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을 처음 접했던 날 내 심장이 유난히 쿵쿵거리는 느낌이었다. 안숙선 단장 시절의 국립창극단 창극 <놀부전>이었다. 김영자 명창이 마당쇠를 맡았는데, 놀부전이야 이야기도 익숙하고, 판소리 버전으로 부분부분 들은 적도 꽤 있는데다, 극단 미추의 MBC 마당놀이를 TV로 수도 없이 봐 온 터라 창극이란 형식이 그렇게 낯설게 느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돌이켜보면 아마 반주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밀폐된 공간에서 우리 전통 악기들이 어울려 내는 소리를 직접 들었던 게 처음이어서 그랬지 싶다. 타악기의 장단과 현악기 관악기의 선율이 한데 어우러진 우리 음악이 내 심장을 쿵쿵 뛰게 했다.
같은 국립창극단의 <메디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오래 전 <놀부전>이 발랄하고 재기 넘치게 내 마음을 두드렸다면, <메디아>는 가슴을 후벼 파고 찢어놓았다는 표현이 적확할 듯하다. 창극의 바탕이 되는 판소리가 해학과 동시에 한을 기본정서로 갖고 있다지만 그렇게 절절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연을 보기 전 그리스 비극과 창극의 접합이라는 형식에 우선 호기심이 일었는데, 예술의 본질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할까. 그러고 나서야 형식이 눈에 들어왔다. 이질적인 두 장르가 거부감 없이 결합해 있었다.
천장과 벽이 모두 막힌데다 <명성황후>처럼 (심지어 그보다 훨씬 가파른) 경사진 무대가 특이했다. 대극장용 공연답지 않게 답답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좁은 길이 나 있는 양 옆 공간을 배우들이 드나들며 적절히 활용한 덕에 훨씬 입체적인 미장센을 연출했다.
내용이야 요즘 TV드라마의 대세로 떠오른 막장에 다름 아니다. 남자에 눈이 멀어 조국이고 가족이고 내팽개친 여자, 남자를 위해 시숙부까지 죽이지만 천 년 만 년 갈 줄 알았던 사랑에 배신당하고 끔찍한 복수를 선택하는 지극히 통속적인 내용. <메디아>는 이 희대의 악녀가 실은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그녀의 복수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죄를 짓는 것은 남자, 하지만 벌을 받는 것은 여자''''라는 가사가 코러스의 입을 빌려 100분 내내 공간에 떠돈다.
학수고대하던 박애리 버전의 <메디아>를 만났고 왜 그녀가 국립창극단의 간판 연기자를 넘어 전방위적인 인기를 누리는지 알게 되었다. 그토록 구슬프고 처절한 울음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 훌륭한 뮤지컬인지는 앙상블의 실력을 보면 안다던데 도창자들 특히 여성 도창자들의 실력이 뛰어났다. 때론 짐승의 울부짖음 같고 때론 애달픈 모정 그 자체인 그녀들의 흐느낌인지 노래인지 혼란스러운 그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처연하게 맴돈다.

2014년 10월 4일 19:00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창극은 첨인데 호기심이 생겨서 예매했어요.
보기를 잘했어요 메디아 너무 불쌍하네요
배우님도 정말 대단하시드라구요

우선 메디아라는 소재에 흥미가 있어 이번 작품을 선택하고 창극으로 작업되었다는건 관람 당일이 되어서야 확인했습니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해서 잠시 당황했지만 물릴수도 없었던지라 그냥 관람 하기로 했어요..다행이 창극이라는 분야가 저에게 생소하지도 않고 오히려 가사 없이 사람의 목소리만으로도 가슴에 울림을 줄 수 있구나를 깨닳았습니다. 열연하신 모든 분들이 훌륭하시지만 특히 메디아를 연기하신 박애리님의 목소리에 온몸에 전율이 일더라구요.

전체적으로 이번 공연은 만족스러웠지만 이야기 부분에서는 다소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동생을 사진의 손으로 죽이고 자신을 배신한 남편에 대한 복수로 친아이들 마저 제손으로 죽인 여인..
이것이 제가 알고 있던 메디아라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번 극에서 본 메디아는 너무
피해자 처럼 묘사 되었더군요..

다른 시각에 의한 해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관객을 주인공에 감정이입시키고자 했었던 걸까 싶었을 정도로 메디아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 없이 자신은 그저 사랑만을 원했던 그래서 그 사랑이 배신했기에 어쩔수 없이 끔찍한 선택으로 내몰렸던 비련한 여인일 뿐이라고 보여줬던 것이 아쉽습니다. 그 과정이 어떠했든 선택은 메디아 본인이 했던 것이었고 그 결과도 본인이 책임져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메디아를 억지로 비련한 여인으로 만들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사랑을 최우선하고 그로 인해 다른 것들은 기꺼이 희생시킬수 있는 강한 성격의 여인으로 그렸더라면 좋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특히 아이들을 해치던 부분에서는 쓸데없이 길었고 잔인했으며 솔직히 일어나서 나가고 싶었습니다. 좀더 은유적으로 표현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여과없이 보여준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 공연으로 창극이 매우 매력있는 분야라는 걸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소재로 좋은 공연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그 비극을 창극으로 표현하는 아이디어라니!
재창작의 극대화라고 할까..
정말 만족스런 공연이었습니다.
국립창극단!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배우들의 열연도 좋았고
무대를 그렇게 멋드러지게 쓸 수 있다는 걸 내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메디아의 이야기를 우리 창으로 해석해서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좋은 것 투성이였던 창극단의 메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