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김매자(69) 씨가 1977년 전통춤의 상징이던 버선과 치마저고리를 내던진 채 무대에 오르자 무용계가 발칵 뒤집혔다.

무용계는 이를 두고 '미친 춤'이라고 평하기도 했고 '자기가 무슨 이사도라 덩컨인 줄 안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 열린 무용제에서 너도나도 그 '미친 춤'을 따라 하고 있었다.

김씨는 한국 창작춤의 새로운 원형을 제시한 춤꾼으로 평가받는다. 1976년 '창무회(창작무용연구회)'를 설립한 이후 한국적 전통에 근거하면서도 '당대성'을 갖는 춤을 제시해왔다. 전통춤에 근대적 요소를 버무린 1920년대의 신무용에서 탈피해 "이 시대의 한국춤"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맨발 춤은 현대무용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 생활 습관을 담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고운 빛깔의 한복에 버선까지 신고 안방에 앉아 있던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맨발로 보리밭을 밟다가 애가 울면 젖가슴을 내놓고 젖을 물리던 게 우리네가 살았던 모습이었잖아요. 우리 민중의 모습과 정신이 담긴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당시는 거울 보며 표정연기 연습을 하던 기생춤이 전통춤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김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부채춤, 장구춤 등 1920년대의 신무용을 배워봤지만 우리네의 모습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늘 부족함을 느꼈다.

전통춤과 신무용 뿐 아니라 현대춤과 발레, 궁중무와 무속춤, 불교의식춤 등 모든 형태의 춤을 찾아다녔고 이를 토대로 한국 창작춤이라는 영역을 개척해나갔다.

한국 땅에서는 그저 이슈에 가까웠던 그의 춤에 대해 해외에서 먼저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한국 무용수는 '투명 인간' 취급을 받던 1983년 뉴욕대 박사과정 시절, 처절한 설움을 딛고 뉴욕 리버사이드 댄스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이제야 내 춤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는 마음에 분장을 다시 해야 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유력 언론의 호평이 이어졌다. 1984년 5월호 '댄스 매거진'에 동양인 최초로 표지에 실렸다. 유럽 무대 진출까지 이어졌다.

무엇이 미국과 유럽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발레나 현대 무용과는 다른 제 나름의 움직임과 몸짓이었지만 예술적인, 감정적인 공감을 이뤄냈던 것 같아요. 만일 제가 전통 그대로를 췄다면 '과거 한국의 문화다'라는 존경심만 얻었겠죠. 하지만 시대를 반영한, 현실을 공유할 수 있는 춤이었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 공감을 이끌어 냈다고 생각해요."그렇게 춤에 빠져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이를 낳고 쉰두 달을 제외하고는 하루라도 춤을 쉬거나 싫증 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60년을 압축해 공연 '봄날은 간다'를 연다.

김씨는 "내 인생이 모두 담긴 공연"이라며 "한창 활동하며 기상하던 시절, 통곡하고 싶었던 처절한 순간, 함께했던 제자들의 모습 등을 모두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적인 정가풍으로 편곡한 가요 '봄날은 간다'와 건축가 인의식 씨가 작품의 화두인 '밝음'을 빛으로 형상화한 한 설치물 등도 만나볼 수 있다.

"공연 제목만 보고 '왜 슬픈 걸 하느냐'고 묻곤 하는데, 봄날이 간 것은 슬픈 일이 아니에요. 봄날만 갔을 뿐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있잖아요. 계속 '밝음'을 향해 작품 활동을 해 나갈 겁니다."▲'봄날은 간다' = 14일 오후 8시·15일 오후 3·6시·16일 오후 4시,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만-5만원, ☎02-337-5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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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정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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