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12월 13일 드디어 뮤지컬 <어 리틀 나잇 뮤직 (A Little Night Music)>이 그 수려한(?) 자태를 드러냈다. <어 리틀 나잇 뮤직>은 스웨덴의 거장 잉그마르 베르만(Ingmar Bergman) 감독의 1955년 영화 <한 여름 밤의 미소 (Smile of a Summer Night)>를 작사가 겸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 (Stephen Sondheim)과 대본작가 휴 휠러(Hugh Wheeler)가 뮤지컬로 만든 세 커플의 에로틱한 사랑의 왈츠다.

1973년 2월 25일 뉴욕 브로드웨이 슈베르트 극장(Shubert Theater)에서 오픈, 1974년 8월 3일까지 모두 601회 공연했던 이 작품은 세계적인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Harold Prince)에 의해 무대화됐고 토니어워즈 베스트 뮤지컬상을 수상했다. 이후 수 많은 프로덕션이 제작했던 이 뮤지컬이 특히 이번 공연을 앞두고 화제가 된 이유는 두 개의 큰 별을 향한 사람들의 동경 때문이었다.

토니어워즈 5회 수상에 빛나는 연기력과 가창력의 소유자,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파이집 여주인 안젤라 랜스베리 (Angela Lansbury)와 할리우드 미녀스타 캐서린 제타존스 (Catherine Zeta-Jones)가 그 주인공들. 오픈과 동시에 이베이에서 티켓가격이 300달러까지 치솟고, 이 불경기에 할인티켓은 커녕 표를 구하기조차 힘들다고 하니 이 작품의 흥행성에 대해선 더 말해 무엇하랴?


세 커플의 에로틱한 사랑의 왈츠
운좋게 티켓을 구해 <어 리틀 나잇 뮤직>이 공연되고 있는 워터 컬 극장(Walter Kerr Theater, 브로드웨이 48가에 위치)에 들어서자 작품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하얀 의자 하나와 불투명한 거울로 세워진 무대세트가 기대에 들뜬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극장에 불이 꺼지고, 쇼는 첼로 연주의 시작과 함께 커플들의 왈츠로 시작됐다.

여기는 20세기 초 스웨덴의 어느 여름 날. 중년의 성공한 변호사 프레드릭은 얼마 전 18세의 어린신부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다. ‘도둑놈, 달콤한 신혼의 꿈에 빠져있겠구나!’라고 다들 짐작하지만, 실상은 달랐으니, 어린 신부 앤은 어리다 못해 첫날 밤이 지난 지 벌써 11개월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Don’t touch me!’를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타게 외로운 밤들을 지새던 프레드릭은 옛 연인 데저래와 해후하게 된다. 데저래는 유명한 여배우로, 화려한 삶에 젖어 지방의 친정엄마한테 딸 프레드리카를 맡겨놓고 한 번 찾아보지도 않는 매정한 엄마다. 데저래는 프레드릭의 애타는 신혼생활에 연민을 느끼는 동시에 새록새록 떠오르는 지난 날을 추억하며 다시 그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한편 데저래와 프레드릭의 관계를 질투한 데저래의 현재 연인 백작 말콤은 그의 아내를 시켜 프레드릭의 어린 아내 앤에게 그들의 부정을 알리도록 한다. 여기에 프레드릭의 아들인 핸릭이 자기보다 한 살 어린 새 엄마 앤을 깊이 짝사랑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캐서린 제타존스와 안젤라 랜스베리


여배우 데저래로 분한 무대 위의 캐서린 제타존스는 눈부셨다. 특히 2막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당시 최고의 여배우였던 데저래였다. 이 작품의 최고 히트곡인 그녀의 솔로곡 ‘Send In the Clowns’를 부르며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 정도였다. 뮤지컬 <42번가>가 그녀 연기 인생의 시작이었다는 말이 실감날 만큼 그녀의 춤 솜씨 역시 훌륭했다.

하지만 뭐랄까, 아쉬웠다. 그녀의 목소리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서정적이고 정교한 음악을 표현하기에는 개성은 넘치지만 다소 굵고 거친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녀가 해 왔던 연기들과 달랐던 탓인지 휴 휠러의 절제된 유머를 완벽히 소화해내지는 못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쇼가 끝나고 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녀는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한 연기는 그 자체로 훌륭했으며 그리고 그녀는 작품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데저래의 엄마 역을 맡은 안젤라 랜스베리의 연기는 이번 프로덕션의 진정한 스타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삶이 묻어나면서도 청아했고, 그녀의 절제된 연기는 우아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 그녀는 손녀 프레드리카에게 말한다. “(인생에서) 여름밤은 세 번 찾아오지. 젊은이들에게, 바보들에게 그리고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 그녀의 존재가 이 작품의 여름밤이었다.

연출가 트레버 넌 스타일의 프로덕션
이번 뉴욕 프로덕션은 처음 기대와는 달리, 아니 예전에 봤던 다른 <어 리틀 나잇 뮤직>과는 달리, 다소 코믹했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음악과 휴 휠러의 정교한 이야기 구성의 재미를 즐길 작정으로 갔는데, 연출가 트레버 넌 (Trevor Nunn)은 두 작가의 창작의도를 약간 다르게 해석한 듯하다. 그런 탓인지 전체적으로 모든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다소 과장된 느낌이 들어 불편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즐거운 프로덕션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것이 주는 즐거움은 항상 매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브로드웨이닷컴(www.broadw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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