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대학로에서 만나보기 힘든 진지한 연극이었습니다. 배우들의 열연도 좋았고요.

단, 좌석 이상으로 표를 팔아서(또는 초대자를 남발해서) 유료 예매자임에도 불구하고 무지 불편하게 관람을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서는 공연 관계자가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고래라는 제목으로는 극의 내용을 쉽사리 짐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죠.

그렇게 만난 고래는....

요즘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생각하게 하면서도...
그런 차이를 넘어...
더 깊은 생각을 해보게 했습니다.

과거의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지금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는
어쩌면 실제로 우리의 바다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지.
크고 넓은 바다를 건너 우리가 만날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점점 작아져서 서로의 본질에 닿을 방법을 찾아야 할 거 같은데...
그게 참 쉽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열연이 공연을 돋보이게 하는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멋진 무대 보여주신 배우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1.

우리는 '욕망하는 기계'가 아니라 '욕망 때문에 번뇌하고 사유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제 안의 욕망이 꿈틀거리는대로 균열하고, 서로 충돌하게 됨을,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서로 상처를 입힐 수도 있음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목격한 공연이었습니다.

2.

또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제 죽음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죽음의 풍경'을 상상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극의 말미에서 부기관장은 수압에 눌려 질식해가는 인간과 달리
'고래는 상어로, 다랑어로, 멸치로, 작은 점으로, 결국은 바다로
자연스레 소실되어 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죽음 앞에서 제 '죽음의 풍경'이 수압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고래의 삶과
닮아가기를 꿈꿔보는 것, 그러한 욕망이 저는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인간은 저 낮은 진창에서도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존재이니까요.

'죽으면 내가 어떻게 될까?'
'이왕이면 내가 죽은 뒤에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고래>는 오늘 하루 저를 그런 생각에 골똘히 빠지게 한 공연이었습니다.

3.

공연이 결말로 치달아가면서 제가 지레 걱정했던 것은
'너무 상투적인 대사를 통해 분단 현실에 대한 발언을 시도하지는 않을까.'하는 점이었습니다.

공연에 몰입해 있었는데
그런 순간이 오면 김이 빠질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제 기우가 무색할만큼, 엔딩은 무척 감동적이었고
분단 현실에 대한 발언도 전혀 상투적이지 않았습니다.
무전장이 소중히 쥐고 있던 '속초의 모래'가
그렇게 힘이 셀줄은, 그렇게 상징적으로 기능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4.

극단 백수광부의 공연은 처음이었는데,
깊은 신뢰를 갖게 되었습니다.
좋은 공연 준비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피에스>

극중 저격조 요원들은 전혀 우둔하지 않은 인물들인데
멧돼지를 잡아다가 훔친 물건의 값을 치루고 왔다는 후일담은
지나치게 그들을 희화화하는 설정 같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놓칠 수 없는 공연이라 생각되어 봤는데,
역시나, 고래는 그렇게 생각할 거리를 툭 던져주고 있네요.

다른 것보다도..
"너, 어디로 가고 있니?"
라는 저에게 물음을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대답은 연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도 생각나질 않아,
이렇게 잠을 설치게 되는군요.

당장 앞에 죽음이 놓여있다면, 이념따위 생각나질 않습니다.
그저, 산에 가서 맑은 공기나 마시고 싶고,
에미나이와 한번 자보고 싶고.. 그런 거지요.

참, 무언가가 참으로 허무한 듯 하여도, 갈증이 풀리지 않는 것 같아도,
그들이 미친듯이 토해내는 그 현재가, 숨이 가쁜 그 현재가
놓을 수 없는 삶의 그 무언가 한 가닥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극중에서 느껴지는 아이러니도 상당히 감명깊었습니다.
암전때 들리는 라디오 방송에서 특히 그걸 많이 느꼈어요.
DJ는 농담이었는데도, 그 속에서 슬픔이 처절하게 묻어나더군요.

여튼
허무함과 열정 이 모든 것이 공존하는 극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보고 싶은 공연이네요 :)

북한 군인이 탄 커다란 잠수정이 작은 꽁치잡이 배의 그물에 걸려 옴싹달싹 못하고
국군에게 발각되어 궁지에 몰린다. 그들은 살고 싶지만 북쪽의 가족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실화에 기초한 이 연극은 이념에 관한 내용도 있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다룬 연극은 아니다.

한민족이면서도 아직도 적대관계인 우리들에 관한 얘기이다.
가볍게 시작한 공연이 나중엔 무언가 가슴을 무겁게 해주었다.

백수광부의 연극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