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참 흔하디 흔한 소재에 ‘사랑’이라는 것을 하면 행복하고, 또 외롭고, 아프고를 반복한다. 100년이 지나도 1,000년의 곱하기 10,000년이 지나더라도 변하지 않고 끊이지 않는 소재라면 그건 ‘사랑’일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중요하기도 하고 흔하디 흔한 것이기 때문에 관심조차 없어져 버린 그 것. 너무 보편화가 되었나 싶기도 하고 관심조차 잃어버리게 된 그 것을 시작한다. 우리 가슴 저 밑바닥에 잔잔히 아니면 그 바닥부터 끓고 있었던 ‘사랑’ 말이다.

<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 >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던지는 무수한 질문들.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외로움에 치를 떠는 많은 사람들.

이야기는 여관방에서 시작된다. 여관방의 형식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무대에서의 여관방은 정말 여관방이다. 양쪽 문이 있고 침대는 중앙에. 다섯 개의 에피소드가 그 방안에서 추하지 않게 그려지고 있었다.

첫 번째, 혼자서-(alone)
혼자서 외롭게 두 남녀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온다. 그들이 혼자서 여관에 들어온 까닭은 베트남 또는 중국여자에게 장가 들려고 상경한 시골남자와 자살하려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가장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인 사랑의 현실을 남자가 연기하고 있다면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사랑에 대한 배신을 여자가 연기하고 있다. 외롭다. ‘저렇게까지 해야만 하나’ 하는 그런 생각.

두 번째,
싸우다 정들다-(노총각 & 노처녀)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희준과 소연. 그들이 여관에 왔다. 그러나 뒤따라온다던 친구들은 오지 않고 둘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뻘쭘함 속에서도 그들은 또 싸운다.
희준 그리구 당신 노래방에서 왜 내 노래 중간에 팍팍 꺼버리는데?
소연 안 끄게 생겼니? 노래를 부르려면 제대로 불러! 되지도 않는 신곡 부른다고 괜히 분위기 망치지 말고. 얘들 얼굴 표정 봤냐? 좀 박자 좀 맞추고 불러, 박자를! 그리고 니가 무슨 에릭이냐? 수염에 썬그라스에 아주 온 예식장을 활개치고 다녀요.
희준 아이구 시집도 못 간 주재에 신혼첫날밤이 어쩌구 저쩌구 어쩌구 저쩌구… 설쳐댄 게 누군데?
소연 난 못 간게 아니라 안 간 거거든! 그리구 김희준, 너 요즘 같은 때 누가 피로연 한다구.. 뭐? 병수 빤스에 문어를 집어넣고 신부보고 꺼내라고? 그게 사람이야? 어따 문어를 집어 넣어!

하여튼 이런 식이다. 말들이 빠르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보던 모습과 다툼이었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아하.. 그랬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이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옛생각에 그때 그럴걸. 그때는 그랬지.. 하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그런 연극이었다.

세 번째,
소꿉놀이-(맹인과 그를 사랑한 여자)

민영의 스물네 살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만 기억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영석.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볼 수 없는 시각장애우이다. 영석과 민영은 여관방에서 소꿉놀이를 한다. 이루어 지기 힘든 가슴 아픈 사랑을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를 확인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하는 영석과 민영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짠하다.

네 번째,
거시기한 사랑-(바다사나이)

사고치고 서울로 도망 온 목포 뱃놈과 그 뱃놈의 든든하고 짱짱한 빽인 목포 아줌마의 질펀한 부부지애. 속창아리 없는 남편이어도, 생선 비린내 나는 마누라여도 그들은 서로를 겁~나게 거시기 한다. 전라도 말투가 너무도 걸쭉한 거시기한 사랑은 아자씨와 아줌씨의 끈끈한 사랑을선 보인다.

다섯 번째,
사랑은 이벤트-(다시 만난 사랑)

인생을 마감할 황혼기에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소중한 그들의 사랑. 할머니의 허락을 얻기 위한 할아버지의 작은 이벤트들. 풋풋한 할아버지의 사랑방식. 싫어하면서도 싫지만은 않은 할머니의 사랑. 몸짓 하나하나에서 그 옛날 내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이보다 더 풋풋할 수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이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다 다른 만큼 사랑에도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그 사랑의 색깔만큼 또 무게만큼 서로 나눠지고 가는 것이 사랑인 듯 하다. 오랜만에 가슴 따뜻하고 사랑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랑은 보편화 되어 있고, 평범한 진리가 정답이라는 진실을 알려 주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된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젠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 번 해 주세요.
(한영애의 ‘조율’중에서)

우리들의 사랑에서도 ‘조율’ 한 번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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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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