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어워즈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브로드웨이는 신작 뮤지컬만큼이나 리바이벌 뮤지컬 부문의 경쟁도 치열하다. 그 중 가장 주목을 끄는 후보작 중 하나가 바로 링컨센터 씨어터(Lincoln Center Theatre)에 의해 새롭게 리바이벌된 <남태평양>(South Pacific)이다.

뮤지컬 <남태평양>은 <왕과 나>(The King and I),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등 다수의 히트작품을 만들어낸 명콤비 리차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작품으로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 5년여간 많은 화제 속에 흥행을 이어간 바 있다. 1950년 퓰리쳐상 드라마부분을 비롯, 10개의 토니상을 거머쥐었으며, 1958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전세계적으로 크게 사랑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링컨센터 씨어터의 리바이벌 작품은 60여년만에 새롭게 제작된 프러덕션으로 지난 3월 프리뷰를 시작해 4월 오픈한 이후 연일 매진행진 중이다. 2008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 5개 부분을 수상하였고, 오는 6월 15일에 개최될 예정인 토니 어워즈의 베스트 리바이벌 뮤지컬 부문과 감독상, 남우 주연상, 여우 주연상 부문을 포함해 총 11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 <인 더 하이츠>에 이어 두 번째로 최다부분 후보로 지명되기도 하였다.

아름답고 소박한 절반의 해피엔딩

이 작품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의 외진 섬에 주둔 중인 미해군과 섬 주민들간의 관계를 배경으로 네 남녀의 사랑과 갈등을 이야기한다. 미 중부의 아칸소주 출신인 해군 간호사 넬리는 중년의 프랑스계 농장 주인인 에밀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가 사별한 폴리네시아인 아내와의 사이에 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인종에 대한 자신의 편견과 에밀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고민한다. 한편, 군사기밀을 입수하기 위한 특명을 받고 이 섬으로 파견되어 온 미 해병대 부관 조 케이블은 베트남계 상인인 블러드 메리의 딸 리앗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 역시 자신과 다른 인종인 그녀와 결혼할 수는 없다고 결정하고, 자신의 선택에 괴로워한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넬리로 인해 상심한 에밀은 조를 도와 일본 군사 경계선을 넘는 위험한 미션을 시도하기로 하고 두 사람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만, 이 과정에서 조는 목숨을 잃고 만다. 미해군들이 떠난 섬에 남은 홀로 넬리는 에밀의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에밀을 맞이하면서 절반의 해피엔딩으로 막이 내린다.



넬리를 연기한 켈리 오하라(Kelli O'Hara)는 <파자마 게임>과 <라이트 인 더 피아자>를 통해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으며, <남태평양>을 통해 극을 이끌어가는 주역으로서 보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또한 에밀 역의 파울로 스조트(Paulo Szot)는 오페라 가수로 더 알려져 있으며 브로드웨이 데뷔작품인 이 작품을 통해 무게감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토니어워즈 최우수 남우주연상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빛나는 조역들의 활약도 눈에 띄는데, <드라우지 샤퍼론>(The Drowsy Chaperone)의 아돌포 역으로 2006년 토니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대니 버스틴(Danny Burstein)은 해군 병사 루터 빌즈 역으로 다시 한번 남우조연상에 도전한다. 또한 블러디 메리 역으로 처음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하와이 출신의 로레타 에블리즈 세이어(Loretta Ables Sayre) 역시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영원한 브로드웨이 클래식 로저스 & 해머스타인

뮤지컬 <남태평양>은 인종차별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해군과 간호사, 원주민들 사이의 유쾌하면서도 소박한 감성 안에서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초연 당시 베스트 스코어부문의 토니상을 거머쥐었던 로저스 & 해머스타인의 곡들은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까지도 아름다운 선율로 시종일관 관객들을 매혹시킨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아직은 덜 자유로웠던 인종간의 갈등과 그로 인해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작품이 결코 무겁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뮤지컬 코메디의 흥겨운 리듬과 빠르고 강렬한 비트일색인 최근 작품들에 식상한 탓인지 오랜만에 듣는 로저스 & 해머스타인의 클래식은 오히려 신선한 느낌마저 든다. 뮤지컬 넘버 중 “어느 황홀한 저녁(Some Enchanted Evening)”이나 “발리 하이(Bali Hai)”, “즐거운 이야기(Happy Talk)” 등은 합창곡이나 삽입곡으로도 많이 사용되면서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곡들이다. 특히 이번 리바이벌 작품의 “어느 황홀한 저녁”은 오페라 가수인 파울로 스조트의 깊이 있는 음색과 어우러져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화려한 춤과 기교로 눈과 귀가 쉴새 없이 즐거운 볼거리를 선사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진정한 뮤지컬 클래식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감동에 빠져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링컨 센터 씨어터의 <남태평양>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