱정에 눈물 마를 날 없는 딸까지 절제된 연기력으로 그려내며 관객의 눈가를 젖게 했다.


‘용왕’ 역을 맡은 이승현은 리듬감과 생기 넘치는 춤을 보여줬다. ‘심청’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선장’ 역의 이동탁은 캐릭터 솔리스트로서의 면모를 견고히 했다. 그는 185cm의 큰 키와 긴 팔다리를 이용해 시원스런 동작으로 선장의 카리스마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유니버설발레단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RSS 구독
글자크기 본문 글자 크기 확대 본문 글자 크기 축소 이전글 다음글 목록

댓글쓰기

입력
플레이DB의 모든 공연DB는 다음, 네이트 등 포털사이트 공연정보로 연동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