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공연으로 클래식에 새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두 가지 부끄러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남들 앞에서 지휘를 했을 때 당할 부끄러움이요, 나머지 하나는 제가 지휘를 하지 않았을 때 두고두고 제 자신이 후회하게 될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저는 전자를 택했을 뿐입니다……."


지휘자 길버트 카플란의 말이다. 그는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 사장이기도 하다.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 잡지 창간 후 성공을 거둔 카플란은 어렸을 때 접한 말러 교향곡 2번을 지휘하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하루 6시간씩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마흔이 멀지 않은 나이에.

대체 어떤 곡이기에 우연찮게 공연장에서 들은 단 한 번의 연주로 한 사람의 일생을, 열정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그의 지휘로 출반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은 뉴욕타임지 올해의 음반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명실공히 말러 교향곡 2번 전문가가 되었다.

무대에 올라 지휘해보겠다는 의지는커녕 악보라도 한번 보고자하는 욕구가 일게 하는 ‘광적인 만남’이 없는 나에겐 카플란의 도전은 참으로 눈부셨다. 가슴속에 오래오래 간직한 꿈을 표출하는 순간 더없이 아름다웠을 그.

8월 5일 북경 공연에 이어 7일 오후 8시에 열리는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인천 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1번을 듣는다. 다양한 문화 매체와 어울려 부분을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말러 교향곡 1번 전곡을 들어본 적 없는 건 확실하다. 프로그램을 오래전에 숙지해놓고 공연 전까지 고민했다. 어느 정도 학습한 다음에 공연장에서 제대로 들을 것인가, 아니면 카플란처럼 한 번의 울림을 기대할 것인가. 긴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수개월에 걸친 대공연장 리모델링을 끝내고 첫 공연이다. 모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실내에 아늑함이 밀려왔다.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단원의 입장에 이어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힘찬 발걸음을 들렸다. 사실 발걸음을 듣지 못했다. 점점 커져가는 박수소리에 묻히고 말았으니까.

첫 곡인 ‘모차르트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과 바순을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V 297b’연주 후 인터미션. 드디어 기다리던 말러와 보내는 50여 분의 시간.

비발디의 ‘사계’ 봄 1악장처럼 생동감이 느껴지지만 뭐랄까, 식물의 변화를 카메라로 잡는 집요함과 느림이 감지된다. 창세기를 표현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흥겹게 지나간 2악장 뒤로 숨이 멎곤 했다. 팀파니주자가 가만가만 리듬을 만들고 더블베이스가 이어 멜로디를 만들어 가는데, 특색 없던 베이스가 묵직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진지하면서도 오묘한 맛이 울려퍼지던 때를 기억하고파 지금 3악장만 되풀이 듣고 있다. 청중의 내면을 저음으로 차근차근 파고들어간다. 그 깊이는, 물론 나도 모른다. 4악장에선 갑자기 일제히 일어선 호른주자들이 인상적이었다. 무수한 잎들에 가려 존재를 모르다 잎들이 우수수 떨어질 무렵 빨갛게 자태를 드러내는 열매 같았다. 그 기품에 호른 선율이 더욱 힘찼다. 무대의 작은 이변에 시선을 빼앗기는 재미도 쏠쏠했다. 무대 뒤쪽 가장자리에 설치한 큼직한 징은 언제 울리나 기다리기도 했다.

무대가 비좁게 느껴질 만큼 많은 단원들을 한 마리의 거대한 새로 돌변하게 만드는 마에스트로는 날렵한 몸짓으로 비상을 인도하고 있었다. ‘거인’이 아니라 ‘거조(巨鳥)였나? 그렇게, 아쉽게 무대는 고요해졌고 반대로 객석은 시끄러워졌다. 객석 중앙에서부터 기립박수의 물결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역시 중앙 위치상 가장 잘 들리는 상석이구나,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나도 힘껏 박수를 쳤다. 이렇게 말러 교향곡 1번은 내 머릿속에 저장되겠군.

작년에 없던 앵콜곡이 흐르기 시작하였고 부산하게 앉는 청중의 입가에 뜻밖의 선물에 대한 흡족함이 베어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브람스의 헝가리무곡 1번이라 내 입은 흡족함을 넘어 찢어지기 시작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氏의 말러1번 거인의 연주는 웅장하고 장중한 느낌이 이 무더운 더위를 한방에 날려 버리는 시원한 연주 그자체 였습니다. 거기다가 보너스 헝거리안 무곡1번 앙코르까지 정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아시아인의 저력을 보여준 모차르트 오보에,클라리넷,호른과 바순을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는 아시아인의 화합과 치밀한 앙상블을 보여줘습니다. 앞으로도 아시안필의 무안한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