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 회관에서 김광보 연출의 신작인 옥상밭 고추는 왜 가 공연된다고 해서
아주 큰 기대를 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는 국립이라 그런지 항상 좌석을 2층으로만 배정해주네요.
아무리 일찍 가도.
그래서 저 같은 앞자리 덕후는 진짜 싫은 극장 중에 하나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강렬했던 함익의 감동을 잊을 수 없고 김광보 연출의 어두운 심리 조명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주말 2시라는 아주 귀찮은 시간대에 각종 이벤트나 축제나 시위등으로 차가 엄청나게 막히는 곳으로 갔습니다.
티켓,역시 2층입니다.
2층이라도 2층의 앞 줄은 텅텅 비어 있는데 선착순으로 좌석을 배정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장우재 작가 작품은 전 이 번이 처음이네요.
기회가 있다면 꼭 보고 싶어요.다른 작품들.
시놉
무대가 간결한 듯 하면서도 적절하게 잘 만들어져 있어서 좀 감탄했습니다.
역시나 푸르디 푸른 조명.
커튼 콜
맨 앞의 오른 쪽 여자 고수희 배우,정말 연기가 엄청 대단하더라구요.
팬이 되었어요.
이 연극에서 주가 되어 조망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201호의 정년 퇴직 후 노년을 걱정하는 돈에 인색하고 근검절약하지만 세상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현자.
304호 광자라는 아줌마는 현자가 자신은 이사갈거니 옥상위 화분 텃밭의 흙이 필요없으니 사용하시라는 허가를 받고,
씨를 뿌리고 일일이 진딧물을 잡아 가며 고추를 키우고 있는데 그 고추를 빌라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면 따가라고 얘기해 둔 상태입니다.
그녀는 매일 물을 주고 정성스레 고추를 기르지만 현자가 고추를 싹쓸이 해 가는 현장에서 다툰 게 원인이 되어 결국 세상을 뜹니다.
301호에 사는 준백수 현태는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공동 창고에 자신의 짐을 왕창 집어 넣은 상태며 어쩌면 공동 옷걸이마저
부러뜨려 놓은 상태일지도 모르는 청년입니다. 현태는 옷걸이 니가 부러뜨렸잖아 하며 단정적으로 얘기하고 공동 창고는 공동 창고니
무단 점거한 짐을 정리하라고 하고 담배꽁초 아무데나 버리지 말라고 하는 현자의 말하는 뽐새가 불쾌합니다.맞는 말이지만요.
현자와 광자가 말다툼하는 걸 보고 무조건 광자가 피해자다 라고 생각한 현태는 현자에게 사과를 하라고 압박하게 됩니다.
물론 현자 입장에선 이뭥미? 겠고 왜 남의 일에 니가 나서냐,백수 주제에 하는 고까움이 있었겠죠.
일은 303호 이혼당하고 해직당하고 다시 취직할 길이 없어 보이는 엘리트 백수 동교가 합류하며 더 커집니다.
소위 SNS로 특정인을 비난하고 루머를 생산해내고 온라인 살인을 저지르는 전문 조작 청년들이 합세하고,
이 들은 빌라 앞 마당에서 피켓을 들고 유인물을 나눠주고 노래를 부르고 시위를 하며 인형탈을 입고 세를 모읍니다.
온라인에서는 완전 난리가 났지만 오프라인에서만 사는 노인들에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이 시위는,
각자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하자 모두 뿔뿔이 흩어지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만, 조직화 해 낸 동교는 끝까지 가게 되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현자의 개를 납치해서 멋대로 유기해 버립니다.
이 건 범죄 행위죠.
결국 현자는 개를 잃은 슬픔에 백기를 들고 울며 사과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광자는 저 세상으로 간 이후였고 현자가 그렇게 모멸감을 준 광자가 사실 노후된 빌라 재건축에 반대한 인물이었고
자신의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현자가 광자를 미워하게 된 계기였다는 것도 추후에 드러났었죠.
현자는 현자의 이유가 있었고 광자는 광자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결국 개를 찾을 수 없게 된 현자는 의외로 이사를 결정하고 빌라를 떠납니다.
동네 할머니들을 동원하고 살갑게 고추도 나눠주고 커피와 수박도 나눠 먹으며 터줏대감 행세를 하던 그녀가 말이죠.
책에서 우리는 인간은 동등하다.등등의 가치를 배웁니다.
학생이거나 교육 기간이 길고 학력이 높을수록 우린 이런 이념을 신봉하죠.
하지만 그 이념이 현실속에서 전혀 통용되지 않음을 점점 알게 되며 희망을 상실하고 이후 분노하게 됩니다.
사실을 얘기하자면 빈곤층 지역에서 더 많은 범죄가 일어난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가난은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뻔뻔한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을 멈추지 않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요.
현실은 시궁창이며 인권 말살,혐오,범죄 등등의 일은 매일,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이들은 건축 20년도 넘은 낡은 빌라에 자가 또는 전세나 월세로 사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이나 오후나 저녁에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음식을 나눠먹고 남의 일에 참견하는 일상을 보내죠.
남의 일에 신경쓰지 않는 젊은이를 비난하고 인사를 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욕설을 하는 곳이예요.
이런 곳에서 광자가 애쓰며 기른 고추를 싹쓸이 해 가는 현자는 도둑으로 보일 수 밖에 없기도 하고,
번번이 일이 풀리지 않는 성질을 못 이기는 현태가 분노를 타인에게 돌려 발산하려고 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죠.
극 중 인물들은 말합니다.
내가 교수가 되려고 오랫 시간 동안 굴욕을 참고 견뎠어,그 깟 교수 자리 때문에.
한 번 실수를 하고 나니 계속 실수를 하게 될까 봐 두려워져서 결국 다시 일을 할 수가 없어.
왜 그 따위로 사람을 일개 부품처럼 사용하고 버리냐고,내게 도대체 왜 이러는건데?
세상은 둥글 둥글 원만하게 살아야 하는거야,모나지 않게.큰 소리 내지 말고.
등등.
어떤 나라,어떤 지역,어떤 거리와 어떤 건물과 집을 가도 삶은 지속됩니다.
그 속에 인간이 있고 그 인간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살아가고 있죠.
타워팰리스라면 고추를 옥상에 심을 일도 없고 그 걸 왕창 따 가서 나눠 먹을 일도 없죠.
많은 이들은 타워 팰리스에 살지 않고 있고 그 깟 고추 돈주고 사면 되지 하고 생각하기에,
고추 싹쓸이 사건으로 인해 발발된 어쩌면 타살이 된 이 일이 공감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극중 현자가 보여주는 태도와 광태의 적대적인 태도가 저는 아주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특히 고수희 배우는 정말 * 100 리얼해서 저절로 신음 소리가 나고 머릴 쥐어 뜯게 만들어 주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저렇게 참견이 심한 빌라에선 살고 싶지 않다 라고 생각해요.
저는 고추를 나눠 받아도 아마 달가워 하지 않을 것 같네요.한 번 받거나 안 받는다고 할 듯.
여러 측면으로 생각해 볼 만한 작품입니다.
소소하지만 이런 게 바로 일상 속 스릴러이자 공포가 아닐까 싶어요.
가장 이해가 잘 안 되는 인물은 이 집 저 집 일에 참견하면서 좋게 좋게 말하고 결국 광자의 시신 처리까지 돕게 된
동네 아저씨입니다.
이 아재는 도대체 뭐지?
흔히 보이는 인간형 중에 하나기는 하죠.....있으면 편리한 그런 사람.....이 사람은 뭐죠? 도대체? ㅎㅎㅎ
지금 2017년은 예전만큼 교류하는 걸 반가워하지 않는 침묵 속 온라인 폐쇄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대부분을 온라인에서 처리하는 상황에 혼자 사는 이들의 급증과 교육 수준 높은 백수들이 넘치는 현실이기에,
앞으로 우리는 저런 옥상밭 고추 사건 같은 건 겪지 않을 게 확실합니다.
아니 애초에 옥상 밭 고추는 기른 사람에게 소유권이 있는 것이기에 손을 대지 않을테죠,더욱 더.
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멋진 연기 보게 되어 좋았습니다.현자 역 고수희 배우님.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