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각계 각층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며 웃음과 눈물을 가져다 주었던 2016년, 공연계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올해 공연계의 흐름을 한 눈에 돌아볼 수 있는 열 가지 키워드를 꼽아봤다.

 
① 창작뮤지컬의 다채로운 시도
올해도 많은 창작자들이 열정을 다해 새로운 무대를 빚어냈다. 그 결과 대극장 무대에서는 <마타하리><도리안 그레이><페스트> 등이, 중소극장 무대에서는 <아랑가><인터뷰><라흐마니노프><곤 투모로우><팬레터> 등 일일이 열거하기 벅찰 만큼 많은 창작 작품이 쏟아졌다. 예술가의 삶을 재조명하거나(<팬레터><에드거 앨런 포><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흐마니노프>), SF적 설정을 무대로 옮겨오거나(<안녕! 유에프오><페스트><더맨인더홀>) 로봇 또는 유기견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등(<더 언더독><어쩌면 해피엔딩>) 소재의 다변화도 주목할 점이다. 흥행 면에서는 작품마다 희비가 엇갈렸지만, 여느 때보다 두터운 양적 확대 속에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뜻 깊은 해였다. 그 와중에 일본에서는 <프랑켄슈타인><빈센트 반 고흐><김종욱 찾기>의 라이선스가, 중국에서는 <난쟁이들>의 라이선스가 판매되며 반가운 결실을 맺었다.
 

② 셰익스피어 '봇물'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올해는 그가 남긴 작품이 끊이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발레 등 장르도 다양하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각자의 해석을 더해 비틀고 변형해낸 창작자들의 실험정신이 곳곳에서 빛났다. 오태석 연출은 <템페스트>를 <삼국유사>와 엮어 한국적인 무대를 펼쳐냈고, 이성열 연출은 <햄릿아비>를 통해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 속으로 햄릿을 불러냈다. 김광보 연출과 김은성 작가는 <함익>에서 햄릿을 21세기의 재벌가에 태어난 ‘함익’이라는 여성으로 재탄생시켰고, 김동연 연출과 지이선 작가는 <햄릿-더 플레이>에 어린 햄릿을 등장시켜 이야기의 비극성을 극대화했다. 손진택 연출의 <햄릿>은 권무송·박정자 등 연극계 원로 배우들이 총출동해 만들어낸 완숙한 무대로  화제에 오르기도. 최근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을 핵전쟁 이후로 옮긴 성종완 연출의 동명 뮤지컬이 막을 올렸고, <맥베스>를 우리 식으로 재해석한 국립극단의 창극 <레이디 맥베스>도 곧 개막해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 다양한 결을 더할 예정이다.
 
③ NEW 공연장
꾸준한 양적 확대와 더불어 질적 향상을 꾀하는 공연계의 흐름에 발맞춰 올해는 특정 장르에 최적화된 전문 공연장이 여러 곳 문을 열었다. 8월에는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롯데콘서트홀이, 9월에는 국악 전문 공연장인 돈화문국악당이 문을 열었다. 장르별 악기 특성을 고려해 한 곳은 울림을 최대화해 긴 잔향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한 곳은 악기의 소리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이달 초에는 클래식 공연장 3개와 음악감상실 5개를 갖춘 클래식 전용 공연장 엘림아트센터가 인천에서 문을 열었고, 내년 2월에는 서초동에 자리한 국립국악원 우면당이 전자음을 배제한 ‘자연 음향 공연장’으로 변신해 재개관할 예정. 이밖에도 지난 4월에는 연극/뮤지컬 인큐베이팅 전문 공연장 겸 작업실인 CJ아지트 대학로가 문을 열었고, 11월에는 대학로에 공연장 3개를 갖춘 드림아트센터가 새로 등장했다.
 

④ 문화계 블랙리스트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드러나며 공연계에도 파문이 일었다. 이전부터 특정 연출가의 작품이 정부지원대상에서 배제되는 등의 일로 ‘정치검열’에 대한 공공연한 의구심이 떠돌았지만, 그것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반발도 거세졌다. 올해 초부터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정부에 항의해온 연극인들은 지난 달 ‘검열백서’ 작업에 전격 돌입했고, 서울연극협회를 포함한 12개 문화예술단체는 지난 12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을 특검에 고발했다. 변정주 연출과 구소영 음악감독 등은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배우들’ 모임을 꾸려 제 4, 5차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레미제라블> 넘버를 열창하기도.
 
⑤ 무대로 건너온 TV 스타
TV·영화 속 스타들의 무대 진출은 매해 이어져 왔지만, 올해는 유독 많은 스타들이 무대로 발을 넓혔다. 뮤지컬에서는 <뉴시즈>의 온주완, <헤드윅>의 변요한,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송일국, <더 언더독>의 이태성, <오! 캐롤>의 이유리, <보디가드>의 박성웅 등이 도전에 나섰고, 연극에서는 <햄릿-더 플레이>의 김강우, <꽃의 비밀>의 이청아, <우리의 여자들>의 우현 등이 데뷔했다. 데뷔 13년 만에 뮤지컬에 도전한 온주완은 안정적인 연기력에 의외의 가창력까지 뽐내며 ‘새로운 발견’이라는 평을 이끌어냈고, 첫 연극 무대에 오른 김강우도 그간 충무로에서 쌓은 연륜을 남김없이 발휘했다.

배우뿐 아니라 가수들도 나섰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케이윌과 <그날들>로 국내 첫 뮤지컬 무대에 선 FT아일랜드의 이홍기, <올슉업>의 박정아, <마이버킷리스트>의 유승우, <보디가드>의 양파와 손승연 등이다. 특히 송스루 작품으로 첫 뮤지컬을 시작한 케이윌은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으로 콰지모도의 비탄을 풍부하게 표현하며 뮤지컬 무대에 무사히 안착했다. 데뷔 19년차 가수 양파와 ‘미친 가창력’으로 불리는 손승연도 <보디가드>에서 이제 막 새 도전을 시작했다. 
 

⑥ 예능 속 뮤지컬배우
방송사마다 여러 노래경연 TV프로그램이 끊이지 않고 방영되는 가운데, 올해 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이들 프로그램에 출연해 신선한 피를 수혈함과 동시에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복면가왕>에서는 차지연이 연초 5연속 가왕 자리를 지키며 발군의 실력을 뽐냈고, 이어 윤형렬, 강동호, 남경주 등이 출연해 조명을 받았다. <불후의 명곡>에서는 뮤지컬계 대표 커플 김소현·손준호 부부가 상반기 결산 무대에서 최종 우승한 데 이어 최정원, 강홍석, 남경주 등이 각기 우승을 거뒀다. <힙합의 민족>에서는 정원영과 박준면이 숨겨둔 랩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급기야 11월에는 김문정 음악감독과 뮤지컬 배우 마이클리·바다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JTBC의 새 경연프로그램 <팬텀싱어>가 시작됐다. 뮤지컬 배우·성악가 등 숨은 실력자를 발굴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현재 고훈정, 고은성, 백형훈, 윤소호, 정동효, 정휘, 기세중, 김태오 등의 뮤지컬 배우들이 경합을 벌이는 중이다.
 
⑦ 김영란법 
지난해 메르스에 이어 올해는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공연계의 우려를 불러왔다. 5만원 이상의 공연 초대권이 규제 대상이 되면서 기업들의 초대권 구매뿐 아니라 공연 후원·협찬이 위축되리라는 여론이 커진 것. 이에 일부 공연 제작사는 티켓가를 5만원 이하로 내려 일명 ‘김영란 티켓’을 내놓았고, 몇몇 기획사는 연말 공연 할인폭을 늘렸다.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이 무분별한 초대권 남발을 방지해 공연계 체질을 개선시키리라 전망하고 있지만, 클래식 공연의 경우 기업 후원의 비중이 커 실제 여파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권익위는 논란이 제기된 프레스티켓 및 특정 직종 종사자에 대한 할인티켓 등을 규제 예외사항으로 허용했다.
 

⑧ 명연출가 신작 열전
연극계에서는 명연출가들의 신작 열전이 이어졌다. 연희단거리패 창단 30주년을 맞은 이윤택 연출은 윤대성 작가와 30년 만에 함께 작업한 <첫사랑이 돌아온다>와 시극 <꽃을 바치는 시간> 등을 통해 바래지 않은 예술적 깊이와 상상력을 보여줬고, 박근형 연출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서 다양한 시공간의 전장에 선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에 대한 묵직한 통찰을 던졌다. 고선웅 연출은 <한국인의 초상>과 <곰의 아내>에서 통렬한 풍자와 재기가 어울린 특유의 무대를 선보였고, 김광보 연출은 <헨리 4세-왕자와 폴스타프>를 시작으로 <함익><비> 등에서 다각도로 인간을 탐구했다. 조선시대 기행문 ‘관동만유’에서 모티브를 얻은 <불역쾌재>를 선보인 장우재 연출도 빼놓을 수 없다.
 
⑨ 원조 아이돌의 귀환
콘서트계에서는 대표적인 1세대 아이돌인 젝스키스, SES, 신화가 연이어 컴백하며 무대를 뜨겁게 달궜다. 2000년 공식 해체를 발표한 젝스키스는 지난 9월 공식 컴백해 <젝스키스 콘서트 옐로우 노트> 서울 공연을 성황리에 치뤘고, 대구공연에 이어 이달 말 부산공연을 앞두고 있다. 올해 초 데뷔 18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던 신화는 지난 주말 <2016 신화 라이브 – 언체인지> 콘서트에서 2만 2천여명의 관객들을 만나 여전한 인기를 입증했고, 지난 11월 데뷔 20주년 기념곡 ‘리멤버’를 발표한 SES도 곧 연말 콘서트 <리멤버, 더 데이>로 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내년 초에는 GOD가 전국투어공연을 이어갈 예정이어서, 새해에도 원조 아이돌들의 가열찬 활약이 예상된다.  
 

⑩ 라이브 플랫폼 새바람
인터넷 플랫폼의 변화로 공연 홍보 및 취재 방식도 함께 진화하고 있다. 2016년은 페이스북, 네이버 TV캐스트, V앱 등을 활용한 공연 현장 생중계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해였다. 페이스북이 지난 4월 영상 생중계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고래고래><위키드> 등이 콘서트와 백스테이지를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했고, <데스노트><드라큘라><맘마미아!><마타하리> 등은 네이버 TV캐스트를 통해 쇼케이스 등을 생중계했다. 네이버는 주로 K팝 컨텐츠를 담았던 V앱에 뮤지컬, 클래식채널도 신설했고, <아이다><도리안 그레이><금강 1894>등이 이를 홍보채널로 활용했다. 창작뮤지컬 <팬레터> 측은 아예 공연 전막을 네이버 TV캐스트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공연 제작사는 홍보 이슈에 맞춰 작품의 면면을 관객들에게 빠르게 선보이고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생생한 공연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생중계 서비스는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플레이디비도 페이스북 페이지 ‘보고싶다’를 통해 <보디가드> 제작발표회, <키다리 아저씨><더언더독> 프레스콜, 윤형렬·아이비·김우형 등의 인터뷰를 단독 생중계했다. 페이스북은 추후 사용자의 ‘경험 공유’에 초점을 맞춘 가상현실기술을 라이브 서비스에 접목시킬 예정이어서, 이같은 변화가 또 어떤 새바람을 불러올지 주목된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JTBC, SBS, 네이버 V앱