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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미나] 정착할 수 없어 서글픈, 길 위의 사람들

작성일2007.03.21 조회수9204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안소니 퀸, 쥴리아나 멘시니 주연의 영화 [길]. 이 작품을 생각하면 몇 가지가 스쳐간다. 구슬픈 트렘펫 소리와 투명한 눈동자를 지닌 젤소미나, 그리고 구불구불 제 갈길 가는 흑백의 길 위에 펼쳐지는 서글픈 삶과 죽음, 사랑 말이다.
야수 같은 참파노와 작고 여린 젤소미나, 그리고 젤소미나에게 삶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광대 아또. 그들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태어났다.

뮤지컬 [젤소미나]는 영화 길에서처럼 어디에서도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서글픈 인생에 대해 말한다. 배경은 젤소미나와 참파노가 서 있는 길과 그들이 잠시 머무는 서커스단 천막.

차력사 참파노는 젤소미나의 어머니에게 거액을 주고 산 젤소미나를 낮에는 광대로 밤에는 정부로 삼으면서 예사로 다른 여자에게 손을 댄다. 그러다 돈벌이가 시원치 않자 참파노가 사고를 치고 떠나온 서커스단에 머문다. 이곳에는 다르지만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단원들이 있다. 현란한 마술쇼와 불쇼가 펼쳐지는 화려한 무대가 그들의 생계터이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누구보다 삶이 무겁고 외로운 이들이다. 이곳에서 젤소미나는 광대 아또를 만난다. 아또는 젤소미나에게 인생의 소중함을 알려주지만, 질투에 눈이 먼 참파노는 그를 죽이고 만다.

젤소미나와 참파노, 그리고 아또의 얽히고 섥힌 관계를 보면,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길은 가지처럼 뻗어있지만 그들이 만나고 비극을 맞게 되는 과정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단 하나의 길같이만 느껴지니 말이다. 결국 젤소미나를 버리고 달아난 참파노는 절대 고독과 후회로 몸서리친다.

이 작품은 원작 영화에서 참파노와 젤소미나가 서커스에 들어간 부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들 사이의 에피소드가 부각되고, 서로간의 관계에 대해 디테일하게 말해준다. 영화에서처럼 떠도는 장면은 많지 않지만, 그들의 고독감은 충분히 느껴진다. 다만 서커스단에 들어간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다 보니, 극 중간이 느려지는 감이 없지 않다. 젤소미나역에는 추정화가 맡았다. 영화처럼 자그마한 체구로 약간은 모자라지만 순수한 젤소미나를 서글프게 연기해낸다.

젤소미나처럼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가슴 한 켠을 아련하게 만드는 캐릭터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갖는 뮤지컬 [젤소미나]로 아릿한 감정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