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톡

윤호진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

작성일2008.06.23 조회수6937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RSS 구독
글자크기 본문 글자 크기 확대 본문 글자 크기 축소 이전글 다음글 목록

인물정보

사진
출생연도
1948.06.07 
최종학력
홍익대학교 정밀기계학 학사 
최근작품
명성황후(2018)
명성황후 - 군포(2015)
영웅(2015) 더보기
인물정보 더보기





작품에 대한 본능적인 직관 갖춰야 공연 프로듀서는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프로듀서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라이선스 작품이 활발히 들어오고 자본이 유입되면서 이제 그 개념이 명확해진 거 같아요. 그만큼 우리 시장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프로듀서로서 가장 필요한 요건은 작품을 보는 직관이나 본능이 아닌가 합니다. 작품에 대해 논리적으로 검증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러다 모든 걸 놓칠 수 있거든요. 동물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사람이 프로듀서를 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연극 연출가로 출발
고등학교 때 연극을 보러 다니면서 이 새로운 장르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극단 연출로 본격적으로 공연계에 발을 들였어요. 성격자체가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는 편이기 때문에 배우나 다른 스텝보다는 잘 맞았어요.
그러다 1982년 전통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연수를 갔는데, 정작 가서 뮤지컬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그때가 뮤지컬 <캣츠>가 개막한지 몇 달 안 됐을 시기였는데, 그 작품을 보니 입이 딱 벌어지더군요. 공연이란 장르가 이렇게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공연 장르보다 관객에게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뮤지컬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죠. 내가 안 하면, 언젠가는 누군가가 하겠지만 늦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뉴욕으로의 유학과 새로운 시작 한국에 돌아온 뒤 뮤지컬 공부를 위해 뉴욕으로 떠날 결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 훌쩍 떠나는 건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 동안 함께 한 극단 실험극장에 무엇이라도 남기고 떠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만든 작품이 <신의 아그네스>였습니다. 이 작품이 그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걸 보고 비로서 뉴욕으로 떠났죠. 84년부터 약 4년간 뉴욕에서 공부 하면서 그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거의 다 봤어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시작하고 지금의 에이콤을 만들었습니다.




브로드웨이 진출을 이룬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
에이콤을 설립하고 처음으로 한 일이 해외에서도 통할만한 공연을 찾는 것이었고 그게 바로 <명성황후>입니다. 95년 한국에서 막을 올려 97년에 브로드웨이로 진출했으니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10년만에 이룬 성과입니다.
말도 안 되는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어요. 이 작품의 매력은 보편성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했지만 조그만 약소국가가 주권을 지키고 평화롭게 살아보자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도 공감하면서, 한편으로 충격적으로 관람했죠. 브로드웨이에서 기죽지 않으려고 수 없이 고치고 업그레이드 한 게 오늘날 <명성황후>입니다.






고난의 연속
수도 없어요.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정도에요. <명성황후>는 91년부터 준비작업에 들어가서 아티스트들을 정하는 과정도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미스 사이공>의 작곡가도 참여를 약속했지만 돈이 없어서 결국은 포기했던 일 등, 대부분 돈이 없어서 일어나는 고난의 연속이었죠. 결국 95년에 극적으로 막이 올라갔고, 다행히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용기를 얻어 브로드웨이에 진출을 했는데, 이것 역시 극적이었어요. 처음부터 그쪽에서 받아주기나 했나요. 멸시와 굴욕을 참고 맨손으로, 직접 뉴욕에 가서 극장을 잡은 거에요. 결국 그곳 극장장이 ‘이 극장이 생긴 이래 이렇게 관객이 많이 밀려온 건 처음이다'란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보편성이 중요
내용과 주제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보편성을 따집니다. 하지만 매력이 있다 하더라도 많은 제작자들이 달려드는 라이선스 작품은 하지 않습니다. 보기에도 좋지 않고, 공연계의 연장자로서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창작 작품은 항상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책을 많이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정리한 다음, 이게 작품으로 개발되면 좋겠다 싶으면 작가와 스탭을 구성합니다. 이미 여러 젊은 창작자들을 그룹으로 만들어 작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 & 오랜 준비
돈을 가장 적게 들이면서, 퀄리티를 높이는 아이디어로 승부 하고자 합니다.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가도 구성이 엉망이면 아무 소용 없지 않겠어요? 퀄리티는 돈으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이야기, 노래, 무대, 배우 등 모든 게 잘 맞아 떨어져야 하죠.
또한 서둘러서 진행하는 편도 아닙니다. 어떤 프로젝트가 있으면 오랫동안 구성하는 편입니다. 물론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서둘러서 졸작이 나오느니, 많은 준비를 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이제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프로듀서의 감, 연출가의 분석력
나는 다른 제작자와는 다르게 연출을 겸하고 있어요. 이는 장점이면서 단점이 될 수 있는데, 한국 현실에서는 장점이 더 많다고 느낍니다. 일단은 착오를 좀 덜 겪을 수 있다는 점이 있어요. 프로듀서로서 감이 왔다 하더라도 연출자로 내용을 분석하면 결점이 많아서 손을 안 대는 경우가 있죠. 작품을 결정하는 데 있어 퀄리티를 확인할 수 있는 안목이 있다는 점이 강점이에요. 하지만 프로듀서는 사실 갬블러나 마찬가지거든요. 내가 가진 연출자의 눈 때문에 모험성이 낮아져서 소위 ‘지르는’ 게 줄어듭니다. 이건 어찌 보면 단점이지만 잭팟을 기대하다 빚더미에 앉는 제작사들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 아닙니까.






최근 영국 가서 상당히 재미있게 본 작품이 있어요. 연극 <39계단>이라고 히치콕의 스릴러를 코미디로 완전히 뒤집은 작품인데 너무 재미있더군요. 그래서 이 작품을 라이선스로 들여왔습니다. 집요하게 접촉해서 내년에는 <다이얼M을 돌려라>도 찜 해 놨어요.




세계로 진출하라
세계적인 프로듀서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 들어와서 외국 사람들이 돈 벌어서 가는 거 보면 기분이 썩 좋진 않아요. 우리도 라이선스 줘서 로열티 좀 받는 상황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현재 런던에서 작품을 하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가 프로듀서가 돼서, 현지 스탭들과 중극장 규모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런 일들이 쌓여서 우리 작품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날이 반드시 왔으면 합니다. 내가 활동하는 시기에 그걸 만들어 놓으면 나로선 일한 보람을 충분히 찾을 수 있겠죠. 다음 세대에는 틀림없이 있어야 하고.
단기적으로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웅>이 관객의 사랑을 받아서 매년 상반기에는 <명성황후> 하반기에는 <영웅>을 올렸으면 합니다. 우리 창작 작품으로 양날개가 있으면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쉽진 않겠지만 노력해야죠.




공연을 선택할 때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그게 여러 장르를 살찌우게 해서 문화 선진국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너무 편식을 하는 거 같아요. 몇몇 배우들에게 편중돼 있는 느낌도 들고. 관객이 여러 장르에 관심을 가지면 그만큼 다양한 형식, 실험이 시도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뮤지컬에 대한 자부심도 가져주셨으면 하고요.


[ⓒ 플레이DB www.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RSS 구독
글자크기 본문 글자 크기 확대 본문 글자 크기 축소 이전글 다음글 목록

댓글쓰기

입력
플레이DB의 모든 공연DB는 다음, 네이트 등 포털사이트 공연정보로 연동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