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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피터 쉐퍼는 자신만의 온전한 [아마데우스]를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년작이자 변수가 없는 한 유작이 될 것 같은(피터 쉐퍼는 1926년 생으로 현존하고 있으며 [고곤의 선물]을 발표한 1992년을 끝으로 희곡을 발표하고 있지 않습니다.) [고곤의 선물]의 구성은 놀랍게도 [아마데우스]와 똑같습니다. 작가가 의도한건지 어쩌다보니 그렇게 나온건지는 모르겠지만 꼭 [아마데우스]의 20세기 번안극을 보는 느낌이에요.

피터 쉐퍼는 과작의 작가인데 [아마데우스]는 [에쿠스]와 더불어 그의 작품 세계에서 획기점을 이룬 작품입니다. 다들 잘 아는 사실이죠. 70년대 발표한 이 두 작품만으로도 피터 쉐퍼는 천재 작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데우스]는 영화로 너무 유명하다는 게 원작 연극에겐 치명타였죠. 피터 쉐퍼는 밀러스 포먼 감독의 [아마데우스]의 각색 작업도 단독으로 맡아 [아마데우스]를 남의 도움 없이 자신만의 독보적인 작품으로 완성하긴 했지만 이건 각본 작업에 한정했을 때나 나올 수 있는 확신이고, 영화[아마데우스]의 명성을 각본 공으로만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연출,촬영,연기 등 모든 영화적 장치와 완벽한 대본이 흐트러짐없이 아울린 덕인거죠.

물론 [아마데우스]는 여전히 상연 중이고 피터 쉐퍼의 존재감은 이 작품이 초연된지 30년이 지난 오늘에서도 거론되고 있는 바입니다. 그러나 영화로 만들어지고 난 뒤 부턴 영화의 명성에 기댄바 크죠. 영화가 너무 잘 만들어진 바람에 영화 개봉 이후 이 작품은 원작 연극의 빛에 가려지기는 커녕 압도해 원작 연극도 있는 영화로 인식되었고 영화 개봉과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공연되는 무대버전의 광고도 영화 [아마데우스]의 오리지날 연극 버전 쯤으로 취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영화는 1984년에 나왔습니다. 연극 초연은 영국에서 1979년이었고 브로드웨이에선 이듬해 12월 초연하여 다음 해 토니상을 휩쓸었고요. 영화가 아카데미를 휩쓴 것 만큼 연극도 자체적인 힘으로 영화를 누린거죠. 영화 판권은 연극이 토니상도 받으며 고공 히트 하는 중에 팔렸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원작을 넘어섰죠. 사람들은 연극 [아마데우스]의 진가를 잘 압니다. 그러나 영화 [아마데우스]의 영예는 더 잘 알죠. 영화 개봉 뒤부턴 연극이 버티기 위해선 영화를 거론하지 않고는 못 배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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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고곤의 선물]을 피터 쉐퍼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결정체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냥 [아마데우스]의 영화가 누린 영화가 못내 아쉬운 노년의 작가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야심작으로 보일 뿐입니다. 줄거리 설정부터 구성, 전개 방식과 마무리까지 [아마데우스]와 똑같아요. 이미 죽어버린 천재작가 에드워드 담슨의 생애를 제 정신이 아닌 그의 아내 헬렌의 구술을 바탕으로 파헤쳐가는 것이나 그 얘기를 담슨의 숨겨진 아들이 전기집을 쓴다는 명목으로 받아 적으며 극 전개 중간중간에 개입하는 것부터가 정신병원에서 자살 시도한 살리에르가 젊은 신부에게 모든 것을 자백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아마데우스]와 똑같습니다. 그 뿐이 아니에요.

경박한 모차르트 캐릭터 만큼이나 에드워드 담슨의 정신나간 활기가 초반을 장식하며 아버지와의 소원한 관계, 아버지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 주인공의 고뇌, 작곡가로서 모차르트가 생애 누린 명성 만큼이나 에드워드 담슨 역시 작가로서 거장으로 칭송 받는 중반부, 혹평과 실패로 점칠된 모차르트 말년과 비슷한 담슨의 나태하고 광폭한 고뇌 또한 [고곤의 선물]에서도 그려지고 있죠. 그리스에서 은둔하며 끊임없는 자기 학대와 치열한 글쓰기를 통해 연극의 정의를 내리려는 담슨의 모습, 그의 동반자로서, 뮤즈로서 존재하던 헬렌이 알고보니 시기심과 자기기만의 강박증에 빠진 속물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점,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전개방식도 역시 그러하며 남편의 죽음에 자신이 개입되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악몽을 꾸는 헬렌의 모습 또한 모차르트를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죽여 버린 살리에르가 평생 짊어진 괴로움과 흡사합니다. 극중극 형태 또한 [아마데우스]와 같고요.

이 외에도 일일이 나열하다간 희곡 한편을 쓸 수 있을 만큼 [고곤의 선물]과 [아마데우스]의 설정은 모든 것이 일치합니다. 어떻게 상영시간까지도 엇비슷할 정도에요. 작가가 이걸 몰랐을리 없고 의도는 다른 데 있었겠지만 재생품 느낌은 어쩔 수가 없군요. 그 역시 그가 만든 설정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에요. [아마데우스]는 훌륭한 대본이긴 하지만 19세기부터 떠돈 모차르트 독살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이 대본 역시 어느 정도는 모차르트와 야설에 가려져 묻힌 감이 있죠. [고곤의 선물]은 동명의 영화와 말초적 호김심을 자극하는 모차르트 독살설에 가려진 [아마데우스]대본에서 파생된 모든 아쉬움과 명예를 되찾고자 오로지 연극과 에드워드 담슨으로 대변되는 피터 쉐퍼의 작가적 야심과 역량을 모조리 쏟아부은 작품 정도로 해석되는군요.

피터 쉐퍼가 이 작품 이후 작품 활동을 중단한 것도 그래서 이해가 가요. 나이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노망난 건 아니니까요. 쓸려면 몇 편 더 쓸 순 있었겠죠. 여든 넘은 지금은 불가하겠지만 말이에요. [고곤의 선물]이 생산품 냄새는 나도 작품 자체로 우수한 인정을 받은 것도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상기시킬 만한 대사가 수두룩하게 나와요. 에드워드 담슨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대사만 하더라도 이 작품을 볼 가치가 있죠. 그가 말하는 연극의 정의, 이야기의 세계, 세계에 대한 비판 등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까닭에 이 작품은 한 번 봐서는 소화하기도 벅찰 정도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현재와 과거,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설정에 빠지다 보면 주옥같은 대사를 놓치기 십상이죠. 그 만큼이나 던지려는 메시지가 의미 깊습니다. 확연하고 솔직하며 날카로운 메시지를 몇 개라도 줏어 담았다면 다행인거고 그 잔상도 길게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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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판 [고곤의 선물]은 원작에 걸맞게 연출되진 못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공연인데 2003년 동숭홀 초연 때 에드워드 담슨 역의 정동환과 같은 기획사에서 주관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전부 바뀌었죠. 5년 전에도 딱 이맘 때 올렸는데 그 때도 단기공연이었어요. 5년 전에는 10일 공연하더니 이번엔 달랑 5일을 해서 정말 이 공연 기간이 맞나 하고 공연기간을 되살펴 봤었죠. 사랑티켓은 한 동안 공연 기간을 착각해 한 달 넘게 공연기간을 잡고 예매 오픈을 했었다니까요. 요즘은 웬만해선 한 달 이상은 공연하는 게 대부분이라 [고곤의 선물]같은 초단기 공연 같은 경우는 대관 문제라기 보단 바쁜 정동환 스케쥴을 조정하다보니 5일이 나온 것 같군요.

초연 공연의 무대 세트는 그리스 배경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게끔 암벽과 바다 배경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면 이번 공연은 최소화를 했는데 대사 중심의 연극이라서 연극적으로 간소화하는 게 더욱 효과적일 것입니다. 초연 때도 배경을 제외한 중요한 소품이래봤자 고작 책상 정도가 유일했으니까요. 그렇다하더라도 최소화한 것과 엉성한 것은 다릅니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이게 5일 짜리 공연이라 제작비 절감이 필수불가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대리석 바닥으로 설정된 볼품 없는 장판지를 보는 순간 알아챘어요. 막바지에 여자들과 흥청망청하는 담슨이 어설프게 흰 칠한 대형마트 카트에 여자 셋을 담아 끌고 오는 모습에 열악함은 배가 됩니다. 미니멀리즘은 선택이라기 보단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보입니다. 그리스 배경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을 하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뒷 배경은 그리스 특유의 화사한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해야 대비 효과가 사는데 그냥 밋밋한 푸른 빛의 막으로 뒷 배경을 처리했으니까요.

주연 배우 셋과 달리 수시로 등장하는 앙상블들의 어설픈 연기가 심하게 불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조명 효과도 명암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해 가뜩이나 볼품없는 세트를 더욱 빈약하게 만듭니다. 가장 최악은 음악인데 도데체 음악을 무슨 생각으로 깔았는지 이해가 안 갈 만큼 도무지 집중 안 되는 삽입입니다. 잘만 킹 영화들에서 나오는 시대착오적인 이국적인 선율이 내내 흘러나오거든요. 튈 뿐 아니라 쓸데없이 감상적으로 만들어요. 이렇게 촌스럽고 엉망으로 집어넣기도 힘들텐데요. 별 생각도 없이 보이는 분위기만 보고 그대로 맞춰 대충 삽입한 듯한 음악에 감정이 엉망으로 흐트러지죠. 남은 건 피터 쉐퍼의 멋진 대사를 훌륭하게 소화하는 정동환,서이숙의 광기어린 열연입니다. 대책없는 연출에 이가 갈리는 한편으로 배우의 존재감이 너무도 강렬해 그 모든 단점을 상쇄시키는 드문 경험을 주거든요. 원체 그것 때문에 관람을 시도하기도 했지만요.

- 남산드라마센터는 관람하기에 너무 불편한 객석 배치더군요. 제대로 된 ㄷ자형 객석인데 정도가 심해요. 다른 극장의 ㄷ자형 객석의 ㄷ자 공간은 여기 만큼 객석이 많지는 않죠. 이곳은 틀어진 부분의 객석이 너무 많고 굴곡이 심해요. 우측 ㄷ자 객석 맨 앞자리에서 봤는데 배우 동선이 이렇게 거슬린 건 처음입니다. 필립 담슨이 수시로 무대 오른쪽 끝에 가서 대사를 치는데 그 때마다 헬렌과 에드워드 담슨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도리도리를 해야 했거든요.하도 신경이 쓰여서 하마터면 연기하는 배우한테 양해를 구할 뻔 했어요. 이 극장이 제대로 된 객석 환경을 이루기 위해선 ㄷ자 부분의 양 쪽을 다 없애야 합니다.

극, 무대, 내용, 연기, 구성,
모든게 너무나 강렬해서
쉽게 뭐라 말을 꺼낼 수도 없을 정도로
완전히 압도되었습니다.

공연장 의자가 불편해서 허리가 아팠다는 아쉬움은 좀 남습니다만...

2시간 30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임에도 연기자들의 열연으로
길다 생각되지 않았다.
어렵다고 생각되는 작품이긴 하나 예전에 에쿠우스처럼 난해하지
않았다.
서로 정반대의 사람이 만나서.. 처음에는 잘 어울리는 듯 하나,
조금씩 빗나가면서 결국에 남은건 상처뿐인..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신념은 버리지 않았던 그러기에... 아팠던 공연이다.
마지막 정동환씨의 발구르기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극본, 연출, 음향, 연기 등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연극.
피터 쉐퍼의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너무 좋은 연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