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전부터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서울노트...
이번에 못 보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예매를 했다...
다행이 좋은 자리에서 막공을 관람했다.
배우들의 딕션은 그야말로 일상의 말 자체였고..뭇사람들이 흔히 연극 하면 떠올리는 그런 연극적 딕션을 구사 하는 배우는 단 한명도 없었다..
연출 또한 신선했다..연극의 틀을 깨는 다양한 시도가 눈에 띄었다..
지금껏 봤던 연극들 중 손가락에 꼽을만한 작품임은 말할 것도 없고..연극을 잘 접할 기회가 없는 친구와 함께 봤는데..그 친구의 매우 흡족해 하는 모습에 내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언제고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원제는 도쿄노트.
배경을 서울로 바꿔 번안한 이 작품은 '조용한 연극'답게 심각한 갈등 없이 조용히 흘러간다.
장점이기도 하면서 단점이기도 한 이 점을 히라타 오리자는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려 갈등이 주는 긴박함으로 인한 흥미를 대신해 일상이 주는 편안함과 동시에 깊은 주제를 살린다.
하지만 이 번안 작품을 다른 히라타 오리자의 번안 작품 즉,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에 비교하면 어쩐지 조용하게 흘러간다는 단점이 조금은 더 부각된다고 느껴진다. 배우들의 연기는 둘째치고 주제가 과학하는 마음을 봤을 때와 다르게 알아듣기 힘들게 다가온다고 해야할까.

저에게 히라타 오리자와의 작품을 처음 만나게 해줬던 <서울노트>의 올해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과학하는 마음 3 - 발칸동물원 편>을 처음 봤을 땐 못 느꼈는데 이번에 <과학하는 마음 1- 진화하는 오후 편>을 보고 <과학하는 마음 3>까지 다시 만나고 나니... 제가 이 작가의 작품을 잘 이해하도록 토대를 만들어준 작품이 <서울노트>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동안 <서울노트>를 전에도 봤는데... 올해는 출연하는 분들이 많이 바뀐 것 같아서 달라진 <서울노트>는 어떨까 궁금해서 찾아가봤습니다.

어느 작품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위에 거론된 작품들은 특히 배우들의 조합에 따라서 상당히 달라진 느낌을 주는데... 이번에 만난 <서울노트>는 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일단~ 대사가 예전엔 우리말을 일본어투로 하는 느낌이 무척 강했는데 예전보다는 많이 자연스러워진 거 같습니다. 덕분에 이젠 진짜 <서울노트>에 근접한 듯한데 재밌는 건... 대사는 자연스러워진 반면 인물들 사이의 낯설음은 더 강하게 드러나더라고요. 예전 공연에서 익숙했던 배우들이 아니라서 저 혼자 어색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낯설음이 신선한 면도 있긴 했습니다. ^^*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여 중요한 보물들이 바다 건너 안전한 우리나라에 위탁되고 평화유지군으로 우리나라 군인들이 유럽으로 가는 상황 설정은 <과학하는 마음>시리즈에도 등장하는 내용이라서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를 먼저 접하신 분들은 어리둥절하셨을 거예요. 전 <서울노트>를 통해 익숙해진 상황 설정이라서... ^^;;; 그런 이유로 넘어온 미술작품을 위탁받아 관리 전시중인 한 미술관의 휴게실을 오고가는 여러 사람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죠.

등장인물들이 베르메르의 그림에 대해 논하고 그림에 그려진 사람들에 대해 이런 저런 추측을 하는 것처럼 저도 각각의 인물들이 말하지 못한 사연들을 상상하고 그들의 미래에 대해 상상하며 극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미술관에 와서 그림은 안 보고 휴게실에서만 죽치고 앉아서 흥미진진한 사람들 얘기에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지켜보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 된 기분으로 공연을 바라봤습니다. 공연 첫 날 갔더니 가끔씩 대화가 엉키기도 했지만... <과학하는 마음>에 끌리셨다면 <서울노트>도 만나보시길 추천할게요. ^^ *

2004년 12월에 올려졌던 S고원으로 부터보다 먼저 쓰여졌던 작품이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딱히 이것이 주제라고 드러내지도 않고 시작도 끝도 없이 그저 많은 날들중 하루의 한 부분을 어떤 장소에서 뚝 떼어놓은 듯한 평범하지만 편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다.
일명 <조용한 연극> 이라고 하는데 ...
<S고원에서>가 병원에서의 환자, 의사, 간호사, 방문객들의 스치고 만나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졌다면 이번 <서울노트>는 서울의 어느 작은 미술관에서의 만나고 스치는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올려진 다른 공연과 비교한다면 혜화동1번지에서 올려졌던 <과학하는 마음 - 발칸동물원 시리즈>의 진행형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특정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주인공과 조연들을 등장시키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아닌 그저 사람들이 등장해서 이곳 저곳에서 서로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의미없이 또는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등장하고 퇴장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극을 보러온 관객이 아닌 그들의 일상이 벌어지는 공간의 한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그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을뿐) 바라보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주변인물이 된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버스를 기다리며 조용히 있는 중에 주위에서 지나치고 머물며 주고받는 사람들의 대화가 귀가 들어오고 그들의 행동에 주목하게 되는 그런 경우 같은...

이번 무대가 미술관이어서 일까.
그들이 이야기하는 미술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꽤 솔깃하다.
그림 감상을 위해 윗층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뒤를 따라가고 싶은 충동도 일어난다.
베르베르의 37점의 작품... 그 외에도 무수히 걸려있을 여러 작품들.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설명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되어 좋았다.
몇일전 종합운동장에 설치된 <살아있는 미술관>에서 보았던 옵스큐라 작품과 설명이 연상되어 더 좋았던듯...
전체 내용으로 본다면 화가가 자신이 바라본... 또는 바라보고 싶었던 한 장면을 화폭에 옮겨놓은 것처럼 일상의 한 부분을 뚝 떼어내어 그 부분에서 드러난 일부만을 그대로 보여준 이번 작품의 무대가 미술관이라는 것이 너무나 잘 어울리지 않나 생각된다.

만나서 반갑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듯한 장면이 아닌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조금씩 불안하고 정상적이지 않다.
그림을 좋아하는 여자와 별 관심없는 남자의 따로 데이트, 전쟁에 참가중인 군인과 참가를 희망하는 여자친구, 이혼을 생각중인 올케를 대하는 시누이와 그 주위 남매들 이야기, 미술관 큐레이터들, 유산으로 상속받은 작품을 기증하려는 딸과 친구, 변호사 등등

내용은 평범하게 진행되지만 가상의 3차대전을 이야기하고 유럽의 전쟁, 멀리서 그 상황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 그들의 일상이 특별한 주제를 계속 드러낸다.
공연시작전부터 조용한 무대위에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배우들은 오래전부터 거기에 있었던듯 일상의 움직임을 보인다.
시간이 되면 하나둘 더 많은 이들이 등장하며 대화가 이어진다.
1시간 50분.
공연이 끝났음을 암시하는 객석의 조명이 밝아오고 문이 열린다.
앞서 이런 공연을 보았던 관객들은 약간은 어색한 기분으로 공연장을 나서고 익숙하지 않은 관객은 박수칠 기회를 놓쳐서인지 어수선한 대화로 멈칫한다.
관객들과의 인사를 미루었던 배우들이 통로에서 나가는 관객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돌아오며 극중 내용에 대해 차분하게 조용한 감상을 한번 더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형식의 작품.
여러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보여지는 무대형식에서 긴장하고 집중해야 하기에 이런 형식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내게는 꽤 매력있는 형식이다.
늘 이런 작품이 자주 올라온다면 좀 피곤하겠지만 ^^
옆자리 늦게 들어온 단체 관람객들의 공연중 대화, 신발벋고 발 올리기, 부스럭 거리는 소리들이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집중이 꽤 잘 된 하루였다.

연극을 보고 나오는데 갑자기 너무 추웠습니다.연극을 보는 동안 제 가슴이 따뜻하게 데워져서 그랬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